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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08월15일 

78년 전 오늘, 일본은 항복했다!

16:28, August 15, 2023

[인민망 한국어판 8월 15일] 78년 전 8월 15일, 충칭(重慶)의 한 사진관에서 한 남자가 아들을 안고 사진을 찍는다. 그는 8살 된 아들에게 ‘대공보’(大公報) 신문 호외의 커다란 제목이 카메라에 보이도록 가슴 앞에 들도록 했다. 이 ‘대공보’ 호외의 커다란 기사 제목은 바로 ‘일본이 항복했다!’다.

여러 해 후 당시 8살이었던 아이는 그 날을 “도시 전체가 끓는 솥처럼 들썩였고, 등을 든 무리가 마치 용이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듯 끝없이 이어졌다”고 표현했다.

긴 전쟁에 등불 규제로 사람들은 어둡게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이렇게 찬란하고 다채로운 야경을 본 적이 없었다. 남녀노소 모두의 얼굴에 환희와 행복이 넘쳤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를 직접 겪은 중국인들은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덩위펀

덩위펀

그 날, 덩위펀(鄧玉芬)은 울었다.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가족의 무덤을 찾았다.

베이징 미윈(密云)에 사는 덩위펀과 그녀의 남편은 일곱 아들을 힘들게 키우고 있었다. 이들의 고향이 일본군에게 점령 당해 ‘위만주국’(僞滿洲國)으로 편성되면서 한 가족의 삶은 모진 고통 속에 빠졌다.

1940년 팔로군 제10단이 이 산간 지역으로 진격했는데, 덩위펀은 이들이 항일 부대라는 사실을 알고는 가족을 만난 듯 기뻐했다. 그녀는 팔로군이 말하는 항일의 도리를 들으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 나서서 귀신(일본군)을 잡아야 나라는 물론이고 자신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과 “항일에 우리가 동참해야 한다! 돈 혹은 총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아들들을 불러서 귀신을 잡자!”라고 상의한 후, 그녀의 큰 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이 유격대에 입대했고 이어서 넷째 아들, 다섯째 아들도 항일 자위군 모범대에 입대했다.

1942년, 항일 정부는 ‘산으로 돌아와서 봄갈이 하기’ 운동을 펼쳤다. 덩위펀은 남편을 먼저 산으로 보내 움막을 짓도록 했고 자신도 곧 뒤따라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남편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넷째, 다섯째 아들이 봄갈이를 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남편과 다섯째 아들이 동시에 죽고 넷째 아들은 잡혀갔다는 악몽 같은 소식을 접했다.

이후로도 불행한 일은 이어졌다. 큰 아들이 판산(盤山) 전투에서 전사했고, 잡혀간 넷째 아들은 안산(鞍山)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둘째 아들은 전투 중에 다쳐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친 곳이 더욱 심해져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었다. 일곱째 아들 역시도 ‘소탕’ 작전 중에 사망했다.

엄청난 불행 앞에 덩위펀은 더욱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반드시 승리하는 날을 직접 보고야 말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집은 팔로군과 부상자들의 쉼터가 되었고, 팔로군이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자신은 근검절약했다.

1945년 8월 15일, 덩위펀이 고대하던 날이 결국엔 왔다. 그녀는 가족의 무덤 앞에 서서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남편, 큰 아들, 둘째 아들, 넷째 아들, 다섯째 아들, 일곱째 아들의 안식을 빌며 “우리는 승리했다!”고 말했다.

덩위펀의 셋째 아들은 해방 후 전역해 고향으로 돌아와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모셨다. 덩위펀의 노년은 행복했는데, 국가에 부담감을 줄까 염려해 현에서 집을 윤택한 지역으로 이주해주는 것도 사양했다.

1970년 춘제(春節: 음력설) 전날에 덩위펀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12년 미윈현 당위원회 현정부에서 장자펀(張家墳)촌에 ‘영웅모친 덩위펀’ 기념 조각상과 영웅모친 테마광장을 세웠다. 영웅모친 덩위펀이 바위 산봉위리에 서서 왼손에는 신발을 쥐고, 오른 팔에는 광주리를 끼고서 먼 곳을 바라보며, 가족과 전사들이 승리하고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 모습이다.

78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왜 이 날을 기억해야 할까?

살아서 이 날을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죽음을 맞은 3500여 만 명의 동포를 위해, 집을 잃은 4200여 만 명의 난민을 위해, 국가가 위기에 처한 때 희생으로 새로운 만리장성을 쌓았던 이들을 위해서다.

이들의 엄청난 희생은 그저 부강한 나라, 단란한 가족을 기대했기 때문이며, 이들이 보고자 한 것이 바로 지금의 행복한 삶이다.

78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의 중국은 누구의 괴롭힘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의 역사는 가슴 깊이 새기고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잊지 말고 스스로가 강해야 한다!

번역: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망/자료 출처: 인민일보 위챗 공식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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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editor: 汪璨, 李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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