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망 한국어판 7월 28일] 중국 인민 항일전쟁 기간에 많은 나라에서 온 반파시스트 전사와 외국 인사들은 중국인과 함께 싸우며 피와 불, 삶과 죽음의 시련 속에서 깊은 우정을 맺었다.
일본인 팔로군 노병 고바야시 간초(小林寬澄)는 1919년 9월 일본 군마현에서 태어났다. 일본은 1937년 전면적인 중국 침략 전쟁을 시작했다. 고바야시 간초는 1940년 일본군에 징집되었다. 1941년 6월에 벌어진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후 팔로군(八路軍)을 따라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에 의해 중국의 많은 마을이 불타고 무수히 많은 주민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그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꼈다. 팔로군의 교육을 통해 고바야시 간초는 이 전쟁의 본질, 즉 일본 군국주의가 중국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은 불의(不義)의 침략 전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그는 팔로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반전동맹 단원들과 함께 반전 전단지를 작성하고 배포했다. 또 일본군이 지나가는 곳의 벽에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할 것을 설득하는 표어도 써 붙였다.
고바야시 간초의 아들 고바야시 노리아키(小林憲明)는 “일본군이 중국에서 저지른 죄행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아 중국인에게 참혹한 재앙을 초래했다”면서 “아버지가 팔로군에 입대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고 존경받을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항일전쟁 승리 후 고바야시 간초는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펑전(豐鎮)현(현재 펑전시) 병원에서 부원장으로 일하다 1955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 73살 무렵까지 원양상선에서 중국어 통역일을 하다가 은퇴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중국 인민 항일전쟁은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의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일본인으로서 중국 인민 항일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내 평생의 자랑거리이자 행복”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2015년 9월, 고바야시 간초는 초청을 받아 톈안먼 성루에 올라 열병식을 지켜본다. [사진 제공: 인터뷰 대상자]
고바야시 간초는 2005년 9월 베이징에서 열린 항전 승리 60주년 기념 행사에 초청받아 참가했다. 2015년 9월에는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행사에 초청되어 베이징에서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장’을 받았다. 당시 96세의 고령으로 톈안먼(天安門·천안문) 성루에 올라 열병식을 지켜보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고바야시 간초는 “기념 행사는 훌륭하고 웅장했다”면서 “이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목격할 수 있어 감격스러웠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항일 전쟁에 기여한 노병들을 잊지 않아준 중국 정부와 국민에게 감사드린다. 이 광경이 감개무량해 절로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고바야시 노리아키는 당시 아버지의 설렌 심정을 떠올리며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중국 정부와 국민은 아직도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그처럼 명예스럽고 깍듯한 예우를 베풀어 주어 아버지와 나는 무척 감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는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이다. 모든 나라가 역사를 기억하고 어렵게 얻은 평화의 성과를 소중히 여기며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길 바란다”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일중 우호 증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인민망/자료 출처: 인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