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망 한국어판 1월 22일] 1월 15일 아침 8시, 저장(浙江)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아동병원 병실에서 7살의 신장(新疆) 웨이우얼족(維吾爾族, 위구르족) 소녀 마이러·아이리시무(瑪依熱·艾力西木, 이하 이이)가 퇴원을 앞두고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137일 동안 이이는 많은 난관을 극복했다. 게다가 세 명의 저장성 ‘엄마’들이 생겼다. 이이는 자오원팅(趙文婷), 양리쥔(楊麗君) 의사와 산자니(單佳妮) 수간호사를 자오 엄마, 양 엄마, 산 엄마라고 부른다.
🧡한 번의 교류가 가져온 생명의 희망
양리쥔 씨는 저장대 아동병원 심부전∙기계보조순환과 의사다. 작년 5월 신장(新疆)웨이우얼(維吾爾, 위구르)자치구에 가서 무료 진료와 심부전 구호 공익 홍보를 했다. 현지의 병원과 질병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가정이 저장대 아동병원의 심부전 아동 구호 프로젝트를 알게 되고, 이이도 위독할 때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이 교류 덕분이다.
이이는 신장 아커쑤(阿克蘇) 바이청(拜城)현에서 태어났다. 2024년 6월 말 현지 병원에서 확장형 심근병증(DCM) 진단을 받았고, 7월에 우루무치(烏魯木齊) 아동병원의 중환자실로 긴급 이송됐다. 이 기간에 현지 병원과 저장대 아동병원 심장센터는 원격진료를 진행했다.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은 후에도 이이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현지 의사는 서둘러 이이를 항저우(杭州)로 데리고 가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을 것을 권했다.
그해 9월 1일 심한 심부전을 앓고 있던 이이는 부모님과 함께 약 4000km를 달려 ‘마지막 희망’을 안고 항저우의 저장대 아동병원으로 진찰을 받으러 갔다.
“아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말기 심부전이라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았다.” 양 씨는 치료를 지체하지 않기 위해 병원이 이이에게 간단하고 신속한 수속 절차를 밟게 하는 한편, 모든 관련 학과 전문가를 소집해 회진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이의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심부전 치료 강화에서부터 인공호흡기를 떼고 심폐기능 치료를 위한 에크모(ECMO)를 달기까지… 양 씨는 이이가 중환자실에서 지내는 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9월 13일 병원의 수창(舒強) 교수와 팀은 이이를 위해 Jarvik 2015라는 어린이 전용 심실보조장치(인공심장)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이는 국내 첫 사례로 국내 심실보조장치 삽입 수술의 최연소, 최저 몸무게 기록을 경신했다.
“심실보조장치로 에크모를 교체해 심장 이식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 양 씨는 이 수술의 전 과정에 참여해 이이의 곁에서 난관을 함께 극복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체외 순환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심각한 폐동맥 고혈압(PH)이 발생해 상황이 매우 위급해졌다.
“이이에게 다시 에크모를 달았다.” 양 씨와 팀은 밤낮으로 이이의 상태를 면밀히 주시했다. 에크모와 심실보조장치 덕에 이이는 드디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수술 후 3일째 되는 날 ECMO를 제거했고, 수술 후 10일째 되는 날 인공호흡기를 떼고 입원 병실로 이송됐다.
이이의 부모님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금하는 한편, 15만 위안(약 2960만 4000원)의 특별기금 지원을 신청했다. 저장성 여성아동기금회가 개설한 사랑의 계좌에 모인 사회 기부금은 82만 위안을 넘어섰다. 동시에 병원은 무료 임시 거처를 제공하고, 웨이우얼족 자원봉사자와 연락을 취해 언어 소통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일가족이 항저우에서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병뿐만 아니라 마음도 치유
이이가 빨리 건강해지도록 하기 위해 수간호사 산자니는 이이의 부모와 상의한 후 아이가 자율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트레이닝을 시작했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식사 전에 산 씨가 간호사들을 데리고 와서 번갈아 가며 이이의 등을 두드려 주고 가래흡입기로 가래를 제거해주었다.
이이와 엄마(가운데), 수간호사 산자니(오른쪽)가 병실에 있다.
이이는 너무 허약해서 음식을 거의 삼킬 수가 없었다. 먹은 것을 삼킬 수 없으니 우선 우유를 마셔 영양을 보충하고, 빨대를 사용할 수 없으면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먹였다. 때로 50mm의 우유를 먹이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밥 먹는 것뿐만 아니라 걷기 훈련도 해야 했다. 매일 회진할 때, 수술 후 재활 관리를 담당하는 자오원팅(趙文婷) 씨는 이이를 데리고 몇 걸음씩 걸었다.
처음에는 침대 위에서만 일어설 수 있었는데 내려와서 잡고 서 있을 수 있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침대 주변을 잡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수술 후 약 20일 만에 이이는 혼자 침대에서 내려와 걷기를 시도했다.
병세를 모니터링하는 것 외에 아이의 정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수술 후 한동안 이이는 놀러 가고 싶어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이이의 실망한 표정을 본 자오 씨는 휠체어에 이이를 태우고 복도 끝으로 가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보여주고, 먼 곳의 고층 건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이의 엄마는 “이이가 평소에는 낯을 가리는데 세 명의 ‘엄마’ 앞에서는 무엇이든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항저우는 우리의 제2의 고향”
2024년 10월 11일 이이는 3명의 저장 ‘엄마’들과 함께 병원에서 하루 앞당겨 만 7살 생일을 보냈다.
12월 2일, 다행히 이이가 기다리던 심장 기증자가 나타났다. 심장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 격리병실로 옮겨진 후에도 양 씨는 매일 이이를 보러 갔다.
정성 어린 간호 끝에 이이의 정신 상태가 점점 좋아졌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겨울로 들어선 이후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된 이이는 당직실과 간호사실로 ‘엄마’를 찾으러 갔다. 얼굴이 발그레 생기가 도는 이이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는 것을 지켜보면서 산 씨는 “성취감 만땅”이었다고 말했다.
“신장은 우리의 고향이고, 항저우는 우리의 제2의 고향입니다.” 이이의 아버지는 감격해하며 “이곳의 정부와 병원이 여러 방면에서 편의를 제공해주어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별을 앞두고 이이가 자오원팅 의사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2025년 1월 15일 낮, 모든 수속을 마친 이이는 부모님을 따라 병실을 나서며 모두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이의 퇴원 소식을 들은 많은 의료진이 배웅하러 왔다.
“이건 이이가 먹는 약입니다. 다 먹고 나서 먹을 수 있도록 조금 더 준비했습니다.” 산 씨는 아이의 부모에게 약을 건네며 이같이 말했다. 자오 씨는 재빨리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웃으면서 이이에게 손을 흔들고 이이가 엘리베이터에 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이날 밤 9시 45분, 이이 가족을 태운 항공편이 아커쑤 훙치포(紅旗坡)공항에 착륙했다. 다음 날, 일가족 세 명은 고향 바이청현으로 돌아왔다. 이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신장 바이청현의 자선가들과 친척들이 꽃과 인형을 가지고 찾아왔다. 이이의 엄마는 “바이청현 인민병원이 여러 명의 의사를 집으로 보내 이이의 건강검진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이가 아주 잘 회복되고 있다면서 제때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재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이의 오빠도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네 식구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그는 “여동생이 무사히 돌아왔다. 우리 가족을 도와주신 분들께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인민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