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문화협회는 이름 때문에 종종 시, 그림, 음악 등을 다루는 문화단체로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한중문화협회의 유구한 역사를 들여다보면 흔히 생각하는 ‘문화’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중문화협회는 1942년 중화민국의 임시수도였던 충칭(重慶)에서 창립되었다. 당시 중화민국은 정식으로 수교하고 있는 국가들과 국민간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문화협회를 만들었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며 우호협회라고 명칭을 바꿨으니 문화는 ‘민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영일 회장이 명칭을 바꾸지 않고, 여전히 ‘문화협회’라는 깃발을 들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42년 한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국가도 없고 정부도 없었다. 그런데 중국의 쑨원(孫文) 선생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해주었고, 그 계기로 ‘중한문화협회’가 탄생했다. ‘국가’도 없는 나라에 임시정부를 상대로 문화협회를 만들어준다는 것은 파격적이었다. 2차세계대전 때 카이로선언이나 포츠담선언을 통해 연합국들이 한국의 독립을 지원했지만, 중국이 문화협회를 통해 최초로 한국 독립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영일 회장은 그 뜻을 자손대대로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한중문화협회를 지키고 있다.
15년 째 한중문화협회의 회장직을 맡아오고 있는 이영일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 13년 전, 베이징대학에서 ‘한국인이 보는 오늘의 중국’이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13년이 지난 오늘날에 한국은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중국은 13년 전하고 비교도 안될 만큼 발전을 했다. 경제 발전은 물론 국력과 국가로서의 품격도 높아져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랭킹 2위이며, 신흥강대국으로 부상했다. 13년 전 베이징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만 해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중국은 평화굴기론, 평화발전론을 거쳐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신형대국관계론’을 공식화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상호간의 핵심이익을 존중해주고, 세계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흔히 ‘중국위협론’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중국을 위협적인 국가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 정부와 국민의 시각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양쪽 모두 중국이 중요한 이웃 국가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빠른 속도의 발전을 경이롭게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한국 내 지중파(知中派)를, 한국에서는 중국 내 지한파(知韓派)를 양성하는 것이 양국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은 서로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잘 모른다. 중국에 세네 번 갔을 때 중국을 다 아는 것 같았다. 그런데 15년동안 중국을 연구해보니 갈수록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크고, 넓고, 복합적인 나라라 그렇다. 한 사람이 중국을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각 분야별로 중국을 아는 지중파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국이 지중파만 양성할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한국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현재 한국에 나와있는 중국 유학생은 8만명 가량 된다. 내가 지한파를 양성하려고 하는 것은 8만명의 유학생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다. 유학생들이 중국에 돌아가 성공하고 사회의 엘리트 계층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들이 중국 사회의 대표적인 지한파가 되는 것이다. 또한,한국에서 일하는 중국 국적 노동자가 40만이 넘는다. 이들이 한국에서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고 대접받으며 살아가도록 돕고 있다. 중국인 노동자들이 귀국해서 잘 살아간다면 그들도 지한파가 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양국 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이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본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국 유학생들에게도 “여러분이 잘 되어야 한중관계가 좋아진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