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망 한국어판 6월 28일] 이 두 노인은 54년을 함께 일했다. 이들이 고향 땅을 지키며, 녹지화된 산지 면적이 350묘(1묘=666.7㎡)에 달하고, 수토 유실도 효과적으로 관리되어 자연생태환경이 대폭 개선되었다.
74세인 쉬즈창(許志强)과 쉬즈강(許志剛)은 쌍둥이 형제로, 모두가 이들을 ‘강창 형제’라 부른다. 이들이 간쑤(甘肅)성 딩시(定西)시의 장촨(張川)촌에 살고 있다.
간쑤성 딩시시 향촌의 식생 상태 [2010년 전후 촬영/사진 제공: 딩시시 사진작가협회]
간쑤성 딩시시 향촌의 식생 상태 [2015년 전후 촬영/사진 제공: 퉁웨이(通渭)현 선전부]
예전 이 곳은 비가 적고 가물어 수토 유실이 심각했다. 당시 현지의 산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정도였다. 미풍에도 모래바람이 일고, 비가 오면 황토 언덕이 진흙이 되어 무너져 마을 절반이 진흙에 묻힐 가능성도 있었다고 ‘강창 형제’는 당시를 회상했다.
1960년대 말에 이들은 마을에서 단체로 상영하는 영화를 통해 남방 지역의 무성한 식물과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되었다. 자신들의 황량한 고향 땅이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래서 “나무를 심어야 땅이 견고해질 수 있다”며 함께 다짐했다.
쉬즈강(오른쪽)과 쉬즈창은 집에서 물지게를 지고 나무에 물을 주러 간다. [6월 15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사]
생각은 너무 좋았지만 그 현실은 너무 잔인했다. 막 나무를 심기 시작했을 때 활착한 나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들 형제는 뚝심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해 ‘강창 형제’가 키우던 돼지가 새끼 7마리를 낳았고, 쉬즈창은 새끼를 100위안(약 1만 8000원) 좀 넘게 판 다음 3kg에 상당하는 묘목을 샀다.
쉬즈강(왼쪽)과 쉬즈창은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살펴보러 간다. [6월 15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사]
어느 해 ‘강창 형제’는 노새 한 마리를 700위안에 팔았다. 식구들은 “돈을 모아서 집을 짓자”고 말했지만 ‘강창 형제’는 기어코 이 돈으로 600그루의 묘목을 샀다. 당시를 기억하며 “먹고 입는 걸 아껴서 나무를 샀다”고 했다.
나무를 심은 후, ‘강창 형제’는 늘 염려에 시달렸다. 나무 잎사귀가 마르지는 않는지, 병충해는 없는지, 잘 자라고 있는지가 늘 염려되어 살펴보곤 했다. 매일 이들은 몇 km나 되는 산길을 걸어 흙을 고르고,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고 가지치기를 했다. 겨울철에는 나무가 얼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여름이면 일찍 일어나 잡초를 제거하고 밤 중에나 집으로 돌아왔다.
‘강창 형제’ 의무 식수림 [6월 15일 드론 촬영/사진 출처: 신화사]
간쑤성 딩시시 장촨촌의 풍경 [6월 15일 드론 촬영/사진 출처: 신화사]
하루, 매해가 지나면서 마을에 몇 십만 그루의 나무가 심겼다. 식생의 회복으로 생태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개선되고, 다람쥐, 꿩, 산토끼, 족제비 등의 귀여운 생물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이들 손으로 직접 만든 녹음이 무성한 ‘작은 강남’에서, ‘강창 형제’와 이웃들은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 여가 시간에 이들은 국화 그리기, 뿌리 조각하기를 일삼는다. 또 때로는 장촨촌이 지금처럼 변모한 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들의 마음 속 푸름은 점차 현실이 되었다.
쉬즈강이 집에 자신이 만든 뿌리 조각품을 보고 있다. [6월 15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사]
황량한 땅 위의 생명은 암석과 건조한 자연조건의 속박을 벗어나고자 애쓰기 때문에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다. 강한 생명력과 삶에 대한 열정은 이들 형제의 투명한 눈빛에서도, 이들이 걸어온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쉬즈강은 1968년에 자신이 심은 첫 번째 나무의 생장 상태를 살펴본다. [6월 15일 촬영/사진 출처: 신화사]
번역: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망/자료 출처: 신화사 위챗 공식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