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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05월29일 

주무랑마봉 대해부 ②

17:26, May 28, 2020

만약 산봉우리에 성격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꿋꿋한 소신파일 것이다.

 

세계의 지붕 위

뭇 산 정상에 우뚝 선

‘세계 최고봉’인 그는 영예를 독차지하고 있다.

주무랑마봉(珠穆朗瑪峰, 에베레스트산)은

무수한 사람들이 오매불망 추구하는 신성한 좌표다.

 

생태

주무랑마봉은 높고 웅대할 뿐만 아니라

기세가 당당하다.

주위 20km 범위 안에

뭇 봉우리가 즐비하고 뭇 산이 첩첩이 병풍을 이루고 있다.

해발 7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만 해도 40여 개나 된다.

 

유명한 남쪽 3km 지점에 있는 뤄쯔봉(洛子峰·로체)은

해발 8516m로 세계 4번째 고봉이다.

동남쪽에 있는 마카루봉(馬卡魯峰·마칼루)은

해발 8463m로 세계 5번째 고봉이다.

북쪽 3km에는 해발 7543m의 장쯔봉(章子峰·창체·Changtse)이

서쪽 7855m에는 누쯔봉(努子峰·눕체·Nuptse)이

7145m에는 푸모리봉(普莫里峰·Pumori) 등 고봉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거대한 봉우리 바깥쪽에는

세계 일류의 고봉들이 멀리서 마주보고 있다.

동남 방향으로는 세계 3번째 고봉 간청자봉(干城嘉峰·칸첸중가·Kangchenjunga)이 있다.

해발은 8588m.

서쪽에는 해발 8201m의 줘아오유봉(卓奧友峰·초오유·Cho Oyu)과

8046m의 시샤방마봉(希夏邦馬峰·시샤팡마·Shishapangma) 등

뭇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어 산꼭대기들이 용솟음치는 듯한 장엄한 경관을 연출한다.

만산이 즐비한 경관 가운데

낮은 위도 덕에

동-서 방향의 주향과 비슷한

주무랑마봉은 남북파와 판이한 자연대가 펼쳐져

산지 경관 박물관으로 불린다.

 

남파 위도가 낮고

인도양의 따뜻하고 습한 기류의 영향을 받아

네팔 및 중국 경내의 가마거우(嘎瑪溝), 룽샤거우(絨轄溝) 등

해발 약 2000m 지점

산지 아열대 상록활엽수림이

산골짜기를 따라 뻗어

칭짱(靑藏)고원의 최고 명품 경관을 연출한다.

비교하면

북파가 강수량이 적고, 기후가 한랭하고 가물다.

게다가 북파 대부분이 해발 4000m 이상에 있어

4000m 이하의 자연대가 없는 관계로

전형적인 대륙성 고원 생태 특징을 보인다.

 

해발 4300m에 있는

시짱 딩제(定結)현은

보기 드문 고한 습지로

고원 조류인 검은목 두루미와 황오리의 서식지이자

푸른양, 컁당나귀 등 표유동물의 은신처이기도 하다.

싸얼(薩爾)향의 습지에서 검은목 두루미가 유유자적 먹이를 찾고 있다. [촬영: 인민일보 덩젠성(鄧建勝) 기자]

해발 4900m

세계 최고 해발에 위치한 사원

융포사(絨布寺)이 있다.

이곳은 일반 관광객의 여행 종착지이자

주무랑무봉 베이스캠프 앞에 위치한 최후의 문명이다.

해발 5200m

자우라(加吾拉)산 입구에는

해발 8000m 이상의 산봉우리 4개가

위용을 자랑하며

갈 길이 아득하지만 정복을 기다리고 있다.

 

등반

주무랑마봉 발견 이후

주무랑마봉 등정은

전 세계 탐험가들의

흥미진진한 화제거리였다.

 

1921년, 인류가 주무랑마봉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영국 탐험가 조지 맬러리는

수 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왜 주무랑마봉에 올라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이 말은 등산계에서 명언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 등산가 에드먼드 힐러리가

네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남쪽 비탈을 따라 주무랑바봉에 올라

인류 기록 이래

최초로 등정에 성공한 등산대로 기록됐다.

에드먼드 힐러리(왼쪽)와 텐징 노르가이

1960년 5월 25일

중국 등산가 왕푸저우(王富洲)와 궁부(貢布), 취인화(屈銀華)는

최초로 북파에서 등정해

중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최고봉에

발자취를 남겼다.

올해로 꼬박 60주년을 맞았다.

 

1975년 5월 27일

중국 등산대가 두 번째로 주무랑마봉에 올랐다.

장(藏)족 대원 판둬(潘多)는 세계 최초로

북파에서 등정에 성공한 여성에 이름을 올렸다.

왼쪽부터 취인화, 왕푸저우, 궁부

주무랑마봉 정복은 시대별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도돼

인류의 자연 탐사에 대한 지적 탐구심을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 진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주무랑마봉의 탄생이 인류의 여정에서 시작됐듯

산의 이야기는

사실 인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그에게 최고봉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비로소 고도 측정에 대한 도전이 있었고

용감하게 전진한 많은 등산가들이 있었다.

등반 대원들이 룽부(絨布) 빙하를 따라 주무랑마봉 전진 캠프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베이징대학교 2018년 주무랑마봉 등산대 제공]

지구가 형성된 시간에 비해

주무랑마봉은 젊은 봉우리에 속한다.

어쩌면 수억년이 지난 후에

다시 1만m, 2만m

심지어 3만m를 돌파할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새로운 판 운동을 시작해

대지의 모습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산은 여전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그곳에 우뚝 서서

우리의 끝없는 탐색을 격려하기도 하고

우리를 일깨우기도 할 것이다.

자연에 경외심을 가져야 하고

자연 만물과 조화롭게 공생해야 한다고.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인민일보 위챗 공식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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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李正,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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