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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망 실크로드를 가다] 당나라 여권과 비자로 본 중일 교류 (2)

  11:31, September 10, 2014

[인민망 실크로드를 가다] 당나라 여권과 비자로 본 중일 교류
저장(浙江) 지역에서 유행하던 신수경(神獸鏡), 차마화상경(車馬畵像鏡)의 영향과 그 지역 거울제작 장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일본에서는 매우 독특한 삼각연신수경(三角緣神獸鏡)이 출현하게 되었다. 또한 널리 유행하여 지금까지 이미 최소 500여 점의 유사한 청동거울이 일본에서 발견되었다. 인민망 웅치위(翁奇羽) 촬영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9월 10일] 누구나 알다시피 요즘은 여권과 비자가 있어야 세관을 통과해 해외로 입국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러한 여권과 비자 규정이 시작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당나라 시절 여권과 비자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오늘 닝보(宁波)박물관에서 1,100년 전으로 돌아가 당나라 여권과 비자를 살펴보자.

 

닝보박물관 담당자의 소개에 따르면 고대 공문서는 ‘첩(牒)’으로 불렸다고 한다. 당나라는 한(漢)•진(晉) 이후의 전통을 계승해 관문과 나루터 등을 통과할 때 꼭 나라에서 발급한 통행증을 제시하도록 정해놓았다. 이 통행증은 ‘검문소 통과’라 불리는데 즉 ‘본 검문소 통과를 허가함’의 뜻을 지닌다. ‘검문소 통과’ 신청 전, 신청자는 ‘첩’을 구비해야 하며 일반적으로 신청자의 이름, 나이, 휴대물품의 이름 및 수량, 활동지역 등을 기재한다. 닝보대학(寧波大學) 류헝우(劉恒武) 교수는 예를 들어서 더욱 명확한 해석을 했는데 ‘피문(批文)’은 현대의 비자에 해당되며 ‘첩문(牒文)’은 현대의 여권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닝보박물관 담당자의 소개에 따르면, 당나라 정원 19년(803년)에 일본은 당나라 대사로 일본인 승려 사이초(最澄) 등을 밍저우(明州, 현재의 닝보)로 파견하였다. 다음 해, 사이초는 밍저우 관청에 천태산 순례를 신청해 허가를 얻은 후 밍저우와 웨저우(越州) 등지에 법전을 구하며 순례를 하였다. 이후 사이초는 일본으로 돌아간 후 중국의 천태종을 기반으로 일본 천태종을 창설하고 바다에 인접한 용흥사에 머물며 일본 불교문화의 번성과 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또한 해상실크로드의 문화교류를 증명해 주었다. (번역: 임주희 감수: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망(人民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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