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망 한국어판 10월 13일] 한국 언니 정미는 지난 8월 말 창저우(常州)시 텅화주관(藤花舊館)을 방문했다. 이곳은 소동파가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대강동거(大江東去)’를 쓴 천고의 문호는 한때 창저우를 ‘비릉아리(毗陵我里, 창저우는 나의 고향)’라 부르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비릉(毗陵)은 창저우의 옛 이름으로, 소식(蘇軾)은 말년에 조정에 두 차례 상소를 올려 창저우에 살기를 청했는데, 그 상소문에 바로 이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는 결국 이곳에서 편안히 생을 마감했다.
등꽃이 활짝 피는 4~5월은 놓쳤지만, 흰 벽과 검은 기와의 장난(江南)식 정원에는 여전히 책 향기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정원 깊숙한 곳에는 창저우 사람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동상이 서 있었고, 그 눈빛은 깊고도 깊었다. 정원 담벼락에는 ‘군자지방(君子之邦)’ 네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한 획 한 획에 창저우 사람들의 이 문호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 있었고, 이 고성의 정신적 바탕도 말해주고 있었다. 고요하고 부드러운 텅화주관은 이 대문호의 말년을 몰입감 있게 느끼게 해주었다. 한평생 떠돌았고 영광과 좌절을 모두 겪었으며 마지막에는 지기와 군자들과 함께 이곳에 머물렀다.
언니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바로 ‘청풍서래, 수파불흥(清風徐來,水波不興: 청풍이 살랑 불어오고, 물결은 잔잔하다)’이라는 구절이었다. 대나무 지팡이와 짚신, 비바람 속에서도 여유로움. 소동파는 초연함을 삶의 답으로 삼았다. 먼 곳에 집착하기 보다는 눈앞의 밥 한 끼,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잘 돌보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비릉아리, 텅화주관에 들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마음이 편안한 곳이 바로 고향이라는 것을. (선위환, 하정미)
원문 출처: 인민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