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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12월13일 

확고한 증거 산더미! 난징대학살 진상 알리는 기록물

15:10, December 13, 2022
사진 상단 왼쪽: 난징안전구 국제위원회 위원이었던 미국인 선교사 존 매기가 난징대학살 만행 촬영에 사용한 영화 카메라/사진 하단: 존 매기의 필름 박스 등 유물/사진 상단 오른쪽: 존 매기의 조각상 및 1938년 5월 미국 저명 시사 잡지 ‘라이프(LIFE)’에 실린 존 메기가 촬영한 난징대학살 사진 10점 [사진 출처: 신화사]
사진 상단 왼쪽: 난징안전구 국제위원회 위원이었던 미국인 선교사 존 매기가 난징대학살 만행 촬영에 사용한 영화 카메라/사진 하단: 존 매기의 필름 박스 등 유물/사진 상단 오른쪽: 존 매기의 조각상 및 1938년 5월 미국 저명 시사 잡지 ‘라이프(LIFE)’에 실린 존 메기가 촬영한 난징대학살 사진 10점 [사진 출처: 신화사]

[인민망 한국어판 12월 13일] 난징(南京)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에 소장된 19만 2000여 점의 사료, 1216세트 6318점의 국가 진귀 유물은 어떠한 희석이나 미화, 왜곡, 부인으로도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다.

외국인의 카메라에 담긴 학살 영상,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촬영한 전쟁터 사진, 일본군 병사 250명의 구술 영상, 극동국제군사재판소에서의 증언… ‘공동의 기억을 위해-중국 침략 일본군 난징(南京)대학살 희생자 동포 기념관 해외 공모전’이 13일 난징에서 열렸다.

존 매기의 영상

난징대학살 기간 미국 선교사 존 매기(John Gillespie Magee)는 16mm 카메라로 일본군에게 폭행을 당한 난징 시민을 몰래 촬영하고 일본 전투기의 난징 폭격, 일본군의 청장년 수색∙체포, 일본군에 폭행당한 피해자가 병원에서 치료받는 등의 진귀한 장면을 기록했다. 존 매기는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소가 도쿄에서 일본 전범을 재판할 때 법정에서 증언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촬영한 영상자료도 증거로 제시했다.

호리코시 후미오의 사진첩

오카자키 슌이치(가명)라는 이름의 일본인이 2008년 5월 기념관을 찾아와 사진첩을 기증했다.

2008년 호리코시 후미오의 아들이 기증한 사진첩 표지 [사진 제공: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

이 사진첩은 그의 아버지 호리코시 후미오의 것이다. 일본은행 직원이었던 호리코시 후미오는 1937년 징집돼 입대했다. 그는 상하이와 난징 침공에 참여했으며 일본군의 중국 침략 관련 사진을 수집·보존했다. 사진첩에는 난징 쯔진(紫金)산 아래 중국인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일본군이 난징 중화문에 내걸은 난징 함락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표어, 총검이 장착된 소총을 들고 중국인 시체 옆에 서서 우쭐거리고 있는 일본군 병사 등 난징대학살 만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5장의 사진을 포함, 총 125장의 역사 사진이 있다.

일본군이 난징 중화문에 내걸은 난징 함락 기원 표어 사진 [사진 제공: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은 군인들이 전쟁터 사진 등을 몰래 숨겨 귀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전쟁터에서 귀국하는 군인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다. 오카자키 슌이치는 당시 부친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군사당국의 조사를 받지 않았으므로 이 사진을 보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군 병사 250명의 구술 자료

일본 초등학교 역사 교사 다마키 마츠오카가 1997년 중국 침략 일본군이 중국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을 때 많은 침략 일본군 병사들에게 ‘난징 건망증’이 나타났다. 이는 조사를 하겠다는 마츠오카의 결심을 막지 못했다. 마츠오카는 결국 일본군 250명의 구술 자료를 남겼다. 하지만 이들 중 3명만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쳤다. 다마키 마츠오카는 2006년 이 자료를 기념관에 기증했다.

다마키 마츠오카가 일본군 병사들을 인터뷰하면서 구술 증언을 녹음한 테이프 [사진 제공: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

수십 년 동안 피해자와 가해자를 조사∙취재하고 일본인을 포함한 각국 국민에게 난징대학살 역사를 들려준 것이 다마키 마츠오카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다마키 마츠오카는 일본 우익분자의 공격과 위협에 대해 “정의와 양심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놀런의 파일

극동국제군사재판소의 검사 11명은 여러 나라 출신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캐나다 검사 헨리 그래턴 놀런(Henry Grattan Nolan)은 일본 A급 전범이자 난징대학살 참사의 원흉인 마쓰이 이와네의 재판을 맡았다. 그는 검사들을 이끌고 마쓰이 이와네가 난징대학살 만행의 주요 책임자임을 지목하는 대량의 증거를 수집했으며, 마쓰이 이와네의 거짓말을 폭로해 마쓰이 이와네를 단죄했다.

놀런의 파일 영인본 [사진 제공: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

중국계 캐나다인 위청장(余承璋)은 2017년부터 헨리 그래턴 놀런의 생애자료와 증서, 원고 등 3000여 쪽 분량의 ‘놀런 파일’ 33권을 수집·정리해 2019년 기념관에 기증했다.

헨리 그래턴 놀런이 법정에서 A급 전범 마쓰이 이와네를 반대 심문하고 있다. [사진 제공: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인민망/자료 출처: 신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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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李美玉,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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