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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11월24일 

고대 목욕탕은 어떤 모습일까? 고고학 또 새로운 발견!

16:12, November 24, 2020
[사진 출처: 신화사 ‘신화시점’ 웨이보]
[사진 출처: 신화사 ‘신화시점’ 웨이보]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24일] 3년간 계속된 발굴을 통해 고고학자들은 톈산(天山)산 북쪽 산기슭의 신장(新疆) 창지(昌吉) 회족(回族)자치구 치타이(奇台)현 경내에서 고창회골(高昌回鶻: 서기 10세기경)의 공공 목욕탕 유적지를 발견했다.

목욕탕 유적지 발굴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중국인민대학교 고고학문박학과 웨이젠(魏堅) 교수는 새로 발견한 목욕탕 유적지는 치타이현 당(唐)나라 돈고성(墩古城) 유적지 동북부에 위치하며, 유적지 총면적은 400㎡로 구역은 기능별로 로비, 작업 구역, 목욕 구역 등 3개로 나누어진다고 소개했다.

목욕탕 유적은 반지혈식(半地穴式) 구조로, 상하 2층의 건물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층은 지하에 위치하여 연도(煙道)와 열을 공급하는 기초 건물 공간이고, 상층은 지상에 위치해 있어 목욕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웨이젠 교수는 이 벽돌 지지대로 받친 하층을 통해 건물을 위아래 두 개의 폐쇄적 공간으로 나눈 건축방식은 고대 로마 시대 <비트루비우스 건축 10서>에서 하이퍼코스트(hypocaust, 고대 로마 건축의 마루 밑 난방)라고 불렀다. 지지 기둥을 이용한 목욕탕 지하 난방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사용 시 난로에 불을 피우면 지지 기둥 사이의 연도를 통해 연기가 하층에서 퍼지고 ‘지열’을 형성하여 목욕탕 윗층 목욕 공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목욕탕 유적지가 있는 당나라 돈고성 유적지는 서기 7세기 전반의 당나라 초기부터 14세기에 버려질 때까지 당나라, 고창회골과 원(元)나라 등 세 시기를 거쳤다. 고고학자들은 층위 관계와 출토 유물을 토대로 목욕탕 유적이 고창회골 때 최초로 조성되었고, 원나라 시기까지 개조되어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

웨이젠 교수는 유적지의 규모가 크고, 건축 규격이 높으며, 사용한 시간도 길고 수리가 많이 된 점을 고려하면 이 목욕탕 유적지는 도시의 공공 목욕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했다. “당나라 돈고성이 유라시아 초원 내륙에 위치해 있어 여름철 무더위, 강풍이 부는 날씨, 추운 겨울과 짧은 무상시간 등 기후 조건에서 공공 목욕탕을 건설하는 것은 도시민들의 위생 요구를 충족시켜 주고, 방문객들에게 목욕과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번역: 오은주)

원문 출처: 신화사 ‘신화시점’(新華視點)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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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李正,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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