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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의 “심청”은 과연 실존인물이었을까?

By 이종운(인민망 피플닷컴 코리아(주) 컨텐츠사업부 부장)

10:54, March 26, 2012

심청전의 “심청”은 과연 실존인물이었을까?
이종운

대한민국 ‘효’의 대명사 심청을 주인공으로 한 심청전은 홍길동전, 춘향전, 흥부전 등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 4대 고전소설 중의 하나다.

심지어, 심청의 고향이라고 언급한 심청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전국의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을 정도다. 이는 심청전의 공간적 배경이 다른 고대 소설들과는 다르게, 판본마다 조금씩 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심청마을' 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한 곳이 있다. 전남 곡성의 심청마을이다. 심청전의 배경이라 전해지는 곳은 대부분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가인데, 곡성의 심청마을은 내륙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심청이 살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마을 곳곳에 심청과 관련된 지명이 발견된다. 그 이유는 그 부근에 위치한 한 사찰에서 발견된 <관음사사적기 觀音寺事績記 >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음사사적기>는 관음사의 건축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목판은 이미 분실됐으나 단 한 권 남아있는 이 목판본에 놀라우리만치 심청전과 유사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관음사의 건축 설화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심청처럼 장님 아버지를 둔 ‘원홍장’ 이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심청처럼 중국 상인을 따라 중국 절강성 녕파지역으로 건너가는데, 고향을 그리워 하다가 그 당시의 중국의 불상을 고향인 곡성으로 보내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보낸 불상을 보러 관음사에 왔다가 기쁨에 겨워 갑자기 눈을 뜨게 된다는 결말로 마무리 되는 이 이야기는, 여태껏 심청전의 원형으로 추측되는 이야기 중 가장 심청전 내용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관음사는 바로 원홍장이 보냈다는 그 불상을 모셔두기 위해 건축됐기에 <관음사사적기>에 이 이야기가 실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실제 시대적 배경은 대략 서기 400여년 경이다. 심청전의 시작은 바로 삼국 시대가 배경이었던 것이다. 또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근거로 하여 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추측해 볼 수 있게 된다. ‘원홍장’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그 무렵에 중국 동남부와 한반도는 활발한 해상 교역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당시의 기술로는 해상 교역이 얼마나 활발할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되는 유적이나 이러한 역사적 근원을 담고 있는 전설을 통해서 선사 시대에서부터 자연의 힘을 빌어 중국과 한반도가 꾸준히 해상 교역을 펼쳐 왔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라남도 곡성까지 중국 상인들이 들어왔던 이유로는 곡성 지역이 예로부터 철의 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백제가 만들어 일본에 전해준 ‘칠지도 (七支刀) ‘에도 그 철의 산지가 전남 곡성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곡성은 오랜 옛날부터 철의 산지인 동시에, 철을 제조하는 곳으로도 유명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철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된 돌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을 정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절강성 녕파 부근에서도 심청전과 관련된 명칭이 아직까지 몇 군데 남아있다는 것이다. 심청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소설에 기록된 ‘도화동’의 ‘도교와 관련된 '도화(桃花島)라는 지역이 절강성 녕파 주산군도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며, ‘심가문(沈‘家門)이라는 명칭도 그 흔적이 아직 남아있고 심청을 기리는 사당인 “심청원” 또한 지어져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 그 지역의 유력한 가문이었던 ‘심가문’은 한반도 및 일본과의 해상 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쌓았다고 한다. 그런데, 심청전의 주인공이 공교롭게도 심씨이다 보니, 그와의 연관성을 조심스럽게 점쳐 보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문화혁명으로 인해, ‘심가문’과 관련된 족보나 비문은 모두 소실되고 남아있지 않아,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심청전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당수’와 ‘용궁’이다. 심청은 인당수에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서 팔린 것이고, 용궁 세계에까지 갔다가 연꽃을 이용해 다시 인간 세계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인당수로 추측되는 지역이 여러 곳 있는데, 그 중에서 예로부터 지금의 백령도가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실제로 연꽃바위 및 심청전에 등장하는 여러 명칭이 남아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백령도 뿐 아니라 당시 중국과 한반도 사이의 해상 교통로를 살펴보면, 변산반도 부근의 임수도 및 위도 등에서 심청이 경험한 ‘인신공여’의 흔적이 엿보이는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처음에는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으나 나중에는 사람 대신 말이나 사람 모양을 한 석상 등을 이용해 제물로 바쳐지게 되는데, 그 흔적 중 하나인 송나라 문인석상 등이 위도에서 발견되고 있다. 또한, 용궁을 암시하는 그림이 새겨진 기와 등이 발견됨으로써, 위도 부근에서도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신공여의 전통이 당대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처럼, 고대 소설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실제 역사가 담겨져 있다. 홍길동이라는 의적이 실존했었던 것처럼,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실제로 일어났었던 일인 것처럼, 심청 또한 1700년 전의 ‘원홍장’ 이 바로 그 모델이었던 것이다.

비록, 원홍장의 이야기에선 인당수와 용궁이 생략되어 있긴 하나, 이 또한 완전히 허무맹랑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당시 해상 교역을 하는데 있어서의 실제 전통을 삽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이 한 편의 소설 속에는 천 칠백년 전의 한 부녀의 감동적인 이야기 뿐 아니라, 오랜 사찰의 건축 설화에서부터 고대 시대 한반도와 중국의 해상 교역 역사 및 관련 풍습까지 다양한 역사를 담고 있다.

다시 한번 고대의 이야기 속에는 잊혀진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역사는 이렇게 때론 이야기라는 겉모습으로 위장한 채, 고스란히 보존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Print(Web editor: 轩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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