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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지는 일본일 때 ‘보통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

  16:04, August 15, 2014

책임을 지는 일본일 때 ‘보통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왕의 라디오 ‘종전 조서' 발표

요약: 겉으로 보이는 국가적 위신 때문에 과거를 덮는 것은 무지한 짓이며, 지난 과거의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보통 국가’ 나아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국가라 할 수 있다.

[인민망 한국어판 8월 15일] 8월 15일은 중국 그리고 일본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다. 69년 전 이날 당시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했지만 전파를 타고 낭독한 ‘종전 조서’에서 ‘항복’이란 글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은 ‘8.15’에 대한 명칭을 통일하지 못했다. 세미나에서는 ‘패전일’로 자주 언급되지만 일본 정부와 언론에서는 이날을 ‘종전일’로 부른다.

올해 8월도 여전히 ‘전쟁과 평화’가 일본의 핫이슈로 자리했다. 여러 명의 일본 학자로 구성된 ‘무라야마담화 계승발전회’ 측은 최근에 ‘종전 조서’는 미국, 영국과의 ‘4년’간 교전에 대해서는 말했지만 중일 전쟁은 물론 일본의 아시아 식민침략역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한편 같은 주간에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 분사 제안을 거절했지만 2차 대전을 ‘자발적 방위에 목적’을 둔 전쟁으로 정의하며 총리, 각료 심지어는 천황의 참배를 환영한다고 표했다. 전쟁을 끝이 났지만 평화 재건에 대한 명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15’를 놓고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관련 행동을 취할 것인지 ‘전국전쟁용사 추도식’에서 침략을 언급할 것인지에 대해 언론에서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아베 신조는 요즘 후지산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휴가를 보내는가 하면 고향으로 내려가 A급 전범인 외조부의 무덤을 벌초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각의 집단 자위권 해제 결정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도 그는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감정만 앞세운’ 이유로 “(무덤 앞에) 다시금 맹세하며 국민들의 생명과 평화적인 삶을 계속해서 보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시아 각국 국민들은 일본이 침략전쟁에 대한 정의 문제를 놓고 오랜 세월 논쟁을 벌여왔음에도 왜 아직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지 또 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간 크게 대학살과 위안부 등의 각종 범죄 사실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8월 일본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볼 때 69년 전 일본의 항복 의도는 전혀 순수하지 못했고 전쟁의 잘못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군국주의가 형식상으로는 흩어졌을지 몰라도 책임 회피는 그 뿌리가 남아 오늘에까지 우경화 세력들의 터전이 되었다.

“우리는 전쟁이 일본에게 가져온 큰 상처를 잊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오늘날 평화를 지켜나가야 한다”라고 일본 정치가들이 강조하는 이 말은 듣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를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덮어버렸다. 전쟁은 바로 일본이 일으킨 대외 침략전쟁으로 침략을 당한 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만약 대내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자로서의 책임을 깨끗하게 지지 않고 또 대외적으로도 전쟁 가해자로서의 죄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침략이 또다시 ‘평화’라는 이름 하에 발생하지 않는다 장담할 수 있겠는가?

침략전쟁의 사실을 인정하고 전쟁의 만행들을 반성하는 것은 2차 대전 후 평화의 원점이자 자국의 민족주의 분열을 피하고 외부 민족과의 신뢰 구축을 위한 기반이 된다. 뉘른베르크 재판 후 독일은 지난 9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나치 범죄자들을 색출해 10만 건에 달하는 안건 가운데 6000여 건에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일본은 ‘0’이다. 실제 도쿄 재판에서 ‘731’부대의 인체실험과 세균 및 화학무기 사용 그리고 ‘위안부’ 강제징용 등의 엄청난 범죄 사실을 그냥 놓아주었다. 현재까지 일본인들은 자국 범죄 재판에서 모두 ‘0’이며 일부 우익세력은 도쿄 재판의 이 같은 결과조차 왜곡하고 부정한다.

1959년 일본 정부는 ‘경제백서’에서 ‘전후는 이미 끝났다’라고 밝혔다. ‘전후 책임론’, ‘야스쿠니 문제’의 작가 일본 도쿄대학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교수는 이는 사실을 망각한 정치적 발언으로 현실을 부인하고 또 직시하기 싫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으며 전쟁에 대한 기억을 봉인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거의 70년이 지나고 심지어 이른바 ‘전후 종결’이 된 지도 60년에 가까워졌지만 ‘전후’는 끝난 적이 없다. 일본의 도피로 인해 아시아 나아가 세계 각지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증언을 하고 있고 그 책임을 묻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그 안에서 전쟁을 겪는 이들은 그들의 남은 인생을 분열된 인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젊은이들은 은폐된 역사 가운데 성장하거나 ‘다른 형태’의 잘못된 역사관을 갖게 되기도 하며 혹은 아예 ‘역사관’이 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

일본의 우경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재 우리 모두는 책임을 회피할 때 ‘전후’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하루빨리 책임을 지고 역사를 직시할 때 일본은 ‘보통 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 ‘아사히 신문’ 사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시 일본군은 아시아 각국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이 같은 역사는 절대 잊을 수 없다. 이를 자학 역사관으로 부르는 것은 아둔한 생각이며 겉으로 보이는 국가적 위신 때문에 과거의 덮는 것은 무지한 짓이고 지난 과거의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보통 국가 나아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국가라 할 수 있다. (번역 감수: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일보> 08월 15일 05면 

(Web editor: 轩颂, 樊海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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