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망 한국어판 6월 4일] 신장(新疆) 허톈(和田)은 아름답고 우아한 포용성이 강한 도시다.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는 도시에는 각양각색의 건축물이 있다. 민족, 종교와 문화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허톈은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도시다. 서로 다른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는 놀라울 만한 발전을 이뤄냈다. 이 도시의 사람들, 예술인, 종교인, 학자 그리고 매 가정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본다면 당신은 이 도시가 생기발랄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통, 행복의 맛…옛 위구르인의 민가 이야기
퇀청(團城)은 예전에 허름한 주택 단지에 불과했다. 지금은 신장 허톈의 가장 유명한 거리가 되었다. [사진 출처: 인민망]
마이마이티밍·우푸얼 씨가 조옥 앞에 앉아 있다. [사진 출처: 인민망]
68세의 마이마이티밍·우푸얼(麥麥提明·吾甫爾) 씨가 200년의 역사가 있는 현관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마이마이티밍씨는 위구르족(維吾爾族) 의료계 집안에서 태어나 8대째 의료업에 종사하고 있다. 조옥(祖屋)에 있는 일층 선반에는 각종 위구르족 약품이 진열돼 있다.
마이마이티밍 씨는 퇀청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본래 허름한 주거지역이었다. 지금 이곳은 허톈시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가 되었다. 2016년, 정부는 도시 재조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이마이티밍 씨의 낡은 단층집은 위구르족 풍의 3층 집으로 변신했다. 마이마이티밍 씨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자녀는 2층과 3층에 거주하고 있으며, 1층에서는 작은 진료소를 운영한다. 그는 이곳에서 진료하고 위구르족 전통 약품을 판매한다.
마이마이티밍·우푸얼 씨의 집안 곳곳에는 비둘기 장식품이 있다. [사진 출처: 인민망]
“나는 새집이 자랑스럽다. 퇀청의 민가는 각각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옥상에는 작은 바람개비가 있다. 그리고 집 안에는 예쁜 비둘기 장식품도 있다. 나는 비둘기를 좋아한다.” 그는 말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퇀청의 재조성 프로젝트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위구르족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마이마이티밍 씨는 말했다. 최근 그의 조옥은 거리의 유명한 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또한 그는 환자에게 치료도 제공하고 있다. 그는 관광객과의 소통을 좋아한다. 특히 그는 바깥세상의 이야기와 소식을 전해주는 관광객을 좋아한다.
마이마이티밍·우푸얼 씨의 아들(오른쪽)은 이 가문의 8대 위구르족 전통 의학 전승자다. [사진 출처: 인민망]
평생 위구르족 전통 의학에 종사한 그는 현대의학과 선진기술의 힘을 믿는 환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통 치료가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은 위구르 문화의 수용체이자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아들이 위구르족 전통 의사가 된 만큼 우리의 전통 요법을 계속 보급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투니샤한·아부두아이니 씨는 아름다운 아이더라이쓰(艾德莱斯: 위구르족이 생산하는 비단) 비단을 좋아한다. 위구르족은 아이더라이쓰 비단으로 일상복을 만든다. [사진 출처: 인민망]
마이마이티밍 씨의 조옥에서 몇 블록 떨어진 상점에서 42세의 투니샤한·아부두아이니(吐尼沙汗·阿布都艾尼) 씨가 바쁘게 손님과 흥정을 하고 있다. 아이더라이쓰 비단은 위구르족이 무늬가 알록달록하고 색채가 화려한 옷을 만들 때 사용하는 전통 직물이자 허톈의 특산물이다.
투니샤한·아부두아니 씨의 일가족 13명은 새로 지어진 집의 2층과 3층에 거주한다. [사진 출처: 인민망]
투니샤한 씨는 한 치의 빈틈 없이 꼼꼼하고 겸손하다. 위구르족 가정주부의 온화함이 있는 그녀는 다년간의 장사로 사업 수완도 뛰어나다.
“나는 예쁜 물건이 좋다. 손님이 아이더라이쓰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쁘다. 우리의 전통이 전국, 나아가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투니샤한 씨는 말했다.
마이마이티밍 씨와 마찬가지로 투니샤한 씨도 줄곧 퇀청에서 살았다. 2018년, 투니샤한 씨와 그녀의 어머니, 삼 형제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 총 13명은 새로 인테리어한 집으로 이사했다. 투니샤한 씨는 1층에 자신의 아이더라이쓰 비단 상점을 열었고, 한 달 수입은 4000위안(약 69만원)이 넘는다.
“수입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쁘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며 그녀는 말했다. 이어 “위층에서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아래층에서는 나만의 가게를 운영한다. 이보다 더 나은 생활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투니샤한·아부두아이니 씨가 새집 앞에 서 있다. [사진 출처: 인민망]
그녀는 주변의 지역사회와 일상생활 속에 위구르족의 전통과 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고 했다. 지금도 이웃과 서로를 집에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고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퇀청의 주민들과 위구르족의 전통은 비단에 새겨진 자수처럼 실처럼 얽혀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다”고 투니샤한 씨는 말했다.
종교, 신앙의 즐거움…‘탈속’과 ‘세속’ 사이의 균형
아부두루쑤리·셰무시딩(阿布杜如蘇力·謝木西丁) 씨가 신장 허톈시 위지미리커(玉吉米力克) 이슬람 사원에서 종교의식을 집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인민망]
날이 밝아지자 위지미리커 이슬람 사원에서 많은 사람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이슬람 사원의 목제 제단 뒤편의 작은 방에는 방금 퇴근한 택시기사 아부두루쑤리 셰무시딩 씨가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종교 의식 집전을 준비한다. 그가 이맘(伊瑪: 이슬람 교단의 지도자)을 맡은 지 4년이 지났다. 이제는 종교와 속세 신분 전환이 비교적 수월하다.
50세의 아부두쑤리 씨는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이슬람교 전문가다. 4년 전, 위지미리커 이슬람 사원의 150여 명의 신도는 그를 사원의 이맘으로 선정했다. 아부두쑤리 씨와 같이 허톈의 종교인들은 여러 신분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 신분 외에 그들은 농민이자 건축 노동자이자 상인이다. 아부두쑤리 씨의 속세 속 직업은 택시기사다.
“종교는 우리에게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즐겁고 풍요로운 사람만이 타인을 도울 수 있다. 나는 종교 신앙과 성실한 생활을 견지하며 이 말을 실천해 왔다”며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생활을 하면 더 착한 사람이 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아부두쑤리 씨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바로 아들이다. 청년은 현재 신장커신(新疆科信)직업기술학원에서 법률을 배우고 있다. 아부두쑤리 씨는 과학, 법률과 사회 지식을 배우고 ‘탈속’과 ‘세속’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현대 무슬림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삶의 일부다. 가정도 일도 모두 나에겐 매우 중요하다. 나의 종교적 책임은 속세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가 말했다.
78세의 카디얼·위수푸 씨는 위지미리커 이슬람 사원을 자주 찾는 신도 중 한 명이다. [사진 출처: 인민망]
올해 78세의 카디얼 위수푸(喀迪爾·玉素普) 씨는 20년 넘게 위지미리커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의 집은 이슬람 사원에서 3km 떨어져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버스를 타고 이슬람 사원에 와서 이곳의 다른 무슬림 친구들과 귀중한 시간을 보낸다.
“지난 20년 동안 위지미리커 이슬람 사원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모습이 새로워졌다. 위지미리커 사원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슬람 사원인데 이곳에 와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일과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무슬림과 비(非)무슬림은 서로 차별할 게 아니라 화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배경에서 온 사람들은 서로 도와야 한다. 이 모습이 내게는 아름다운 삶이다.” 카디얼 씨가 말했다.
혁신, 인터넷의 힘…민족 문화의 전시와 전승
신장 위구르자치구 허톈시 디리누얼·이스칸단 씨가 온라인 라이브 방송에서 위구르족 전통 목조 식기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인민망]
29세의 대리 강사였던 디리누얼·이스칸단(迪麗努爾·伊斯坎旦) 씨는 현재 왕훙(網紅: 인플루언서)이 되었다. 그녀는 두 동업자와 함께 인터넷에서 위구르족 전통 목조 식기를 반년 넘게 판매하면서 온라인에서 ‘위구르족 전통 예술품 열풍’을 일으켰다.
본인이 왕훙이 되려고 하는 초심에 관해 묻자 그녀는 “나는 어릴 때부터 위구르족 전통 목조 기술로 만든 숟가락을 사용해왔다. 2017년 낡은 숟가락이 망가졌지만 만드는 이가 없어 새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20년 퇴사 후 그녀는 허톈으로 와 마지막 남은 위구르족 목조 장인을 찾았다. 그녀는 몇 달 동안 전통 기술을 보유한 장인 10명을 찾아냈다. 그들 중 가장 젊은 사람도 이미 40대였다.”
“내가 그들을 찾았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나무 조각품을 만들지 않았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이 전통 기술을 배우기 싫어한다.” 그녀가 말했다.
“기술의 발전이 전통 문화와 공예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힘이 있으면 그것을 다시 살릴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 온라인 라이브 방송으로 전통 식기를 판매하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공유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와 목조 식기에 얽힌 흥미로운 문화적 의미에 감동한 전국 고객들이 위구르족 목조 예술품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해외 팬들로부터 위구르족 스타일의 숟가락을 사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매일 2만 위안(약 348만원)의 목조 식기를 판매한다. 모든 수공업자와 계약을 맺어 그들은 현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그녀는 기쁘다고 말했다.
이얼샤티·이부라인 씨가 온라인 라이브 방송에서 허톈의 장미 꽃차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인민망]
디리누얼 씨와 같이 30세의 이얼샤티·이부라인(伊爾夏提·依布拉音) 씨도 왕훙이다. 그의 주력 판매 상품은 허톈의 농산물이다. 이얼샤티 씨는 현지 시장과 농업 축제에 대한 예술 영상을 제작하는 콘텐츠 제작자다.
이얼샤티 씨는 매주 그의 파트너인 2명의 우수한 위구르족 댄서를 초대하여 라이브 방송으로 시청자에게 위구르족 춤을 선보인다. 그는 시청자들이 위구르족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두 여성이 생방송에서 위구르족 춤을 추며 시청자에게 현지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인민망]
“인터넷은 나 같은 젊은이들의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플랫폼이다. 이와 동시에 위구르족의 문화를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있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전통과 혁신 사이에 역동적인 융합이 이뤄지는 것을 보니 흥미롭다”고 이얼샤티 씨는 말했다. (번역: 오은주)
원문 출처: 인민망(人民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