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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 중국 3대 석굴

11:36, January 31, 2013

각박한 세상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종교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빠른 리듬으로 흘러가는 사회에서 멈추어 쉬어가길 권고하는 한 베스트셀러 작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과 SNS로 끊임없이 지친 현대인들과 소통하는 그는 바로 혜민스님이다. 그는 멀게만 느껴지는 우리와 다른 종교인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으로 많은 현대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시대의 종교는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에 내 마음속 유토피아를 꿈꾸는 현대인들을 위해 불교의 나라 중국인들이 찾는 마음의 성전이자 중국 불교의 문화유산인 3대 석굴을 소개한다.



천 년의 세월, 천개의 동굴 - 돈황 석굴

간쑤성에 위치한 도시 돈황이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요지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명실상부의 실크로드 요지답게 돈황에서 핀 중국 고대 불교 문화의 화려함은 그 어떤 고대 문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되고 서로 다른 문화가 융합되어 돈황은 당대 7, 8세기 중엽에 걸쳐 돈황 예술을 만들어 낸다. 그 화려한 돈황 예술 중에서도 돈황 막석굴이 유난히 돋보이는데 약 1천여 개의 석굴이 있다 하여 천불동으로도 불린다. 현재 그 중 492개만이 발굴되 공개되고 있다.

돈황 석굴은 발굴과정에서 제17호 굴에서 경전, 문서, 자수 등 5만점 이상의 문헌이 발견 되었는게 특징이다. 그 내용이 방대하여 이를 연구하는‘돈황학’이 탄생할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방대한 돈황 문헌이 발견 당시 헐값에 팔리거나 약탈 당해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것은 6천 여 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혜초 스님이 쓴 당나라-인도 여행기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책이 현재 프랑스 박물관에 있게 된 사연은 이 때문이다. 막고굴의 위치 또한 명품인데 막고굴이 위치한 명사산은 바람에 모래가 흘러내릴 때마다 나는 소리 때문에 '모래가 운다'는 '명사'라는 이름이 붙은 산으로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명사산 아래 있는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인 월아천(月牙泉)은 천년이 넘게 한번도 마른 적이 없다는 신비의 샘물로 알려 져있다. 돈황석굴은 198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및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불연(佛缘)의 땅 고도 낙양의 불교예술 - 용문석굴

중국 하남성 낙양의 용문산과 향산의 암벽을 따라 조성된 용문석굴은 북위北魏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한 태화 18년(太和, 494)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이후에도 당나라, 송나라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이 조성되어왔다. 석굴은 이허(伊河)를 사이에 두고 서산과 동산으로 나뉘어 자리하고 있다. 2300여 개의 석굴과 벽감, 총 10만 점이 넘는 불상, 2800여 개의 명문, 40여 개의 탑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중국식 복식을 한 상현좌가 발달했다. 상현좌는 불상의 옷자락이 표면 및 좌우편으로 길게 늘여 뜨려 진 형식을 말한다.

10만 점이 넘는 불상 중 봉선사[奉先寺]의 대형 비로자나불은 폭 35m 석굴 안에 있는 대불의 전체높이가 17.4m에 이르며, 귀 길이만도 1.9m나 된다. 수려한 용모에 인자한 웃음이 인상적인데, 건축자금을 대면서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자신의 자비로운 모습을 남기기 위해 모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용문석굴의 불상은 머리가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불상의 머리가 복을 가져온다고 전해져 많은 불상의 머리들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문석굴은 2000년 11월 30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교미술의 정수라 불린다.



중국 최대 석굴 사원 – 운강석굴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대동의 운강석굴이 처음 사료에 언급 된 것은 북위(北魏)의 역사서 《위서(魏書)》의 《석로지(釋老志)이다. 이에 따르면, 사문통(沙門統:종교장관) 담요(曇曜)가 당시 문성제(文成帝)에게 석굴 조영을 주청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는 446년 북위 태무제가 폐불 한 뒤 6년 만의 일이다. 당시 대동은 실크로드의 동쪽 끝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의 도시로 각광 받으며 인도, 서역제국, 중국 동북부 동이족의 문화와 불교예술의 집결지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운강 석굴은 자연의 사암 절벽을 개착해 만들었다. 동서로 약 1km, 현존하는 주요 석굴만 53개이며 조형은 5만여 개나 되어 중국 최대 규모의 석굴 사원이라 불린다. 또한 웅대하고 큰 불상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보통 불상이 13미터 이상이고, 가장 큰 불상은 제5굴 중앙의 좌불로 최대 17미터에 이른다. 반면에 가장 작은 불상은 10센티미터도 안 된다. 또한 운강 석굴은 특이하게도 채색 불상을 볼 수 가 있다. 3대 석굴 가운데서도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 석굴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곽다예 기자

Print(Web editor: 刘融, 趙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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