2021.04.26  中文·韓國

日측자료, 난징대학살로 난징인구 80만 감소 증명

  17:44, January 08, 2014

[신화망(新華網)] 지린(吉林)성 자료국이 최근 발견한 대량의 일본군 중국 침략 관련 자료에는 난징(南京)대학살에 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일본군이 작성한 이 자료에 따르면, 난징대학살이 발생한 후 2개월 보름 동안 난징 지역의 인구가 113만 명에서 34만 5천 명으로, 무려 78만 5천 명이 감소했다고 한다.

이 자료는 1938년 2월 19일과 28일에 일본군 화중(華中)파견헌병대 사령관 오오키 시게루가 관동군 사령부에 올린 ‘난징헌병대 관할 내 치안 회복 현황에 관한 보고서’(이하 ‘보고서’로 약칭)에 기록된 사실이다.

‘보고서’에는 ‘사변 전후의 인구 대비’를 기술하고 있는데, ‘사변 전’의 난징 인구가 100만 명(난징시 샤관(下關) 불포함)이었던 것에서 그 해 2월 28일에 총 33만 5천 명이 귀환했고, 샤관구 인구는 13만 명이었던 것에서 1만 명이 이곳으로 귀환했다.

1937년 12월 13일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했다. 이후 6주간 일본군대는 온갖 무자비한 수단으로 난징 시민과 생포된 군인을 학살했고, 그 숫자는 총 30만 명 이상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줄곧 난징대학살의 희생자 수를 고의적으로 축소시켜왔으며, 심지어 이 만행을 부인하기까지 했다.

일본 관동군 관련 자료는 지린성 자료국에 보관되어 있으며, 총 10만여 권으로 기록되어,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관동군이 중국 둥베이(東北)를 통치하던 시기의 내용들이 남아있다. 이 자료는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일본 관동군의 중국 침략 관련 자료로서 매우 진귀하며, 일본 내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료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포한 후 일본군은 이 자료들을 며칠에 걸쳐 소각했으나 완전히 소각하지 못한 자료는 지하에 매장했다. 1950년 지린성에서 건축물 시공 시 이 자료들이 발견되었다.

쭝웨이(宗巍), 자오멍줘(趙夢卓) 기자
(Web editor: 轩颂, 趙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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