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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02월23일 

24년간 100회, 빈곤 초등학교에 장학금 기부한 ‘희망 할아버지’

17:46, February 22, 2022
2018년 5월 19일, 저우훠성 할아버지(오른쪽 앞)와 진자이현 희망초등학교의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신화사]
2018년 5월 19일, 저우훠성 할아버지(오른쪽 앞)와 진자이현 희망초등학교의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신화사]

[인민망 한국어판 2월 22일] 장쑤(江蘇)성 쿤산(昆山)시 출신인 저우훠성(周火生)은 60년 당의 경력을 가진 오랜 공산당원이다. 그는 다볘(大別)산 혁명노구(革命老區: 토지혁명 전쟁시기와 항일 전쟁시기에 중국공산당의 지도로 창건한 혁명기지)인 안후이(安徽)성 루안(六安)시 진자이(金寨)현에서 집집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희망 할아버지’다. 얼마 전 저우훠성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이들에게 온전한 봄을 남기고 갔다.

저우훠성은 1951년부터 교직에 종사했다. 퇴직 후 신문에서 안후성 진자이현 전국 최초 희망초등학교(希望小學: 빈곤 지역의 교육 사업 발전을 돕기 위해 단체 혹은 개인이 자금을 출연하여 건립한 초등학교)를 알게 된 후 첫 장학금을 송금했다. 1995년 퇴직한 저우훠성은 모아둔 월급과 모집한 자선금을 전하기 위해 진자이현으로 향했다.

눈앞의 광경이 그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높이가 제각각인 의자, 십여 명의 아이들은 판자 하나를 둘러싸고 엎드려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일기에 “직접 와보니 이곳의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라고 한탄했다.

2017년 9월 3일, 저우훠성이 희망초등학교가 있는 안후이성 진자이현 난시(南溪)진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그곳의 아이들을 보러갔다. [사진 촬영: 쑤이융하오(隋永浩)]

첫 번째 장학금 전달 이후 10번째, 50번째, 99번째가 뒤를 이었다. 희망초등학교의 선생과 학생들은 주기적으로 자상한 할아버지가 자신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진자이현 희망초등학교 아이들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우훠성은 항상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방법을 찾아보마”라고 말했다.

2017년 9월 1일 아침, 저우훠성이 삼륜자전거를 타고 도서 바자회에 가고 있다. [사진 촬영: 쑤이융하오]

자선금 모집을 위해 저우훠성은 쿤산시의 100여 개 학교를 돌아다니며 도서 바자회를 열었다. 몸무게 40kg가 조금 넘는 할아버지는 늘 자신의 몸보다 무거운 책을 메고 버스를 탔고, 배가 고프면 사오빙(燒餅) 하나로 배를 채웠다.

매번 진자이현으로 올 때마다 저우훠성은 만 위안(약 170만 원)이 넘는 장학금을 가져왔다. 한 번은 새벽 1시에야 난시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가장 싼 여관이 하룻밤에 15위안밖에 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는 그 돈이 아까워 역 앞에 앉아 동이 트길 기다렸다. 그는 그 15위안을 아껴 아이들에게 연필 100자루를 사줬다. 

2018년 5월 18일 저우훠성은 기부품을 가득 실은 버스를 타고 진자이현으로 향했다. 이날은 23년 동안 100번째 장학금을 전하러 가는 길이었다. 저우훠성은 “내가 움직일 수만 있다면 101번째, 102번째도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후 할아버지는 건강이 나빠지며 더이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마을로 갈 수 없었다. 20여 년 동안 저우훠성은 진자이현에 48만 위안을 기부했고, 각계 인사를 동원해 1200만 위안을 기부하며 1300여 명의 학생을 도왔다.

저우훠성, 마음을 울리는 이 이름의 주인공은 88세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했다. 그의 눈빛에는 깨끗함과 사랑이, 아이들의 눈빛에는 희망과 미래가 담겨 있다. (번역: 오은주)

원문 출처: 인민망/자료 출처: 신화사 위챗 공식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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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汪璨,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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