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영 원장이 인민일보 판징이(范敬宜) 전 편집장이 선물한 서예작품을 새겨서 만든 석비 옆에 서 있다. [촬영: 인민일보 마페이(馬菲) 기자] |
성범영은 한국에서 가장 큰 분재예술원 - ‘생각하는 정원(思索之苑)’의 원장이다. 기자의 이번 탐방은 두 번째로 제주도에서 이루어졌다. 첫 번째 만남과 마찬가지로 그는 삼베옷(갈중이)에 둥근 헝겊 모자를 쓴 전형적인 농부 차림이었으며, 검게 그을린 얼굴에 순박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미 모질지년(耄耋之年, 70-90세)에 가까운 노인은 인민일보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인연을 지니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역시 지난 일들이 기억 속에서 점차 흐릿해지지만 인민일보와 옛일만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국경을 초월한 우정과 사상 교류
지난 세기 60년대에 성범영 원장은 서울에서 가업을 버리고 홀로 제주도로 와서 수돗물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황무지에서 자신의 분재원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여년의 분투와 노력 끝에 마침내 1992년 분재예술원을 정식으로 개원했다.
성범영은 자신의 분재예술원을 ‘생각하는 정원’으로 명명했다. 이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사색하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이곳에서 성범영과 인민일보 전 편집장(주필)인 판징이(范敬宜) 사이에 국경을 초월한 사상적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1995년 인민일보 편집장을 맡게 된 판징이는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하는 기간에 ‘생각하는 정원’을 참관하게 된다. “판 선생은 정원의 분재며 꽃나무를 자세하게 참관하고 정원 곳곳에 서 있는 설명서를 꼼꼼히 읽으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인터뷰지에 깨알같이 글을 썼다.” 성범영 원장에게 그 날 일어난 일은 지금도 여전히 눈앞에 선하다.
이전까지 판징이는 어린 시절 중국 청대 문학가 공자진(龔子珍)이 쓴 「병매관기(病梅館記)」의 영향으로 인해 꽃나무 분재에 대해 그다지 공감하지 않았으며 집안에서 한 번도 분재를 키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성범영 원장의 생기 넘치는 분재예술원을 참관한 후 그는 이전의 생각이 바뀌었다.
“판징이 선생이 나에게 「병매관기」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그 문장이 매화를 비틀어 비정상적인 기형으로 만드는 분재를 통해 청조 과거제도가 인재들을 학대하고 있음을 넌지시 빗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와 그는 자신들의 분재예술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았다.” 성범영은 분재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학대가 아니라 교정이라고 생각한다. “야성을 지닌 꽃나무를 나름의 설계와 배양을 통해 최종적으로 사람들에게 미감을 주는 ‘인(人)’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부주의한 ‘인’을 세심한‘인’으로 만들고, 경박한 ‘인’을 신중한 ‘인’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나는 이런 점에 대단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국 후 판징이는 「신병매관기(新病梅館記)」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인민일보에 발표하면서 자신과 성범영의 사상적 대화와 충돌에 대해 언급했다.
판징이의 문장은 성범영과 그의 ‘생각하는 정원’을 처음으로 중국에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명성을 듣고 ‘생각하는 정원’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이 끊임없이 증가했다. 성범영도 여러 차례 베이징(北京, 북경)으로 직접 와서 판징이와 만나 ‘생각하는 정원’에서 비롯된 우정을 계속 이어갔다.
“나와 그는 이미 20여 차례나 만났습니다. 매번 베이징에 가게 되면 그와 연락했지요. 그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언제나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의 지난 일들 가운데 성범영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판징이가 언제나 소박한 옷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그를 만나러 오던 광경이었다. “요직에 있으면서도 판 선생은 오히려 소박하고 서글서글했지요. 그의 진지하고 겸손하며 박학다식한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러 차례 만남과 대화 속에서 판징이는 인생의 철학적 사고에 대해 성범영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판 선생은 항상 나에게 말했지요. 소통의 핵심은 문화이며, 문화 교류는 국경을 초월한다고. 내가 볼 때, 나와 판 선생 사이의 우정이야말로 바로 이 말을 인증하는 것이지요.”
두 사람이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을 때 판징이 역시 성범영이야말로 철학가라고 찬사를 보내며 분재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을 써볼 것을 권유했다. 판징이의 지지와 격려 속에서 성범영은 분재에 관한 철학적 사고를 담은 책 생각하는 정원(중국명, 思索之苑)을 장장 10년에 걸친 준비와 퇴고 끝에 2005년 완성했으며, 중국에서도 중문판을 출간했다.
“나는 중국 친구가 한국 친구보다 많다.”
2004년 장옌농(張硏農)이 성범영을 인민일보사로 초청했다. 때마침 베이징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인민일보가 도시 조경 문제로 성범영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자 그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는 당연히 세계적인 전문가를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그저 일개 농부에 불과한데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성범영이 물었다.
이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두 사람은 나무와 분재의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교류했다. 인민일보 기자는 이후 성범영과 인터뷰한 내용을 「식물경관을 도시의 소중한 재산으로 삼자」라는 제목의 탐방기사로 써서 신문에 게재했다.
‘생각하는 정원’에는 각종 조각품이 즐비하고 많은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 이는 대부분 중국 친구들이 성범영에게 증정한 예물들이다. 중국과 한국의 수교 15주년, 20주년, 25주년이 되는 해에 ‘생각하는 정원’에서 기념행사가 거행되면서 이곳은 중한 민간교류의 상징이 되었다. 성범영은 기자에게 향후 한중 우의(友誼) 박물관을 건립하여 그가 수십 년 동안 모은 중국 예술품과 기념품을 진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금 나는 중국 친구가 한국 친구보다 많습니다. 나와 중국의 인연은 인민일보에서 시작되었지요. 나에게 인민일보는 내 평생 가장 존경하고 소중한 친구입니다.” 성범영은 격양된 감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원문 출처: <인민일보>
출처: 인민망 한국어판 | (Web editor: 吴三叶,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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