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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딸을 깨우는 모성애…‘기적’의 감동

  11:21, April 23, 2014

식물인간 딸을 깨우는 모성애…‘기적’의 감동
“똑바로 서야지, 똑바로 서!” 푸다천 씨는 큰 소리를 내며 딸이 설 수 있도록 도왔다. 장젠(張建) 촬영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4월 23일] 23살은 한창 혼담이 오갈 나이다. 푸다천(付大趁) 씨는 딸 친구의 결혼식장에 다녀온 후 집에 있는 딸 추이리나(崔麗娜) 씨에게 결혼식이 얼마나 근사했는지, 신랑은 얼마나 출중했는지에 대해 얘기해 주었는데 딸 추이리나 씨가 돌연 매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추이리나 씨는 발버둥 치며 포효했고 또 쉬지 않고 자신의 머리를 마구 내려쳤다. 이때 병의 고통 속에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딸아이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모친 푸다천 씨는 기뻐하다 나중엔 딸을 부둥켜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허난(河南)성 주마뎬(駐馬店)시에 거주 중인 51세 푸다천 씨는 원래 시내 한 공장의 노동자였고 가무에 재능이 있어 공장 안에서 줄곧 ‘예능 담당’이었다. 그러나 딸이 병으로 쓰러진 후 푸다천 씨는 더 이상 밖으로 나가 춤 동료들과 함께 웃으며 어울릴 수 없었다.

2006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가 추이리나 씨가 15세 생일을 맞았을 때쯤 그녀는 바이러스성 뇌염에 간헐적 간질 증상까지 발생해 수업 중 돌연 쓰러졌다. 추이리나 씨는 정저우(鄭州, 허난성의 성도)에서의 치료 기간 내내 중환자실에 입원해 가족들의 병문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 당시는 마침 밖에 눈꽃이 날리던 초겨울이었는데 푸다천 씨와 그녀의 남편은 항상 병원 복도에 두꺼운 종이 한 장만 깔고 쉬곤 했다. 그렇게 매일 만두에 장아찌 몇 조각 곁들여 식사를 때우며 푸다천 씨는 28일 동안 중환자실 밖을 묵묵히 지켰다. 하지만 입원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약과 주사비를 포함하지 않고 입원비와 간호비만 계산한다 하더라도 하루에 980위안(약 16만 원)에 달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푸다천 씨는 병원에서 나오는 영수증 한 장 한 장을 빠짐없이 꼼꼼히 살펴 설령 10위안이라도 더 예상외의 지출이 있을 때는 무조건 간호사를 찾아 이유를 들었다.

의사는 병세악화통지서를 몇 번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푸다천 씨는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의사는 추이리나 씨의 동공이 이미 반쯤 열린 상태로, 언제든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푸다천 씨는 의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푸다천 씨의 수중에는 더 이상 입원비를 낼 돈이 없었고, 또 만약 딸이 죽는다하더라도 절대 밖에서 죽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푸다천 씨는 딸의 손을 꼭 붙잡고 귓가에 “꼭 강해져야 한다”고 속삭였다. 그런데 주마뎬으로 돌아온 후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딸아이가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이었다. 2008년에는 딸의 병세가 안정되어 딸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됐다. 사실 그동안 푸다천 씨는 집이 없었다. 그녀에게 있던 집 2 채는 딸의 치료비용을 내기 위해 진작 팔고 온 가족이 추이리나 씨의 할머니 집에서 얹혀 살 수밖에 없었다.

푸다천 씨는 “우리가 못 먹고 못 마시는 한이 있어도 우리 딸에게는 가장 좋은 것만 줄 것”이라고 말하며, 딸이 중환자실에서 나올 때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보고 딸에게 큰 빚을 졌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추이리나 씨의 상태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수준으로 죽만 먹을 수 있다. 매년 명절을 쇨 때는 식단을 조금 바꿔 면이나 만두도 조금 주곤 하는데 푸다천 씨가 먼저 음식을 모두 씹어 으깬 후에 딸의 입으로 전달해 먹인다. 현재 추이리나 씨는 몸도 성장하고 체중도 증가해 어엿한 아가씨가 됐다.

또 푸다천 씨는 “딸아이가 입을 열어 말하고, 스스로 밥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다”라고 말하며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는 딸을 보곤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추이리나 씨가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자극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조언 때문에 매번 푸다천 씨는 눈물을 머금고 딸의 손가락을 깨문다. 손가락 위의 깊은 잇자국을 바라보며 종종 죄책감에 괴로워하지만 딸의 감각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 푸다천 씨는 다시 더 세게 손가락을 깨물 수밖에 없다. 어느 날, 푸다천 씨가 딸의 손가락을 깨물 때 마침내 딸이 소리를 지르며 어깨를 움츠리는 행동을 보였다. 푸다천 씨가 다시 힘껏 깨물자 딸은 발버둥 치다 자신의 머리를 세게 때리기도 했다. 푸다천 씨는 이렇게 매번 딸의 작은 변화에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한다. (번역: 배단비 감수: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망(人民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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