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톈(葉錦添)은 2001년 영화 ‘와호장룡(臥虎藏龍)’으로 중국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아트디렉터 예진톈이 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 ‘야연(夜宴)’ ‘적벽(赤壁)’ 등에서 보여주는 시각적 아름다움에는 역사와 전통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연구와 변화가 숨어 있다. 그는 평소 자신은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다며 “검은색에는 모든 색이 들어 있다. 다만 검은색이 드러나 보일 뿐”이라고 말한다.
2020 도쿄올림픽 중국 선수단 시상복 [사진 출처: 신화사]
[인민망 한국어판 8월 30일] 도쿄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 양첸(楊倩)이 중국 선수단의 전통적인 시상복 ‘용복’을 입고 시상대에 올라서자 순식간에 칭찬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레드 컬러와 화이트 컬러를 이용해 강렬하면서도 심플한 느낌을 살리는 것이 바로 2020 도쿄올림픽 중국 선수단 시상복 디자이너 예진톈이 원하던 바였다.
“내 작품은 상징화 되지 않을 것이다”
시상복의 디자인 컨셉에서 그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했다. 스포츠웨어인 만큼 신체와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옷과 신체의 물리적 관계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중국이 차별화되는 점이 이런 물리적 관계 위에 정신적 차원이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 쿵푸(功夫)와 같다. 그는 “중국 쿵푸는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무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의협 정신을 중요시한다”고 덧붙였다.
예진톈이 시상복 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자료 사진/출처: 신화사]
다른 많은 나라의 올림픽 단복 스타일, 도안, 색상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한 끝에 그는 자신의 디자인 컨셉을 정했다. 즉 중국적 느낌을 표현하면서 중국인의 기백과 포용성, 스포츠맨십 등 정신적 요소도 구현해야 하고, 내포된 아름다움을 더 많이 전달해야 한다는 것.
그는 “올림픽 정신은 인류를 고무시키는 정신이다. 이번에 시상복을 디자인하면서 차별화되는 중국적 요소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며 “의상을 통해 중국 문화가 세계에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중국 시상복을 디자인 할 때 중국에 관한 상상을 고정된 틀에 가두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용이나 창청(長城, 만리장성), 팬더 같은 상징화된 요소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당(唐)나라 전통 의상의 특징인 라운드칼라와 ‘비약’ 등 동방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선택했다”고 소개했다.
예진톈이 시상복 디자인을 스케치하고 있다. [자료 사진/출처: 신화사]
이번에 디자인한 중국식 라운드칼라는 칼라 부분의 라인을 단전에까지 연장시켰다. 이는 중국 쿵푸 중 기를 단전으로 모으는 ‘기침단전(氣沉丹田)’을 상징한다. 넓은 부분을 차지하는 화이트 컬러가 레드 컬러를 더욱 강렬하게 돋보이도록 하면서 여백의 미를 살렸다. 한편 전체적인 모양은 몸이 위로 올라가는 형태로 디자인했다. 이에 대해 그는 “화이트 컬러를 위주로 위가 넓고 아래는 좁게 디자인했다. 이렇게 하면 다리가 더 길어 보이고 허리 라인을 모아주므로 어깨 라인이 더 잘 살아나 기백과 역동성이 더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 경극 배우 메이란팡에 빠진 소년
1986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쉬커(徐克) 감독의 추천을 받은 그림 덕에 영화 ‘영웅본색’에서 미술 디자이너로 발탁됐다. 그 후 홍콩 영화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쉬커 감독 등 유명한 홍콩 감독과 콜라보해 무협 영화의 바이블로 꼽히는 ‘와호장룡’ 등을 제작했다.
왼쪽부터: ‘야연(夜宴)’‘와호장룡’‘적벽(赤壁)’ 스틸 [사진 출처: 인터넷]
1980년대 “당시의 홍콩은 서양 문화가 주류를 이뤄 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는 거의 백지에 가까웠다.” 왜 새롭고 좋은 것은 모조리 서양의 것인가? 승복할 수 없었던 소년 예진톈은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동서양 문화를 탐구해 언젠가는 그들보다 더 잘 만들고 말겠다는 포부를 가슴에 품었다.
그는 유럽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좋아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극(京劇)과 전설적인 경극 배우 메이란팡(梅蘭芳, 매란방)을 만나고 나서 쿨하면서도 중국적인 것에 빠져들었다. 그는 “당시 나는 친구들과 미친 듯 도서관이나 서점을 뒤지며 매란방, 상소운(尙小雲), 정연추(程硯秋), 순혜생(荀慧生) 등 4대 명배우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 다녔다. 책 한 권에서 그들을 소개한 내용이 한두 페이지만 있어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고 회상했다.
영화 ‘적벽’ 촬영 도중 예진톈(왼쪽 2번째)과 우위썬(吳宇森) 감독(중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 사진/출처: 신화사]
세계 다른 문화권을 두루 돌아보고 여러 나라의 국제 일류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그는 되려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중국 문화에는 내재하는 무형적 힘이 있는데 예술 창작에서 이것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변하면서 창작의 원천이 된다”면서 “나는 그 속에서 많은 자양분을 얻었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예진톈이 영화 ‘와호장룡’ 로케 촬영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99년 9월 19일 촬영/출처: 신화사]
예술 창작에서 그는 늘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와호장룡’의 경우 서구인들은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서구인들의 문화에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감정을 표현할 때 말을 할듯 말듯하면서 뜸을 들이는 일이 없다. 하지만 전체 영화의 스타일, 언어, 서술 방식이 동시에 드러날 때 그들은 이해할 수 있고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는 “세계 트렌드가 변하고 있지만 예술가는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개중에는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신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