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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05월24일 

‘하이브리드 쌀의 아버지’ 위안룽핑 원사, 향년 91세로 별세...中전국적 애도 물결

17:40, May 24, 2021
위안룽핑 원사
위안룽핑 원사

[인민망 한국어판 5월 24일] ‘하이브리드 쌀의 아버지’, ‘공화국 훈장’ 수상자인 위안룽핑(袁隆平) 원사가 5월 22일 오후 1시 7분(현지시간) 창사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 위안 원사의 영결식이 24일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 밍양(明陽)산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식량안보와 농업 기술 혁신, 세계 식량 발전을 위해 위안룽핑 원사가 한 중대한 기여를 높이 평가했다. 23일 오후 시 주석의 위임을 받은 쉬다저(許達哲) 후난성 당 위원회 서기가 위안룽핑 원사의 빈소를 방문해 “위안룽핑 원사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는 시 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5월 23일 후난 교잡벼연구센터가 마련한 조문실을 찾은 조문객들이 위안룽핑 원사를 애도하고 있다. [사진 출처: 북경일보(北京日報)]

위안 원사는 중국 하이브리드 벼 연구 및 발전의 개척자이자 세계 최초로 벼 잡종강세를 성공적으로 이용한 과학자이다. “위안룽핑 원사가 개발한 하이브리드 쌀은 수백 만 명을 굶주림에서 해방시켰다. 그는 ‘진정한 식량 영웅’이다.” 유엔 경제사회국(United Nations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은 위안 원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1975년 11월 위안룽핑 원사(오른쪽 3번째)와 동료 리비후(李必湖∙오른쪽 1번째)가 하이브리드 벼의 작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출처: 신화사]

2003년 10월 9일 위안룽핑 원사가 후난성 샹탄(湘潭·상탄)현 취안탕쯔(泉塘子)향의 슈퍼 하이브리드 쌀 시범재배지에서 벼를 보며 웃고 있다. [사진 출처: 신화사]

2020년 11월 2일 위안룽핑 원사가 창사에 있는 후난교잡벼연구센터에서 화상연결을 통해 생산량 측정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 출처: 신화사]

그는 전통적인 학술 관점의 속박에서 벗어나 1964년부터 하이브리드 벼를 연구하기 시작해 세계 최초로 경제적이면서 수확량이 많은 하이브리드 벼 품종 개발에 성공했다. 1976년부터 하이브리드 벼의 성과가 중국 전역에 보급∙응용되면서 벼의 단위당 생산량과 총생산량이 큰 폭으로 제고됐다. 20여 년 동안 그는 연구팀을 이끌고 슈퍼 하이브리드 벼의 난관을 뚫고 대면적 시범 재배를 실시해 1헥타르당 10.5톤, 12톤, 13.5톤의 목표를 연달아 달성했다. 작년에는 연간 묘(畝: 면적 단위•1묘는 약 666.67㎡)당 1500kg의 목표를 달성했다.

현재 슈퍼 벼는 높은 수확량을 향해 끝이 없는 스퍼트를 하고 있다. 현재 세계 40여 개 국이 하이브리드 벼를 시험 재배하고 있으며, 10여 개 국이 하이브리드 벼의 대면적 재배를 실현했다. 연간 재배 면적은 700만 헥타르에 달해 현지 벼보다 생산량이 20% 이상 늘어났다.

2018년 기준 하이브리드 벼는 중국에서 누계 90억 묘 이상 보급돼 벼 생산량이 총 6000여 억kg 늘었다. 위안룽핑 원사팀은 개발도상국 80여 개 국의 하이브리드 벼 기술 인재 1만 4천 여 명을 교육시켰다. 중국 식량안보와 세계 식량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국가 기술발명 특등상, 국가 최고 과학기술상, 국가 과학기술 진보상 특등상, ‘개혁선봉’ 등 국내 영예 및 유네스코 ‘과학상’, 이스라엘 울프상(Wolf Prize), 미국 세계식량상(World Food Prize) 등 국제 어워드 약 20개를 수상했다.

위안 원사는 22일 오후 1시 7분 여러 장기의 기능 쇠퇴로 창사에서 별세했다. 큰 별이 지자 전국이 비통에 잠겼고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5월 23일 위안 원사를 배웅하기 위해 전국 각 지역에서 온 조문객들이 빗속에서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민중들이 캐리어를 들고 위안룽핑에게 헌화한다.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고인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그의 생전 거주지를 경유하고 있다.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구슬픈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운구차가 서서히 병원에서 나오자 시민들이 모였다.

운구차가 지나가는 곳마다 차들이 멈추어 서서 경적을 울렸고 가슴 앞에 꽃을 든 사람들은 큰 소리로 고인에게 “위안 할아버지, 잘 가세요! 잘 가세요!”라며 작별을 고했다.

시난(西南)대학 위안룽핑 원사의 조각상 앞에 사람들이 헌화하며 애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모교인 충칭 시난대학의 위안 원사 동상 앞에는 3시간 만에 꽃다발이 수북이 쌓였다.

청두 시민들이 위안룽핑 원사에게 헌화하며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청도시과기국(成都市科技局)] 

위안 원사의 조문실 앞에 꽃다발이 수북이 쌓여 있다.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혹자는 “나는 그와 일면식이 있는 것 같다. 교과서에서, 식탁에서, 사람들 속에서”라고 말했다. 혹자는 “위안 원사가 오후 1시 7분까지 버티다가 돌아가신 것은 우리가 밥을 다 먹길 기다리다가 안심하고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위안 원사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조문객들이 쓴 추모 문구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조문객들이 위안룽핑 원사를 배웅하고 있다. 한 어린이가 위안 원사에게 헌화하고 있다.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가 명리를 따지지 않고 오랫동안 농업 제일선에서 분투하며 하이브리드 벼 연구에 일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벼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는 꿈과 하이브리드 쌀이 세계를 뒤덮는 꿈을 꾸었던 그는 수억 인구를 기아에서 해방시켰다. 그는 고령에도 쉬지 않고 논을 지키면서 스스로에게 도전했고 90대 후반에서 100세 후반까지 계속해서 일하고자 했다. 열정적인 삶을 살면서 유머러스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그는 늘 젊은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자신은 10개의 우렁이를 가지고 있다고 허허거리며 99단을 외웠던……

위안 원사님, 가시는 길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인민일보, 신화사, 중국신문망 등 내용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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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申玉环, 吴三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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