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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사지마비 남친 돌본 여친,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 (17)

  18:10, February 21, 2014

3년간 사지마비 남친 돌본 여친,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 (17)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3년의 시간을 줄 테니, 3년 안에 다시 일어서면 지원해 주겠다” 2010년 말 19세의 충라이(邛崍) 아가씨 양나(楊娜•가명)가 사지가 마비된 옌훙보(閻紅波•가명)와 사귀려고 부모를 설득했을 때 그녀의 부모는 허락대신 구두로 이와 같은 ‘3년의 약속’을 해 주었다. 3년 동안 양나는 옌훙보를 세심하게 보살폈다. 머지 않아 약속한 3년의 기한이 끝나가는데 신체검사 결과 옌훙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양나의 부모는 집으로 돌아오라고 그녀를 설득했고, 그녀는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올해 27세로 충라이 출신인 옌훙보는 2009년 4월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밤 자전거를 타다 자전거가 벼랑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그는 사지가 마비되었고, 흉부 이하는 모두 감각을 상실했다. 7월에 부모가 부부싸움을 하던 중 아버지가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여 아버지는 실형선고를 받고 수감된 상태다.

양나는 친구 소개로 옌훙보와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평범한 친구 사이일 뿐이었다. 2010년 쑤저우(蘇州)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양나는 친구에게서 옌훙보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 동정심을 느껴 그에게 전화를 했다. 얼마 뒤 옌훙보가 자책감과 열등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양나는 자주 전화를 걸어 옌훙보를 격려하고 타일렀다. 2개월 후 양나는 충라이에 가서 그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방이 사지마비 환자라 양나는 순간 망설였다. 2010년 말 어느 날 옌훙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옌훙보가 전화를 받지 않아 양나는 무척 걱정되었다. 밤늦게서야 옌훙보와 연락이 닿았고 옌훙보는 몸이 아픈데 병원에 데려다 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 순간에 결심하게 되었죠”, 양나는 “내가 가서 너를 돌봐줄게”라고 말했고,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되었다.

쑤저우에서 쓰촨(四川)의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에 양나는 부모에게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 양나는 “엄마도 그(옌훙보)가 불쌍하게 여겨졌던지 3년의 시간을 주었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옌훙보의 병세는 매우 심각했다. 충라이로 돌아온 후 곧장 옌훙보의 집으로 간 양나는 그때부터 옌훙보를 보살피는 중임을 맡게 되었다.

양나는 시내의 한 침구용품점에 출근한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근무해 약 2000위안(약 35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거기다 옌훙보의 최저생계비를 합하면 그럭저럭 두 사람의 지출은 감당할 수 있다.

그 동안 옌훙보는 요로감염과 결석을 앓았고, 그때마다 양나가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했다. 양나는 매일 새벽 일어난 후 옌훙보의 옷을 먼저 갈아 입히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빨래를 하고 저녁밥을 짓고 틈 날 때마다 옌훙보를 안마해준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짬을 내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기분전환을 시킨다.

3년 후 옌훙보가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까마득해지면서 그녀의 부모는 집에 와서 지내라고 그녀를 종용했고, 양나는 힘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양나와 옌훙보 두 사람은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다. 양나는 이것이 전혀 가망 없는 연애인 줄 알면서도 떠날 생각을 하면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한다. “내가 그를 떠나고 나면 그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살아요?” 양나는 고통의 모순 속에서 연인을 위해 6개월을 연장해 옌훙보가 혼자 사는 생활에 적응한 후 천천히 떠나겠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비록 그와 부부가 될 순 없지만 그를 가족으로 여기고 잘 보살필 것이라고 양나는 말했다.

류중쥔(劉忠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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