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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07월06일 

교장과 일선 교사, 산골 여고생 1600명의 운명 바꾸기 위해 목숨 건 ‘사투’

16:09, July 03, 2020
[사진 출처: 신화망]
[사진 출처: 신화망]

[인민망 한국어판 7월 3일] 윈난(雲南) 리장(麗江) 화핑(華坪)현 화핑여자고등학교의 수험생들이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 전국 최초 전액무료 공립 여자 고등학교인 화핑여고는 9년제 의무교육을 마친 후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산간지역 여학생들을 주로 모집한다.

화핑여고 개교 12년간 1645명의 여학생이 대학에 진학했다. 2019년 ‘가오카오(高考)’에 응시한 화핑여고 졸업생 118명의 1차 모집 대학 진학률은 40.67%, 대학 진학률은 82.37%로 리장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학교 창립자인 장구이메이(張桂梅) 교장의 노력과 무관치 않다.

“내가 돈을 내서라도 학생들을 공부시키겠다”

장구이메이 교장은 둥베이[東北·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의 3성(省) 및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동부를 포함함] 출신이다. 17살 되던 해 윈난 변방 건설 지원을 왔다가 후에 남편을 따라 다리(大理) 백족(白族)자치주 시저우(喜洲)진 제1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시저우는 남편의 고향으로 그녀는 당시 이곳이 그녀 여생의 귀착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1996년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실의에 빠져 다리 전출을 신청했고, 리장시 화핑현 민족고등학교로 발령받았다.

도착한 지 얼마 안돼 그녀는 이곳의 교육환경이 전에 근무하던 학교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학부모는 1자오(角·약 17원)짜리 지폐를 한 가방 가지고 와서 수업료를 냈고, 어떤 학생은 아까워서 반찬은 먹지 못하고 밥만 먹었다. 어떤 여학생은 교실에서 사라져 시집을 가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마을 간부에게 학부모들과 면담해 자신이 돈을 내서라도 학생들을 공부시키겠다고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 반 학생들이 수업료를 못내 중퇴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남은 목숨을 걸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학생들을 찾아 데리고 왔다”고 그녀는 술회했다.

거지처럼 경비를 모집했는데 ‘사기꾼’으로 매도 당해

2001년 화핑 어린이집(복지원)이 설립됐다. 후원자는 교사 신분인 그녀를 겸임 원장으로 지정했다. 어린이집에서 받는 어린이 가운데 일부는 복지원 문 앞에 버려진 건강한 여자 아기였다. 자식이 없는 그녀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어린이집과 민족고등학교의 경험이 ‘무료 여고를 세우자’는 꿈을 싹 틔웠다.

2002년부터 그녀는 백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우수교사증과 자신에 대한 보도를 가지고, 고아원에서 가장 어린 아기를 등에 업은 채 대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마치 거지처럼 경비를 모금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녀를 ‘사기꾼’으로 매도한 것.

구멍 난 청바지가 꿈과 현실의 전기 마련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그녀는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외지로 재원을 조달하러 돌아다녔지만 1만 위안밖에 마련하지 못했다.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자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였다.

2007년 17차 당대회 대표로 당선된 그녀가 베이징에 와서 회의에 참석했을 때 세심한 기자 한 명이 장구이메이가 입은 청바지에 구멍이 두 개 난 것을 발견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그 후 ‘나에겐 꿈이 있다’ 제하의 보도가 전파를 타면서 장구이메이와 그녀의 여고 설립 꿈 사연이 전국에 알려졌다. 전국에서 후원금을 보내왔고, 리장시와 화핑현이 100만 위안씩 내 학교 설립을 도왔다.

2008년 8월, 화핑여자고급중학교가 건립돼 9월 정식 개학했다. 교사의 급여와 학교 운영 경비는 현 재정에서 부담했고, 학교 건설은 교육국이 맡았다. 장구이메이는 교장으로 취임했고, 교직원 16명을 채용했다.

화핑여자고등학교가 1기 모집한 여학생 100명은 대부분이 소수민족이었다. 입학 점수에 문턱이 없었으므로 학생들은 기초가 부족했고 성적이 쉬이 오르지 않았다.

장 교장이 산속에 있는 학생의 집에 가정방문을 갔을 때 학생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녀가 고등학교에 다니니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장 교장은 학교로 돌아와 선생님들을 모아 놓고 “하려면 하고 하지 못하겠으면 그만두라, 학부모들이 어렵사리 아이들을 우리한테 맡겼으니 최소한 2차 모집 대학에는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궁지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목숨 걸게 만든 건 무엇?

당시로서는 거의 완수가 불가능해 보였던 임무에 적지 않은 교사들이 꽁무니를 뺐다. 거기다 학교 여건이 누추해 학교를 지은 지 6개월에 불과했다. 교사 17명 중 9명이 그만뒀다. 학교가 머잖아 문을 닫게 된 걸 보면서 낙심한 그녀는 인수인계를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던 중 교사들의 자료를 보다가 눈이 번쩍 띄었다. 남은 교사 8명 중 6명이 당원이었던 것.

그들은 학교 2층의 벽 한 면에 당기(黨旗)를 그리고 그 위에다 선서를 썼다. 선서를 낭독하기도 전에 눈물바다가 됐다.

그때부터 매일 새벽 5시께 기상, 밤 12시 휴식, 3분 안에 교실에서 식당으로 이동, 식사 시간은 10분을 초과하지 말 것…. 여고에서 모든 일은 그녀가 엄격하게 제한한 규정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두메산골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식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 그녀는 “여자 아이가 교육을 받으면 3대에 걸친 가족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직언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장 교장과 선생님들이 내건 건 ‘거의 목숨’이었다. 종양 수술을 받은 한 여선생님에게 휴가를 권했지만 그녀는 “의사가 옷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면 전 학교로 돌아가겠습니다. 휴가 안 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011년 가오카오에 응시한 화핑여고 1회 졸업생 중 대학에 69명이 진학해 종합 진학률 100%를 달성했다. 장 교장이 내놓은 성적표는 사람들의 의심과 우려를 불식시켰다. 2011년부터 화핑여고는 9년 연속 가오카오 종합 진학률 100%를 기록했고, 1차 모집 대학 진학률은 1회때 4.26%에서 2019년 40.67%로 껑충 뛰어 시 전체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이 나보다 잘 살기만 하면 된다”

화핑여고의 호성적이 속출할 때 장 교장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녀는 폐기종, 폐섬유증, 소뇌위축증 등 10여 가지의 병에 걸렸다.

6년 전 팔이 아파 들 수 없게 되면서 그녀는 교편을 접고 학교 행정을 맡았다. 그녀는 교장이자 보안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확성기를 들고 다니면서 학생들을 깨우고 아침체조를 하라고 독촉한다.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면 빈곤 산간 지역으로 가정방문을 다니면서 ‘지식은 운명을 바꾸고, 문화는 가난에서 탈출시킨다’는 이념을 전하고 있다.

장 교장은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를 위해 기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여하튼 나는 한 세대의 사람을 구했다.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나보다 잘 살고 나보다 행복하면 된다. 그것이 나에게는 최대의 위안이다”라고 말했다.

경의를 표합니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CCTV뉴스, 중국부녀보(中國婦女報), 인민일보 클라이언트, 평원공자(平原公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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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李正,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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