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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05월18일 

책임감의 본보기 리훙타 “민중의 일이 바로 큰일”

15:16, August 16, 2021
[사진 출처: 신화사]
[사진 출처: 신화사]

[인민망 한국어판 8월 16일] 처음 본 리훙타(李宏塔) 씨는 올해 72세로 백발의 노인이지만 정신도 또렷하고 걸음도 잘 걸으신다. 리훙타 씨는 안후이(安徽)성 정협(政協∙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원로 당조(黨組) 조원이자 부주석이다. 군인, 노동자를 거쳐 공청단(共靑團∙중국공산주의청년단), 민정(民政), 정협 등에서 일했다. 그는 홍색가풍을 이어 시종일관 검소하고 청렴하게 집안을 다스리고, 일선에서도 늘 민중들과 함께해, 당원 지도간부의 충실, 책임감의 본보기다. 얼마 전 그는 ‘7·1 훈장’ 을 수상했다.

검소, 훌륭한 가풍 계승

“부모님께서는 말로 또 몸으로 검소한 태도를 영원히 유지해야 한다고 말씀했다”라고 리훙타 씨는 말한다. 어릴 적 베이징에서 살 때 부모님이 고물시장에서 구매한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등교했다고 한다.

나중에 부모님의 근무지 변경으로 그는 안후이로 이사와 학교를 다녔다. 하루는 누가 집으로 건포도 몇 봉지를 보냈는데,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당시 어려서 잘 몰라 한 봉지를 뜯어서 먹었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안 후 그를 혼냈다. “우리에겐 한 가지 권리밖에 없다. 바로 인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일을 조금 했다고 선물을 받는 것은 공산당원이 할 일이 아니다.” 이후 아버지는 건포도를 그대로 돌려주었고, 리훙타 씨가 먹은 봉지는 돈으로 환산해 돌려주었다.

“아버지의 엄격한 잣대는 본보기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나 또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았다”라고 리훙타 씨는 말한다. 일하면서 그는 예외를 두지 않았는데, 아주 드문 중요한 공무를 제외하고는 절대 전용차량을 타지 않고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리훙타 씨의 부인은 “간부로 20년 넘게 일하는 동안, 남편의 자전거가 4대 망가지고, 비옷 5벌, 고무신 7컬레가 해졌으며, 나이가 들면서 2003년도에는 자전거를 전기스쿠터로 교체했는데, 당시 웃으며 ‘시대에 걸맞는’ 행동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기층과 더불어, 민중의 마음소리 이해

1987년, 38세였던 그는 공청단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해 새로운 보직을 받아야 할 때였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그는 “민중을 위하는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원이다”라고 말했다.

2003년 여름, 화이허(淮河)강에 물난리가 나자 리훙타 씨는 민정청 관계자를 데리고 안후이성 잉상(潁上)현 수해 지역 시찰에 나섰다. 당시 천막과 텐트가 있었지만 일부 수재민들은 여전히 노숙을 하는 상황이었다. 리훙타 씨는 수해 지역 천막 안까지 살폈는데, 안이 열기로 가득해 온도를 측정했더니 천막 안 온도가 40도가 넘었다. 그래서 즉각 현지 당정기관에 행정 사무실을 수재민들에게 내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며칠 후 수만 명의 수재민들에게 사무실이 배정되었다.

“홀로 된 노인은 부모님으로, 고아와 장애아동은 자식같은 마음으로 행정 대상을 가족으로 여긴다.” 이는 리훙타 씨가 자주 하는 말이다. 안후이성 민정청 근무 기간에 그는 매년 절반 이상을 기층민들과 함께했다. 그는 자주 걸어서 촌락 가구를 방문하고 나서는 향진(鄉鎮), 현시(縣市) 지역으로 나가 간담회에 참석했다.

2000년 전후로 안후이는 농촌 세금개혁을 추진해 향진 재정 지출소득 관리를 규범화했다. 이전에는 향진이 일부 5보[五保: 먹는 것 보장, 입는 것 보장, 의료 보장, 주택 보장, 장례 보장(고아의 경우 교육 보장)] 재정을 부담했는데, 당시 안후이성 민정청장을 맡은 리훙타 씨는 개혁 후 5보 대상자들의 기본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닌지를 매우 고민했고, 즉각 실사 조사에 나섰다. “어려운 민중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일하는데 무슨 망설임이 있겠는가? 반드시 직접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그 실제 상황을 반영해야 개혁보완조치에 참고가 될 수 있다.” 이는 고민하는 동료들 본 리훙타 씨가 한 말이다.

이렇게 리훙타 씨는 직접 가서 알아보고 자료를 모아 보고하며, 5보 대상자의 기본 생활 보장 수준을 확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결국 5보 대상자의 기본 생활이 더욱 보장받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엄격, 당원의 본분 지키기

리훙타 씨는 허페이(合肥) 화학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매우 열심히 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공장 업무의 핵심 역할을 하면서 더욱 스스로에게 엄격해졌다.

리훙타 씨는 세 식구가 55평방미터 넓이의 낡은 주택에서 16년 넘게 살았다. 안후이성 현지 간부 주택 표준에 근거해 부청급 진급 후에는 70평방미터 이상 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데도, 1984년에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서향 2칸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리훙타 씨는 일선에 있을 때 4차례 주택분배일을 맡았지만 본인은 분배받은 일이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순서를 당원 간부 가장 마지막에 두었기 때문이다.

공청단 허페이시 당위원회 근무 당시에 큰 집을 분배받았지만, 젊은 직원이 신혼집이 급하다는 사실에 큰 집을 작은 평수 3채로 바꾸어 젊은 동료 3명에게 분배해 주었다. “집이 필요한 직원들이 이렇게 많으니 일단 그들의 어려움부터 해결하고 보자. 내 생활은 이미 넉넉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리훙타 씨는 말했다.

기관 차원에서 ‘온정전달’, ‘사랑전달’ 행사를 하면, 리훙타 씨의 기부액은 늘 1등이다. 저소득 가정에 설날 만두피가 없거나 도움을 청하러 온 정리해고자가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하는 사소한 일도 그는 살핀다. 평소 형편이 어려운 주민을 만나면 가지고 있던 돈으로 언제든 돕는다.

2008년 초, 리훙타 씨가 안후이성 정협 일을 시작했을때, 안후이에 폭설이 내렸다.

상황 파악을 위해 그는 8일 연속 3개 시를 다니며 집집마다 조사했다. 점심 때 그는 길거리의 한 국수집을 찾았다. “민중의 일이 바로 큰일이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며, 밥 먹는 일 따위로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퇴직 후에도 그는 쉰 적이 없다. 중화자선총회에 가입해 중서부 어려운 민중의 생활 개선을 위해 여전히 바쁘게 일한다. “민중에게 봉사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리훙타 씨는 “공산당원이라면 시종일관 스스로를 민중들 속에 두어야 한다. 사실 내가 한 일은 그저 공산당원이라면 해야 하는 일일뿐이다”라고 말했다. (번역: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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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李正,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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