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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02월22일 

10만명의 주민이 10년간 건설한 대역사! 저우언라이 “신중국의 기적”

15:15, February 22, 2023

[인민망 한국어판 2월 22일] 총길이 1500㎞의 인공 수로 ‘훙치취’(紅旗渠, 홍기거)는 10만 명의 주민이 10년간 건설한 대역사로 꼽힌다. 이곳의 계곡을 흐르는 물과 절벽에는 린(林)현[지금의 허난(河南)성 린저우(林州)시] 주민들이 산을 깎고 터널을 뚫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원대한 포부가 서려 있다. 유유히 흐르는 수로의 물은 험준한 산세에 인공수로를 내며 자력갱생, 단결협력, 고난극복 등을 보여준 ‘훙치취 정신’을 싣고 쉬지 않고 앞을 향해 세차게 흐른다.

고공에서 내려다본 린저우시는 타이항(太行)산을 휘돌며 구불구불 흐르는 강줄기가 70여㎞ 이어져 있어 마치 산허리에 긴 녹색 리본을 묶어 놓은 듯 하다. 5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은 린저우의 땅과 주민들에게 소리 없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자연이 빚은 것이 아니라 10만 명의 린현 주민들이 두 손으로 만든 것이다. 이름하여 ‘훙치취’다.

허난성, 허베이(河北)성, 산시(山西)성의 경계에 위치하는 린현은 서쪽으로는 타이항산에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줘장(濁漳)강, 칭장(淸漳)강, 장허(漳河)강 등 3개의 강과 이웃한다. 하지만 특수한 분지 지형에다 타이항산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세 개의 강은 린현을 에돌아 흐른다. 이 때문에 린현은 예로부터 거의 매년 가뭄이 들어 물이 귀했다. 현지는 1957년부터 수리공사를 실시해 저수지, 우물, 관개수로 등을 건설했다. 그러나 제한된 수원(水源)으로 인해 린현의 광범위한 가뭄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1959년 현지 정부는 린현의 가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민들이 더이상 물 부족에 시달리지 않도록 다시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오기로 결정했다. 그해 10월 린현 현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줘장강의 물을 린현으로 끌어오기로 결정했다.

1960년 2월 공사가 정식으로 시작되었고, 다음달 판양(盤陽)촌에서 열린 전체 회의에서 이 공사를 ‘훙치취’라고 명명했다. ‘훙치취’는 붉은 깃발을 내걸고 전진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기술자∙식량∙자금 부족이라는 세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전문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린현의 여러 마을에서 온 약 10만 명의 농민들이 번갈아가며 수로를 팠다. 집이 없으면 절벽 동굴에 묵고, 양식이 부족하면 산에서 캔 산나물과 강에서 건진 물풀로 허기를 채웠다. 자금과 기술이 부족하면 삽과 곡괭이 같은 간단하고 원시적인 연장으로 산을 뚫었다.

공사 중 타의 모범이 되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81명이 희생됐다.

1969년 7월 6일, 거의 10년 만에 공사가 끝나 통수가 되면서 훙치취를 주체로 하는 관개시스템이 형성되었다.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은 그 이후 50여 년 동안 수십 만 명의 린현 주민들에게 자양분이 되고 있다. 한편 ‘훙치취 정신’도 중국인들이 어렵고 힘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분발해 전진하도록 격려했다.

1974년 신중국 대표단이 유엔 총회에 참석했을 때 상영된 첫 영화는 다큐멘터리 ‘훙치취’였다. 1970년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외국 지인에게 “신중국에는 두 개의 기적이 있는데 하나는 난징(南京)의 장장(長江)대교이고, 하나는 린현 훙치취”라고 자랑스레 말하기도 했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인민망/자료 출처: 인민망 위챗 공식계정/사진 출처: 린저우시 인민정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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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汪璨,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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