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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10월28일 

中 퇴역 軍 장군, 18년간 고향땅 나무심기에 매진

12:12, October 28, 2021

[인민망 한국어판 10월 28일] 산시(山西) 쭤윈(左雲) 장자창(張家場)촌 높은 정자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무성한 소나무 솔잎이 울창하게 우거져 임해를 이룬다.

이 소나무의 유래에 대해 쭤윈현 주민들은 “2003년 한 퇴역 장군이 고향에 내려와 군복을 벗고 호미자루를 매며 18년 간 의무적으로 200만 그루 이상을 심는 데서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 퇴역 장군은 현지인들에게 ‘녹화 장군’으로 불려지는, 바로 허베이(河北)성 군구 부사령관 장롄인(張連印)이다.

40년간 군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지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무지 녹화, 황사 방지 일선에 나섰다.

🌳식수조림을 자신의 다음 ‘전쟁터’로 삼아

장자창촌은 중국 북방 지역 황무지 집중 분포 지역이다. 예전 장자창촌은 대다수 지역이 황폐한 산과 언덕뿐이어서 황사가 심했다.

2003년 장롄인은 퇴역 후 그리던 고향땅으로 내려왔다. 산 위에 서서 황폐한 민둥산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이 그간 모든 돈으로 민둥산 3천 묘(약 60만 평)에 나무를 심겠다고 결심했다.

계약 당일, 그는 “산림 소유권도 토지 소유권도 원하지 않으며, 30년 후에는 무상으로 집단에 돌려주겠다. 퇴역 간부인 자신은 식수조림을 자신의 다음 ‘전쟁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장롄인은 정부가 제공한 경작지 산림환원 지원금도 고향분에게 주었다. 도로건설, 전기개통, 우물파기, 수로건설 등으로 장롄인 부부가 모은 돈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자금이 부족하자 온 식구들이 돕고 친지와 친구들에게도 부탁해 여러 곳에서 자금을 모았다. 큰딸은 새로 산 집을 담보로 20만 위안(약 3679만 원)을 대출 받았고, 아들은 저축 10만 위안을 내놓았으며, 작은 딸은 전역비 3만 위안과 약혼 당시 시부모님이 준 2만 위안까지 내놓아 초기 자금을 마련하며 장롄인의 급선무를 해결해 주었다.

그는 십 년 넘게 1.8만 묘 이상의 민둥산을 녹지화했다.

장롄인은 산시 쭤윈현 장자창향 베이량(北梁)산에 나무를 심기 위해 묘목을 운반 중이다.

식수 활동은 몸을 쓰는 일이며, 많은 시간과 힘과 인내가 필요하다. 장롄인은 퇴역 후에도 군대 복무 당시 생활 패턴을 유지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묘목을 짊어지고 산으로 가 일을 한다.

“처음 식수 작업은 일손이 필요한 일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내가 자진했다. 장 장군을 따라 나무를 심은 지가 벌써 십 몇 년이나 되었다” 당초 장롄인과 함께 식수 작업을 해온 주민 톈쓰왕(田四旺)은 장롄인의 식수에 대한 열정과 수고를 누구보다 잘 안다며, “이 곳은 모래땅이나 돌산이다. 다른 곳은 물주기 1번할 때 이 곳은 3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첫 해 심은 묘목들은 말라 버렸다. “군대 인솔은 본업이지만 이 일은 문외한이다” 일을 하면서 장롄인은 생태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자신이 상상했던 일만큼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따라서 과학적 지침과 전반적인 규획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장롄인은 ‘배움의 길’을 열어갔다. 식수조림 및 모래방지 관련 방법을 배우기 위해 20번 넘게 임업부 전문가를 찾아 자문하고, 전문 기술인력의 현장 지도에 적극 협조하며, 임업 관련 도서도 10권 넘게 독파했다. 노력이 결국 결실을 맺어, 두 번째 해에는 묘목의 활착율이 85% 이상 제고되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렀는지 위기가 또 찾아왔다.

2004년 겨울, 자라고 있던 약 만 그루의 묘목이 불과 며칠 만에 양과 소떼들에게 먹혔다. 장롄인은 “생태보호의식을 일깨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나무를 심어도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롄인은 양과 소를 치는 목축인들에게 배상을 요구하기는 커녕 마음을 터놓으며 “내가 나무를 심는 것은 생태환경을 개선해 고향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함이다. 모두가 반드시 도와야 하는 일이며, 소나 양이 묘목을 훼손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때 이후 목축인들도 소나 양이 묘목을 훼손할까 봐 매우 조심스럽게 방목했다. 촌민들은 “장 장군의 나무 심기는 우리 마을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며, 더이상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적극 협조했다.

십 년 넘게, 장롄인은 300묘 이상의 묘목 기지를 조성해, 민둥산 1.8만 묘 이상을 녹지화하고 만리장성 자락에 녹색 병풍을 세웠다. 

🌳“당(黨)은 나를 일개 사병에서 간부로 키워주었다. 퇴역 후 고향을 위해 일을 하고 싶다”

장롄인은 군 입대 당시 고향분이 당부한 말을 시종일관 잊지 않았다. 40년간 군 복무를 했던 장롄인은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근면성실하게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일해야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장롄인이 고향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현지 다수 기업들은 그에게 고액 연봉의 스카우트 제의를 했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 “나는 고아 출신으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나를 군에 보내준 것도 고향분들이며, 당이 나를 일개 사병에서 간부로 키워주었기 때문에 고향땅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장롄인은 털어놓았다.

귀향 후 나무를 심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도 꽤 있었다. 하지만 장롄인은 “나무를 심는 일은 힘들고 고되지만 누군가 이 수고하지 않으면 고향분들은 어떻게 잘 살 수 있겠냐?”라고 말했다.

장롄인의 아들 장샤오빈(張曉斌)은 아버지가 귀향 후 농민이 되려는 이유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잘 알지 못했다.

장샤오빈과 그의 아내는 이유를 알고자 장롄인의 임업장을 찾아왔다. 예전 민둥산과 황폐한 언덕 그리고 불어오는 황사는 간데 없고, 푸른 색으로 입혀져 꽃과 새들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니 이들 부부는 그 동안 아버지가 나무심기에 쏟은 노력이 느껴져 눈물이 났다고 한다.

2015년 4월, 장샤오빈 역시도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와 함께 나무 심는 일에 나섰다. 매일 아침 나가면 저녁에 돌아오는데, 낮 동안 뜨거운 태양과 모래바람을 견디며 묘목운반, 나무심기, 물주기 작업을 쉬지 않고 하며, 저녁이면 부모님과 함께 담소도 나눈다. 장샤오빈은 눈에 가득 담기는 푸른 숲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선택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녹화 장군’ 장롄인 가족에게 경의를 표한다! (번역: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일보 위챗 공식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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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汪璨,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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