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출생을 기점으로 성장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보내는데 이 기간들을 종종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로 비유하곤 한다. 쌀쌀한 가을의 문턱에서 붉게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있노라니 젊음의 시대를 지나 노년기로 접어 들고 있는 우리 어르신들이 떠오른다.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노년기는 마주하는 시점에서 늘 용기를 필요로 한 것 같다. 고대 당나라의 두보가 읊던 시 한수에도 이는 잘 드러난다.
風急天高猿嘯哀(풍급천고원소애) 바람이 빠르며, 하늘이 높고, 원숭이의 휘파람이 슬프니
渚淸沙白鳥飛廻(저청사백조비회) 물가가 맑으며 모래가 흰 곳에 새 날아 돌아오는구나
無邊落木蕭蕭下(무변락목소소하) 끝없이 지는 나뭇잎은 쓸쓸히 떨어지고
不盡長江滾滾來(부진장강곤곤래) 다함없는 긴 강은 이어이어 오는구나
萬里悲秋常作客(만리비추상작객) 만 리에 가을을 슬퍼하여 늘 나그네가 되오니
百年多病獨登臺(백년다병독등대) 한 평생 많은 병에 홀로 대에 오르도다
艱難苦恨繁霜鬢(간난고한번상빈) 가난한 삶에 서리 같은 귀밑머리가 어지러움을 심히 슬퍼하노니
潦倒新停濁酒杯(요도신정탁주배) 늙고 사나움에 흐린 술잔을 새로 멈추었노라
느린 리듬으로 쓸쓸한 감성을 담아 낭송해야 할 것 같은 이 시는 명나라 시인 호응린이 칠언율시의 으뜸이라 칭한바 있는 두보의 등고(登高)이다. 대자연의 유연한 모습과 대조되게 가난하게 늙고 병들어감을 자탄하는 내용이다. 시성(诗圣)이라 불리우는 두보의 시에서는 늙어감을 자탄하는 문장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70세를 뜻하는 고희라는 글자는 두보의 ‘곡강시’(曲江詩)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문장에서 유래했다. 인생칠십고래희… 예로부터 사람이 70살 까지 살기란 드문 일이라는 뜻으로 늘 늙고 병드는게 두려웠던 두보는 깊은 가을이면 높은 대에 올라 술 한잔에 늙어감을 자탄하곤 했다. 가을의 찬 기운이 그의 쓸쓸함을 더하게 했으리라.
두보는 늘 그의 시에서 늙고 병드는게 두렵다 말지만 정작 그는 현대에서는 늙었다고 볼 수도 없는 59세에 세상을 뜬다. 오늘날의 59세. 우리네 아버지들이자 한국의 민주화와 근대화로 이끌었던 장년층,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선도한 인생선배들의 나이이다. 늙어 병들어 죽는 날을 두려워하기엔 너무나도 젊고 할 일이 많다. 인생시계 계산법에 의하면 59세는 겨우 이제 오후 5시 42분을 지나는 시간, 축구경기에 비유하면 이제 후반 19분을 뛰고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현재사회는 그들을 벌써 대량의 자원만 축내며 남에게 의존하는 약자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요즘 가장 뜨거운 토론의 주제로 떠오르는 복리정책은 ‘노인은 약자’ 라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지 않은가. 현재 우리 시대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 노년기에 접어든 그들의 생활은 실로 쓸쓸하다. 또한 한국의 경우 750만의 베이비부머 중 절반가량이 국민연금을 한푼 도 수령하지 못하고 있고, 고령화로 인해 사회로부터 고립된 나홀로가구가 증가해 이른바‘노후난민’문제도 야기되고 있다. 고령층이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은 고령사회를 점점 더 위협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이 시대의 사회성 정책에 더 큰 희망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팔팔한 그들을 약자로 보는 것은 두보의 시에서 유래된 ‘인생칠십고래희’ 시절의 개념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1751년부터 2005년까지 영국인의 예상수명은 약 25세나 늘어났는데 한국과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늘어난 기대수명으로 인해 60세는 노년층이 아니라 장년층에 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또 기대수명의 연장은 고령화 사회를 대두시켰는데 특히 중국은 산아제한정책으로 인한 고령화 문제가 더 빠르게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사회의 중국은 젊은이 한 명 당 그의 부모, 조부모 등 평균 여섯 명의 노인을 모셔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이에 따른 국가 대처 방안이 시급해지면서 현재 중국 각지에서 “고령화 사회”를 주제로 한 포럼이 열리고 있다.
2012년 제8회를 맞은 어느 권위있는 국제논단은 “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생각 – 도전과 기회 그리고 중국의 전략”으로 포럼 주제를 정했다. 그만큼 고령화 사회가 이제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포럼의 내용의 요약하면 첫째, 고령화 사회를 인식하고 대처방안을 찾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이다. 이 시대는 인류발전의 또 다른 기회다. 둘째, 고령화 시대를 맞아 새로운 문화와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셋째, 고령화 시대는 노인층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연령층의 문제다. 넷째, 노인 보장 서비스 체계 건립구상이 필요하다. 다섯째, 고령화 사회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의제다. 등으로 볼 수 있다.
기대수명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이전까지 노인층이라고 칭했던 기준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60세를 기준으로 퇴직을 했는데 지금의 60세는 전혀 퇴직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하고 경험 많은 노동력인 셈이다. 이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의 손실이자 노동력 낭비이다. 노인을 약자라고 비춰보던 사회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100세를 훌쩍 넘기는 노인층이 늘어나는 시점에서 사회 복지의 재정비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즉, 지금 우리 사회는 고령화를 하나의 심각한 사회적 위협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고령화에 대한 사실적인 이해와 정확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포럼의 내용처럼 고령화는 문제가 아니라 의제일 뿐이다. 고령화 사회니 실버사회의 진입으로 청년들의 부담이 몇 배니 하는 지나친 위언(危言)은 삼가 해야 한다. 준비된 고령화 사회는 건강하고 평화로운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이니 말이다.
매일 아침 동 틀 무렵 천안문 광장에서 단체 태극권를 즐기는 어르신들이 보인다. 그들은 그 어느 연령층보다 강하고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한다. 저 멀리 향산(香山) 정상을 향해 오르는 어르신들이 보인다. 그네들이 등고(登高)하여 읊는 시는 늙음을 자탄하는 시가 아닌 아름다운 이 세상은 행복하노라 라는 시였으면 한다.
곽다예, 김예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