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망 한국어판 7월 19일] 올해 6월, 23세 리수족(傈僳族, 율속족) 출신 위옌차(余燕恰)는 쿤밍(昆明)의과대학 제2 임상의학대를 무사히 졸업했다. 그녀는 굳이 고향 땅 누장(怒江)주로 돌아가 일자리를 얻겠다고 다짐했기에 누장주 인민병원에 취직했다.
위옌차의 집은 윈난(雲南)성 누장주 푸궁(福貢)현 부라(布臘)촌에 있다.
때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부터 누장강 양안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라촌 주민들은 누장강을 건너려면 가공 삭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위옌차도 강 건너 학교로 등교했기 때문에 마찬가지였다.
위옌차가 어릴 적 가동 삭도를 타고 강을 건널 때 촬영된 모습
하루는 위옌차가 혼자서 가공 삭도를 타고 강을 건너 등교하는데, 마침 누장 취재를 하러 온 기자에게 목격되어 촬영되었다.
당시 위옌차는 겨우 8살로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녀는 매일 가공 삭도를 타고 두 차례 강을 건너서 등교했는데, 혼자서 가공 삭도를 탄 지도 벌써 2년째였다.
위옌차가 어릴 적 강 주변 가공 삭도에서 찍은 사진
“귓가에는 휙휙하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아래로는 거센 강물이 흐르며, 또 빠르게 뛰는 내 심장 소리도 들린다.” 지금까지도 위옌차는 가공 삭도를 타던 경험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당시 어린 위옌차가 매일 혼자서 가공 삭도를 타던 모습을 목격한 기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전국 다수 언론과 함께 사회 모금활동을 전개해, 푸라초등학교 앞 강변에 사랑의 다리를 건설했다.
2008년 3월 사랑의 다리가 건설되자, 현장의 기자들과 기부 인사들이 위옌차가 가장 먼저 다리를 건너라고 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다리를 본 위옌차는 다리 중간 지점을 지날 때 다리 아래로 거세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자 겁을 먹고 걸음을 멈추었다. 결국에는 현장 사람들이 부축해서 다리를 건넜다. 위옌차의 운명은 이 때부터 바뀌었다.
사랑의 다리가 건설된 후 기부 인사들의 도움으로 위옌차는 쿤밍, 베이징 등지를 관광하며 처음으로 누장 밖의 멋진 세상을 보았다. “마치 검은 길에 환한 등이 차례로 켜지는 것처럼 생활도 더 이상 고되지 않아 더욱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희망의 씨앗을 심자 위옌차에게도 새로운 동력이 생겨났다.
2018년 위옌차는 568점으로 쿤밍의과대학 제2 임상의학대 의학검사기술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위옌차의 진학 과정에서 빈곤퇴치와 향촌진흥 사업이 누장강 양안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위옌차와 집 앞에 새로 세워진 대교
국가 정책자금의 지원으로 산 속에 위치한 위옌차의 집은 강변의 새로운 집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진학 과정에서 늘 장학금을 받았다. 누장 협곡에서 강을 건너는 용도로 사용된 가공 삭도는 2016년에 철근 시멘트 다리로 모두 대체되었고, 따라서 주민들의 이동은 더욱 편리해졌고, 위옌차 집 아래 쪽 강변에 더 큰 다리가 세워졌다.
누장강을 끼고 건설된 아름다운 도로가 개통되고, 누장강 양안 관광자원 개발이 탄력을 받으면서, 외진 누장 협곡은 날로 새로워졌다.
위옌차의 졸업 사진
“예전 나를 도와준 분들이 너무 많았는데,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너무나 그 분들에게 감사한다.”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고, 고향 땅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와 사회 각계의 관심과 도움 덕분이다. 이 모두를 위옌차는 마음에 새겼다. 대학에 들어가던 때부터 그녀는 배운 모든 것을 고향 땅을 위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 취업 ‘1대 1’ 면접 때에 위옌차는 선생님들에게 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녀는 고향 땅에 있는 병원의 구인 모집을 줄곧 기다렸기 때문에, 다른 지역은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여러 번의 취업 기회도 놓쳤다.
학교 선생님은 위옌차의 심지 굳은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학교 측은 누장주 취업 촉진 관련 활동 때 특별히 구인 기관 측에 위옌차를 적극 추천했다. 결국 위옌차는 누장주 인민병원에 취직했다.
“앞으로도 학교 측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고, 배운 것을 고향 땅 보건 사업 발전을 위해 열심히 기여할 것이다.” 9월부터 일하게 되는 위옌차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 충만하다. (번역: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망/사진 제공: 위옌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