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민망 한국어판 10월 21일] 둘째 날 만난 선전은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고 있었다. 호텔에서 차로 30분쯤 이동하니 책을 켜켜이 쌓아 올린 듯한 독특한 건축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선전 도서관이었다. 바로 옆에는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두 건물 모두 같은 설계자가 맡았다고 한다. 독일 건축사무소가 설계한 도서관은 회전하는 큐브를 연상케 했다. 마치 큐브를 돌려 조각을 맞추듯 이용자가 자유롭게 지식을 탐색하고 조합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건축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전도서관(북관) 외부 모습
예술적인 외관을 감상한 뒤 내부로 들어서자 넓고 탁 트인 공간과 밝은 채광이 눈에 들어왔다. 평일인데도 도서관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로 붐볐다. 책과 공부에 몰두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지식에 대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매력은 쾌적한 공간에만 있지 않았다. 입구의 도서 반납 창구에서는 천장 레일을 따라 작은 기계들이 부지런히 책을 배달하고 있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책이 어디에 있든 10분이면 기계가 가져다준다고 한다. 서가마다 설치된 터치스크린으로 책을 검색하면 위치를 알려줄 뿐 아니라, 해당 서가에 도착하면 책이 꽂힌 자리에 파란불이 켜져 원하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음악감상실과 영화 상영관도 마련돼 있어 별도의 예약 없이 선착순으로 입장하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첨단 기술은 이곳에서 단순히 신기한 볼거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지식과 문화를 더욱 편리하게 누리도록 돕는 수단이었다.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로봇이 책을 배달하고 있다.
이 도서관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전국 최대 규모의 지하 스마트 입체 서고와 빠른 도서 분류 시스템이었다. 시민들이 지상에서 독서와 문화 생활을 즐기는 동안 지하에서는 그 편의를 뒷받침하는 첨단 시스템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산업현장을 방불케 하는 도서 분류 시스템이 나타났다. 엄청난 양의 책이 오가는데도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APEC 경제체의 전자책이 전시된 벽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스마트 입체 서고에서는 거대한 기계팔이 책을 찾아 운반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마법의 책장을 현실로 옮겨 놓은 듯했다. 오래된 장서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첨단 기계가 정교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과학기술이 지식과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고 있음을 보여줬다. 함께 간 동료가 선전에서 살고 싶어졌다고 말할 정도로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지하에 있는 스마트 입체 서고
도서관에서 나와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눈에 띄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미술관을 찾아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상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운치가 있었다.
미술관에서 처음 만난 작품은 뜻밖에도 ‘협력과 조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5~6명이 1년에 걸쳐 함께 완성한 그림이었다. 이어 살펴본 탕카[唐卡· 짱족(藏族, 장족)의 특수한 그림으로 불경 이야기나 짱족 문화 등을 내용으로 함]는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완성하는 예술로, 규모가 큰 전시 작품 중에는 제작에 6년이나 걸린 작품도 있었다. 그림에 사용된 금색은 실제 금으로 칠한 것이라는 설명도 흥미로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금이 탕카 제작에 쓰이는 안료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라는 사실이었다. 초록색 얼굴을 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묻자 관계자는 대자연의 색채를 즐겨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의 푸르름을 인물의 얼굴에까지 담아낸 옛사람들의 감각이 흥미로웠다. 화려한 색채와 신화적인 이야기가 어우러진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예술은 창작자의 영감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협력과 오랜 시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재료와 기술이 함께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 한 켠에서 탕카 예술가가 작업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루후(鷺湖)예술중심이었다. 장잉린(張穎琳) 동방가무단 총경리는 관객석 577석을 갖춘 블랙박스 극장을 소개하며 관객의 몰입형 체험에 중점을 두고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음향과 무대 설비를 세심하게 조율해 토크쇼와 강연 등 다양한 행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배우들이 마이크를 착용하지 않고도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배우들에게 높은 수준의 발성과 표현력이 요구되지만, 관객은 인위적인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의 목소리와 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기술은 무대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고 관객이 예술 자체에 몰입하도록 돕고 있었다.

장잉린 총경리가 루후예술중심에 있는 블랙박스 극장에서 선전 문화예술 인프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전에는 문화예술 인프라 시설이 많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그동안 선전을 방문할 때마다 도서관과 미술관, 예술 공간을 찾았지만 규모와 특색 면에서 늘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장 총경리는 선전의 우수한 문화예술 인프라와 기술력을 APEC을 계기로 선전의 대표적인 강점으로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문화예술이 한층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설명하는 내내 느껴지는 자부심과 애정에서 선전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진심이 전해졌다.
도서관에서 미술관을 거쳐 예술중심까지, 이날의 여정은 문화와 예술을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작품과 건축물만이 아니었다. 도서관에서는 자동화와 정보기술이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있었고, 미술관에서는 예술을 완성하는 사람들의 협력과 전통의 지혜를 만났으며, 예술중심에서는 정교한 무대 설비가 관객의 몰입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은 문화와 예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이를 누리고 더욱 깊이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선전은 과학이라는 언어로 문화와 예술을 말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이 문화의 문턱을 낮추고 예술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 그것이 이날 선전이 내게 보여준 ‘혁신의 예술’이었다.
글: 하정미
원문 및 사진 출처: 인민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