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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08월15일 

77년 전 오늘, 일본이 항복했다!

14:22, August 15, 2022

77년 전 오늘인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본 천황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종전 조서’를 발표하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중국인들은 바쁘게 뛰어다니며 서로에게 알렸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춤을 추고 징과 북을 치고 횃불을 들었다.

승리의 표어가 골목마다 나붙고

조국산천에는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침략자들의 말발굽이 중국 대지를 짓밟았다.

3500여 만 명의 동포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고

4200여 만 명의 난민은 돌아갈 집이 없었다.

적은 잔인하고 포악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전사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용감히 돌진했다.

국난이 눈앞에 닥쳤을 때 떨쳐일어나 민족의 중추가 되어 몸으로 새로운 창청(長城, 만리장성)을 쌓았다.

완핑청(宛平城)을 지키던 중국 군대가 일본군을 무찌르기 위해 루거우차오(盧溝橋)로 달려가고 있다.

적진의 후방에 고립된 동북항일연합군의

병력이 가장 적을 때는 채 2000명도 되지 않았다.

영하 삼사십도의 혹한 속에서

동북항일연합군 장병들은 구멍 난 홑옷만 입은 채

식량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14년 동안 20여 만 번 출격했다.

그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혁명 정신으로

일본 침략자들과 결사적인 투쟁을 벌였다.

1943년 3월 신4군 3사단 7여단 19연대 4중대는 근거지 주민들의 안전한 이동을 엄호하기 위해

장쑤(江蘇)성 화이양(淮陽) 류라오좡(劉老莊)에서

아군보다 병력이 수십 배 많은 일본 괴뢰군과 결사적으로 싸웠다.

새벽부터 황혼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장병 82명 전원이 장렬히 전사했다.

 

베이징 미윈(密雲)에 사는 덩위펀(鄧玉芬)이라는 이름의 한 모친은

남편과 다섯 명의 아들을 전선으로 보냈다.

그들은 모두 전쟁터에서 전사했다.

임종 전에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를 큰 길가에 묻어주세요.

아이들이 돌아오는 걸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화베이(華北)평원 위 한 농가의

대련(對聯: 종이나 천에 쓰거나 대나무, 나무, 기둥 따위에 새긴 대구)에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국가를 독립시키고

백절불굴로 민족 해방을 쟁취하자”라고 쓰여 있고,

현액(懸額)에는 “끝까지 항전하자”라고 쓰여 있다.

이는

일본 침략자들과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중국인들의 포효이자

항일전쟁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중화민족의 선언이다.

항일 투쟁에서 화베이평원의 후방을 지키던 군민들은 지뢰전, 갱도전 등 적을 섬멸하는 데 효과적인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애국 장병들은

죽기를 작정하고 혈투를 벌였고

각계각층의 민중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공동의 적에 대하여 적개심을 가졌다.

14년간 피눈물을 뿌린 불굴의 항쟁 끝에

마침내 침략자들이 굴복하는 날을 맞이했다.

중국인민항일전쟁의 승리는

근대 이후 중국이 외적의 침입을 물리친

최초의 완전한 승리다.

7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의 빈약함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생기와 희망이 넘치는 중국은

세계의 동쪽에 우뚝 섰다

하지만 우리는 포연이 가득한 역사를

가슴에 아로새기고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죽은 동포들을 추모하면서

장렬하게 목숨을 바친 선열과

불요불굴의 항쟁에 경의를 표한다.

더 나아가

역사를 잊지 말고 평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서로를 일깨워준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인민망/자료 및 사진 출처: 인민일보 위챗 공식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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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李美玉,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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