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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07월22일 

[탈빈곤 이야기] 다볘산이 그리는 현대판 ‘부춘산거도’

09:51, July 22, 2020
[사진 출처: 신화망]
[사진 출처: 신화망]

[인민망 한국어판 7월 22일] 8백리 다볘산(大別山)은 중국 지리상 남북 분계선에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중국 남부지역의 온화한 아름다움이 깃든 풍경도 있고, 북방지역의 호방한 기상과 정취도 스며 있다. 오래된 마을과 녹색 자원, 홍색 이야기(산당이 남긴 혁명 이야기)들이 이곳에서 운치있게 어우러지고 있다.

농촌진흥전략이 시행됨에 따라 다볘산구에도 상전벽해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샤오캉(小康) 생활이 시나브로 옛 혁명 근거지의 대문을 열어 젖히고 있다.

다볘산에 띄엄띄엄 흩어진 산과 물을 낀 마을에 들어서면 현대판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가 서서히 펼쳐진다. 이곳에는 강이 밭을 에워싸고 푸른 산이 마주보는 아름다운 생태와 번창하는 산업, 향수(鄕愁)를 듬뿍 머금은 농경 생활이 있고, 주민들의 얼굴에 흘러 넘치는 환희도 있다. 이런 풍경은 아름다운 농촌에 대한 관광객의 상상력을 만족시킬 수 있다. 

톈푸다완(田鋪大壪) [6월 12일 드론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풍경으로 새로운 보물 탄생…아름다운 신농촌 리모델링

예전에 톈푸다완을 떠나 평생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던 한광잉(韓光瑩·49)이 돌아왔다.

‘고향집(老家寒舍)’ 민박 [6월 12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방금 막 관광객 한 팀을 보내고 잠시 짬이 난 한광잉이 거실에 앉아 멀리 문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한여름이면 톈푸다완은 온통 수묵색으로 넘쳐난다. 과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던 곳이 지금은 이렇게 사람을 매료시킨다. 한광잉은 고향 허난(河南)성 신양(信陽)시 신(新)현 톈푸다완에 민박집을 열었다.

‘완(壪)’의 사전적 의미는 산간의 조그만 평지를 가리킨다. 큰 산이 가로막힌 탓에 이곳은 발전이 더뎠다. 한광잉의 기억 속 톈푸다완은 늘 낡디낡은 모습이었다. 그는 “맑은 날이면 소똥이 밟혔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발이 진흙투성이였다”고 회상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성공은 이 마을을 떠나는 것이었다.” 1990년대 그는 한국에 가서 일했다. 그 시절 그의 집에는 6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는데 5명이 외지에서 일했다.

어린이가 톈푸다완에서 놀고 있다. [6월 12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변화가 서서히 찾아 왔다. 2014년 톈푸다완 등 마을이 3차 중국전통마을에 등재되었다. 뒤이어 신현은 ‘9진(鎮)18만(灣)’을 계획해 전역 관광을 발전시켰다. 톈푸다완은 도로, 배수로, 연못(저수지), 인공습지 정비 등 11개 사업을 마쳐 마을의 면모를 완전히 변모시켰다.

톈푸다완 [6월 12일 드론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오늘날의 톈푸다완은 푸른 산에 둘러싸인 가운데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른다. 다랑논과 연못이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고 소박한 흙벽돌 기와집이 운치 있게 늘어선 산골 풍경이 관광객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신양시에서 다볘산촌 일부가 농촌진흥을 계기로 홍색문화와 녹색자원, 고색창연 마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발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아름다운 농촌이 갈수록 늘어났다. 통계에서 현재 신양시는 국가, 성, 시급 아름다운 농촌 등 명예 칭호 1,872개를 획득했다.

한국에서 일하던 한광잉은 늘 고향의 변화를 주시해 왔다. 2016년 그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옛집을 리모델링해 마을에서 최초로 민박집을 열었다. 리모델링한 후 ‘고향집’ 문 앞에는 대나무를 심었고, 문 위에는 편액을 걸고, 정원에는 티테이블을 세팅했다. 거실 중앙에는 ‘초령연운도(蕉嶺煙雲圖)’를, 오른쪽에는 가족 족보를 걸었다.

민박집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한광잉의 집에는 객실이 6개 있다. 평상시 투숙률은 60% 이상이다. 연휴가 되면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현재 순소득은 연간 10만 위안(약 1700만원)이 넘는다. “고향에 남아 전원을 지키면서 고향을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으니 이곳보다 더 마음 편한 곳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마을 주민들과 혁신 창업…새로운 기회 창출 및 새로운 업태 번창

마을 주민 쉬슈칭(許秀淸·60) 집의 전력 사용량이 5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전기를 어디다 쓰세요?” 손가락을 꼽으며 “에어컨이 3대, 냉장고가 4대…”라며 세던 쉬슈칭이 가전제품이 너무 많아 다 세지 못하겠노라며 손을 내젓다가 “전기를 사용하는 곳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형편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톈푸다완 ‘봄이 오는 집(春臨農家)’ 식당에서 쉬슈칭이 브레이크 타임을 위해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6월 12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쉬슈칭은 톈푸다완 ‘봄이 오는 집’ 식당의 사장이다. 예전에 그녀는 마을에 남은 사람들 중 가장 젊은 사람이었다.

톈푸다완에는 81가구, 295명이 있었다. 외지로 일하러 가는 열풍이 분 후 마을에 남은 사람이 가장 적을 때는 채 50명도 되지 않았다. “갈 수 있는 사람은 다 갔어요. 밥 때가 돼도 굴뚝에 연기나는 집이 거의 없었어요.” 쉬슈칭도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부딪쳤다. 아들의 결혼에다 남편이 아파 20여 만 위안이 넘는 빚을 지게 된

촌민들의 생활상을 보면 샤오캉 여부를 알 수 있다. 톈푸향 당위원회의 사오옌(邵燕) 서기는 2014년 톈푸다완이 아름다운 농촌 건설에 착수한 동시에 어떻게 하면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창출해 주민들을 부자로 만들지가 톈푸향 당위원회와 정부의 앞에 놓인 반드시 답해야 하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쉬슈칭이 톈푸다완 ‘봄이 오는 집’ 식당 안에서 청소하고 있다. [6월 12일 드론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마을 간부의 격려로 쉬슈칭은 마을에서 첫 팜스테이를 열었다. 이웃들이 희망을 담아 ‘봄이 오는 집’이라는 상호를 지어주었다.

“가난한 산골에 사람이 올까?” “막 간판 걸었는데 산통 깨는 소리 하지마!”…. 마을에 팜스테이를 열었을 때 처음에는 주민들이 탐탁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역습’ 후의 텐푸다완이 빠르게 알려지면서 마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쉬슈칭이 만든 음식을 객실에 넣어주고 있다. [6월 12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연휴가 되면 오전 11시부터 반찬을 만들기 시작해 4시까지 손에서 뒤집개를 놓을 틈이 없다.” 3년 만에 쉬슈칭은 빚을 모두 상환했다. 작년 한 해 팜스테이를 해서 30만 위안을 벌었다.

2018년 쉬슈칭은 생애 첫 영예를 안았다. 톈푸향 ‘창업시범 전형’이 된 것. 그녀는 상을 거실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두었다.

마을을 위해 더 많은 ‘쉬슈칭’을 만들어 냈다. 2016년 마을은 삼색(三色) 농경 원예 농민전문합작사를 설립하고, 상하이의 한 관광관리회사와 협력해 녹수청산을 기반으로 ‘촹커(創客) 소읍’을 만들었다.

“촹커(創客·혁신 창업자)가 뭐야?” 마을 주민들은 처음에 ‘촹커’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톈푸다완의 한 문화창의 기념품 가게에서 점원이 죽세공예품을 정리하고 있다. [6월 12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훗날 마을에 속속 생겨났다. 자수가 놓인 신발 깔창을 만들어 파는 가게, 죽세공예품을 파는 가게, 벌꿀과 라아후나이 등 토산품을 파는 가게…. 저마다의 특색을 지닌 ‘촹커점’이 20여 개 생겨났다. 이때 주민들의 마음속에 ‘촹커’ 개념이 진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톈푸다완의 한 문화창의 기념품 가게에서 점원이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다. [6월 12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지난해 톈푸다완을 찾은 관광객은 100만 명을 넘었고, 관광 종합 수입은 8500여 만 위안을 기록했다. 120여 명이 취업했다.

민박집, 팜스테이, 촹커점 외에 톈푸다완 농민들은 앞으로 땅 세 곳에서도 돈을 벌게 된다. 사오옌 서기의 소개에 따르면 톈푸향 전체 12만 묘 임지에 출자해 합작사를 설립하고, 6000묘 경지가 조만간 통합되면 관광농업을 발전시킬 것이고, 108가구가 이주한 후 부지를 임대해 휴양 및 레저촌을 건설할 계획이다.

산업이 많아지니 사람도 많아졌다. 저녁 무렵 마을 석판길을 걸으며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 오르는 광경을 보는 쉬슈칭의 마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흐뭇하다.

고향 걱정이 고향 사랑으로 변해…새로 그리는 ‘부춘산거도’

톈푸다완 [6월 12일 드론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톈푸다완에 들어서면 검은 기와와 황토벽이 마치 소박한 산수화를 펼쳐놓은 듯 하다.

신현 시허(西河)촌에 가면 멀리 짙푸른 물이 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가운데 150여 채의 민가가 옹기종기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마을 곳곳의 가장 미세한 아름다움도 하나도 빠짐없이 잘 표현되고 있다.

뤄산(羅山)현 허자충(何家衝)촌에 들어서면 그림 같은 경치가 더욱 농후하다. 이곳은 과거 홍25군 장정(長征) 출발지이다. 푸른 산이 들판을 에워싼 가운데 고목이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다. 명청(明淸)시대 스타일의 허난(河南) 옛 민가들이 고촌의 역사를 도란도란 들려준다.

오늘날 다볘산구에 분포한 아름다운 농촌들은 향수 가득한 풍경으로 유명해졌다.

신양시는 대대적인 철거나 건설을 하지 않고 마을의 실제 상황과 우위에 기반해 저마다의 특색을 지닌 현대판 ‘부촌산거도’를 그리고 있다.

톈푸다완의 밭에서 주민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6월 12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망]

청산녹수의 아름다운 생태, 날로 번창하는 산업들이 귀향해 창업하고, 고향 건설에 투신하도록 농민공(農民工)들을 유치하고 있다.

신양시 노무서비스판공실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신양시에서 귀농해 창업한 농민공은 13만 명이 넘었고, 창업한 각종 경영 주체는 총 8만 개에 육박했다. 또한 농촌관광, 산촌종합개발, 전자상거래, 재배, 사육 등 산업 분야에 80여 만 명이 취업했다.

평생 다시는 톈푸다완에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던 한광잉이 돌아왔을 뿐 아니라 그의 큰형과 둘째 형수도 고향으로 돌아와 가게를 열면서 고향을 떠났던 식구들이 20년 후 다시 모였다.

톈푸다완촌 주민들의 고향에 대한 리모델링은 계속되고 있다. 일정 시간 간격으로 마을에는 새로운 주제의 상점과 수공예 공방, 특색 민박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오늘날 현실적인 ‘산업 번성, 살기 좋은 생태, 농촌 스타일 문명, 효과적인 정비, 생태 부유’의 전면적인 진흥에 대해 다볘산구 주민들은 자신 있다.

멀리 운무에 휘감인 산과 마을이 보이고, 가까이에서는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광잉은 감개무량해 하며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는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신화망(新華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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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李正,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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