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인민망 한국어판 09:43, April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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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를 잘 말린 후 나무로 만든 베틀 안에 넣어 짠다. 룽쓰전(龍思珍•42세) 씨는 매일 집에 있는 베틀에서 몇 시간을 일해 월 천위안 정도를 번다. 베를 짤 때는 손발을 모두 사용해야 하므로 멈출 수가 없다. 바쁜 일이 끝나고 나면 온몸이 쑤신다. |

[인민망 한국어판 4월 18일] 중국 전통 수공예인 모시는 모시풀을 원료로 하며 실이 가늘고 부드러우며 색깔이 맑고 시원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명나라 시대에 장시(江西) 완자이(萬載)현에서 생산된 모시와 징더전(景德鎮)의 도자기, 차(茶)는 장시 3대 특산품이었으며 이들 모두가 해상 실크로드 대외무역의 중요한 화물이었다. 명청 기간 완자이 모시산업이 번창해 현지에는 수백, 수천 개의 가게와 공방이 있었다.
2008년 완자이 모시직조 기예는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전통 직조공예는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취재진은 완자이현 마부(馬步)향 황(黃)촌을 찾아 중국 전통 수공 제작의 복잡한 공정을 취재했다.
완자이현 마부향 황촌에 사는 칠순이 넘는 쑹수야(宋樹牙) 씨는 평생을 모시 생산과 무역에 종사했다. 그도 완자이 모시 직조 기예의 국가 무형문화유산 전승자이다. 쑹수야 씨의 아들 쑹타오(宋濤)는 부친의 업을 계승해 마을에서 모시를 짠다.
모시를 짜는 공정은 비교적 복잡하다. 먼저 손으로 말린 모시풀의 껍질을 벗겨 가는 실을 만들고 나서 실을 이어 긴 마사로 엮어 묶어 둔다.
완자이현 마부향에는 현재 약 40여 가구의 농가가 모시를 제작하고 있다. 쑹수야 씨는 그들의 집을 자주 방문하여 직조상황을 살펴보고 지도하기도 한다. 농가에서 짠 모시는 쑹수야 씨가 내다 판다. 30년 전 마을의 모든 농가에서는 매일 베 짜는 소리가 들렸지만 요즘은 직녀들이 모두 늙었고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년이 지난 후 전통 직조공예의 명맥이 끊길까봐 걱정이다.
1980년대 쑹수야 씨는 매일 약 500필의 모시를 거두었지만 요즘은 매일 몇 필도 거두기 어렵다. 잘 제작된 모시는 주로 일본이나 홍콩으로 수출되고 주문량이 많을 때에는 마을의 생산량이 따라 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쑹수야 씨는 아들을 인근의 펀이(分宜)현이나 쓰촨(四川)성으로 모시를 걷으러 보낸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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