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베이징 취재길. 중국 관리들과의 인터뷰에서 유독 많이 들은 말이 있다. ‘공담오국 실간흥방(空談誤國,實干興邦)’, ‘빈말은 국가를 그릇된 길로 몰고 갈 뿐, 실제 행동으로 나라를 부흥시키라’는 뜻이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지난달 29일 베이징 국가박물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언급한 뒤 ‘유행어’가 됐다.
그러나 이 말의 ‘지적재산권’은 개혁개방의 설계사인 덩샤오핑에게 있다. 1992년 1월 18일 덩은 돌연 우한(武漢)에 나타난다. 이는 천안문 사태(1989년 6월 4일) 이후 2년 반여 만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우한역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빈말은 국가를 그릇된 길로 몰고 갈 뿐, 실제 행동으로 나라를 부흥시켜라! 경제 건설을 중심으로 한 기본 노선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100년은 그렇게 관리하라. 그렇다. 100년은 동요하지 말라.” 그게 시작이었다. 덩은 그 후 선전(深圳)•주하이(珠海)•상하이 등을 돌며 개혁개방을 역설했다. 그 유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다.
‘지재권 소유자’에게 양해라도 구하려는 것일까. 시 총서기가 8일 선전을 방문해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했다. 그의 옆에는 덩의 남순강화를 수행했던 원로들이 함께 했다. 시 총서기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덩샤오핑이 천안문 사태 이후 주춤했던 개혁개방의 물길을 다시 열었듯, 나 역시 지난 10년의 ‘개혁 공백기’를 끝내고 개혁의 기치를 다시 들겠다’는 것이다. 또한 방문 당일 아침 배포된 선전시의 당 기관지 심천특구보는 특집 기획을 통해 ‘空談誤國, 實干興邦’이라는 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선전이 그 가치를 어떻게 지켜왔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새 지도자 시진핑을 ‘덩샤오핑의 개혁을 이어갈 인물’로 부각시킨 것이다.
베이징에서 만난 저명 경제학자인 장웨이잉(張維迎) 베이징대 교수는 ‘개혁 이념과 리더십을 되찾기 위한 여행’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지난 10년 개혁에 대한 분명한 이념과 리더십이 부족했기에 부정부패가 난무했고, 빈부격차가 심화됐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지도자의 굳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시 총서기가 제2의 남순강화를 실행함으로써 또 다른 ‘개혁 시대’를 예고했다는 해석이다.
최고 지도자의 말 한마디, 내딛는 한 걸음에는 모두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게 마련이다. 시진핑이 온몸으로 개혁을 주창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과연 어떤가. 선거 정국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후보들은 이곳저곳 가는 곳마다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공약을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인다. 공약(公約)이 아닌 ‘빌 공(空)’ 자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후보들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들은 혹 빈말로 국가를 그릇된 길로 몰고 가고 있지는 않느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