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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07월14일 

‘서하릉’ 세계유산 등재! 베일에 싸인 무덤 주인 (4)

16:36, July 14, 2025
1930년대 독일 비행조종사가 닝샤 허란산을 비행하며 촬영한 서하릉 3호릉 [사진 출처: 신화사]
1930년대 독일 비행조종사가 닝샤 허란산을 비행하며 촬영한 서하릉 3호릉 [사진 출처: 신화사]

[인민망 한국어판 7월 14일] 현지시간(파리) 7월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닝샤(寧夏)후이족(回族, 회족)자치구의  ‘서하릉’(西夏陵)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중국의 세계유산은 총 60건으로 늘어났다.

‘서하릉’ 유산의 핵심인, 광야에 우뚝 솟은 제왕릉 9기에는 대체 누가 묻혀 있을까?

분포범위 약 40km²

서하와 관련된 현존하는 최대 고고학 유적지

‘서하릉’은 중국 서북지역 11~13세기 당항족(黨項族,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 1038~1227년) 왕조의 능묘 유적지로, 닝샤(寧夏)후이족(回族, 회족)자치구 인촨(銀川)시 허란(賀蘭)산맥 남단 동쪽 기슭에 위치해, 황허(黃河)강을 바라보며 약 40km² 넓이로 분포되어 있다.

세계유산에 신청한 ‘서하릉’은 제왕릉 9기, 순장묘 271기와 대형 북단 건축 유적지 1곳, 제방사업 유적지 32곳을 포함한다. 이 밖에 ‘서하릉’ 유적지 박물관에 7000여 점의 관련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

‘서하릉’은 서하와 관련된 현존하는 최대 규모와 최고 수준에 보존도 잘된 고고학 유적지다.

서하 왕조는 서기 1038년 건국된 후 190년간 존속하다 1227년 몽골군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1972년~1977년에 고고학자들이 처음으로 ‘서하릉’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과학적 발굴을 진행했다.

묘 주인의 신분 알 수 없어

9기 황제릉 중 7호릉만 신분 밝혀져

서하릉은 당(唐: 618~907년)과 송(宋: 960~1279년) 왕조의 능묘 양식을 계승했으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비각이 심하게 훼손됐다. 7호릉만 동서 양쪽 비각을 정돈하면서 대량의 서하 문자와 한문자로 새겨진 비석을 발견했다.

따라서 7호릉은 서하 제5대 황제 인종(仁宗) 인효(仁孝)의 무덤으로, 묘 주인이 유일하게 밝혀진 능묘다.

그리고 3호릉은 최대 규모에 정교하게 지어져 개국 황제 이원호(李元昊)의 능묘로 추정하고 있다.

당항족, 한족(漢族), 토번족(吐蕃族), 거란족(契丹族), 여진족(女真族) 등 여러 민족이 융합되고, 다원적 문화 교류로 인해 유일무이한 ‘서하릉’이 탄생했다. 또한 그 진실성과 완전성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중화문명의 ‘다원일체’(多元一體) 구조와 통일된 다민족 국가 형성 과정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로 평가받고 있다.

번역: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망/자료 출처: 인민일보, CCTV 뉴스, 신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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