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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02월12일 

11년前 전 국민 울린 ‘춘윈 엄마’, 드디어 찾았다!

10:53, February 09, 2021
 윈쪽: 2010년 1월 30일, 난창 기차역에서 큰 마대자루를 지고 아이를 안은 바무위부무가 기차를 타러 가고 있다. 오른쪽: 2021년 1월 22일 촬영한 이족 전통의상을 입은 바무위부무 [사진 촬영: 신화사 저우커(周科) 기자]
윈쪽: 2010년 1월 30일, 난창 기차역에서 큰 마대자루를 지고 아이를 안은 바무위부무가 기차를 타러 가고 있다. 오른쪽: 2021년 1월 22일 촬영한 이족 전통의상을 입은 바무위부무 [사진 촬영: 신화사 저우커(周科)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2월 9일] 얼굴이 빨갛게 언 젊은 엄마가 왼손에 불룩한 배낭을 들고 오른손 팔에 아기를 안고 등에 큰 마대자루를 짊어지고 있는 사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녀의 허리는 비록 등에 진 짐을 못 이겨 많이 굽었지만 눈빛에는 의연함이 묻어난다…

이 사진은 11년 전 춘윈(春運: 중국의 설 연휴 특별수송) 기간에 신화사 저우커(周科) 기자가 난창(南昌) 기차역에서 찍은 사진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다.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많은 중국인의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춘윈 엄마’는 그 시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속 젊은 엄마의 이름과 주소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녀의 아이는 잘 있는지? 시간이 촉박해 급하게 사진을 찍느라 미처 연락처를 받아놓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11년간 이런 궁금증이 줄곧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장시(江西)성 근무 시절 100개에 가까운 구∙현을 돌아다녔지만 사진 속 모녀를 찾지 못했다. 훗날 산둥(山東)성과 광둥(廣東)성에서 근무하면서도 위챗과 웨이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수소문했다…

2020년은 빈곤퇴치 공략전의 해였다. 그는 이 모친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졌다.

최근에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다. 네티즌이 제공한 단서를 근거로 사진들을 비교한 끝에 사진 속 주인공의 신분을 확인한 것. 그녀의 이름은 바무위부무(巴木玉布木)이고 이족(彝族)이며 나이는 32살이고, 쓰촨(四川)성 량산 (凉山)이족자치주 웨시(越西)현 와옌(瓦岩)향 타오위안(桃園)촌에 살고 있었다.

그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다량산(大凉山)으로 달려갔다.

1월 21일 바무위부무를 보자마자 그는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이때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기억하고 말고요. 이건 제가 난창에서 일할 때에요.” 사진을 자세히 보고 또 보고 나서 바무위부무는 웃다가 울었다!

세월이 비껴간 듯 그녀의 얼굴은 11년 전보다 오히려 더 젊어 보였다.

1월 22일 바무위부무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촬영: 신화사 저우커(周科) 기자]

그 후 3일 동안 바무위부무는 지난 11년간 가정의 변화를 들려주었다.

타오위안촌은 다량산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6묘(畝: 면적 단위·1묘는 약 666.67㎡)의 밭에 옥수수, 메밀, 감자를 심었다. 배불리 먹을 수는 있었지만 여윳돈이 없었다. 2009년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지출이 늘어나자 그녀는 외지에 일하러 가기로 결심했다.

배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막일밖에 없었다. 난창의 한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날랐는데 한 달 수입이라고 해봐야 고작 5, 6백 위안에 불과했다. 공사장에서 둘째 딸이 자주 아팠다. 2010년 춘절(春節) 전에 그녀는 딸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당시에는 표준어를 구사할 수 없어서 기차표도 다른 사람이 대신 사주었다. 등짐에는 이불과 옷가지들이 가득 들어 있었고, 손에 든 배낭에도 라면, 빵, 기저귀가 들어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6개월 뒤에 둘째 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시대에 타오위안촌에서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진흙길밖에 없었고 외출하려면 마차를 타고 가야 해서 아이들이 아프면 제때 치료를 받기가 힘들었다…”라고 말하며 그녀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와 남편이 다시 외지에 나가 일하려고 계획하고 있을 때 마을 간부가 와서 정부가 ‘맞춤형 빈곤구제’ 정책을 내놓아 외지에 나가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녀의 집은 등록 빈곤가구로 분류되었다.

1월 22일 바무위부무가 맞춤형 빈곤구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 촬영: 신화사 저우커(周科) 기자]

정부가 파견한 농업 기술자가 와서 마을 주민들에게 담뱃잎, 과수 재배를 지도했다. 그녀와 남편은 가진 땅 6묘 전부에 담뱃잎을 심었다. 첫해는 경험 부족으로 5, 6천 위안을 벌었다. 이듬해부터 수입이 배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재배 면적도 15묘로 늘었다. 작년 가족은 10만 위안의 소득을 올렸다.

예전에는 진흙집에 살았다. 우기가 되면 집에 물이 새 늘 이불이 축축했고, 빗물을 받기 위해 세숫대야와 나무통을 놓아두어야 했다.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방안을 더듬으며 비가 새는 곳을 찾은 다음 아이들을 안고 날이 밝길 기다렸다.

2018년 국가로부터 주택 신축 보조금 4만 위안을 지원받고 그녀가 7만 위안을 마련해 택지 옆에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새 집을 지었다. 거실 하나에 방 3개 구조의 집을 밝고 깨끗하게 새로 칠하고 바닥 타일도 붙였다. 전기밥솥,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도 장만했다.

1월 22일 바무위부무가 아이들과 함께 집 앞에 앉아 있다. [사진 촬영: 신화사 저우커(周科) 기자]

눈 깜짝할 새에 큰 딸 우치라부무(巫其拉布木)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는 철이 들어서 의젓하고 공부도 꽤 잘한다.

큰 딸 우치라부무가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 촬영: 신화사 저우커(周科) 기자]

바무위부무는 유창한 표준어를 구사하며 “아이들은 널찍한 시멘트 길을 걸어 10여 분이면 학교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바무위부무의 고향으로 통하는 향촌 도로 [사진 촬영: 신화사 저우커(周科) 기자]

11년의 필사적인 분투와 11년의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나서 이족 누님은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고 만족감과 여유도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인민일보 해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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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李正, 吴三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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