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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듯 말 듯 섹시한 매력, 치파오

15:53, February 17, 2013

보일 듯 말 듯 섹시한 매력, 치파오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중국의 ‘치파오’를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치파오는 노출 없이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로 오른쪽이 트인 빳빳한 깃 ‘차이나 칼라(collar)’와 다리가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는 슬릿(slit,트임)스커트 덕분이다. 치파오는 만주족(滿族)의 전통의상에서 유래했다. 치파오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중국 여성들의 대표적 전통 의상으로 자리매김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의 공식 전통의상은 아니다. 1949년 이후, 한동안 치파오는 중국 본토 지역에서 점차 냉대받기 시작하다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修正主義)의 상징으로 여겨져 대량 훼손됐다. 치파오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자.

◆ 한 가지뿐이 아닌 ‘치파오 스타일’

치파오는 그 예술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에 따라 경파(京派)와 해파(海派)로 분류된다. 해파는 서양 예술을 접목시킨 스타일로 그 종류가 다양하며 상업적 가치가 뛰어나다. 그에 반해 경파 치파오는 정통적인 관가 스타일을 추구해 당당하면서 심플한 자태를 뽐낸다. 한 마디로 해파는 창조를, 경파는 수구(守舊)를 대표했다.

중화민국 시절의 치파오는 서양미를 뽐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의 상하이는 지금과 같이 중국과 서방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대도시였다. 현재로서는 중화민국 치파오가 상하이에서 탄생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해파 치파오가 중화민국 시절 치파오의 대표적인 스타일이라고는 단언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치파오’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들이 20세기 3, 40년대의 해파 치파오이기 때문이다.

◆ 웨딩 사진에 빠지지 않는 치파오

공식 전통의상도 아니면서 이렇게까지 사랑받는 옷이 또 있을까? 중국인 예비 부부들의 웨딩 촬영에서 ‘치파오 샷’은 빠지지 않는다. 베이징 특유의 좁은 골목 ‘후통(胡同)’에서 웨딩 촬영을 한다면 백 퍼센트 신부가 치파오를 입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중국인들의 웨딩 사진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치파오 샷이기 때문에 중국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치파오 전용 메이크업도 따로 연구한다. 치파오 메이크업은 일반적으로, 동양인 특유의 찢어진 눈을 돋보이게 하는 아이 메이크업이 특징이다. 입술의 끝은 살짝 위로 올라가게 그려 복고의 느낌을 준다. 가느다랗고 길게 그린 눈썹은 중국식 복고 메이크업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색상은 기본적으로 따뜻한 컬러를 선택한다. 특히 입술은 흔히 ‘중국식 빨간색’으로 불리는 라이트 레드가 좋다. 머리는 작은 진주류의 액세서리로 꾸민다. 이렇게 하면, 완벽한 ‘치파오 미녀’가 탄생하는 것이다.

◆ 치파오에 담긴 중국의 역사

치파오는 한족이 만주족 여성의 의상을 개량해 만들었다. 치파오는 어떤 한 민족의 고유의상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중국에 살고 있던 많은 민족들이 치파오를 입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치파오를 한족의 전통 의상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한족의 전통 의상은 한복(漢服)이다.

원래 직선의 밋밋한 모양이었던 박스형 치파오는 20세기에 큰 변화를 겪게 된다. 20세기 20년대 초, 서방 문화의 영향으로 한족 여성들은 점차 ‘곡선미’를 추구하게 되면서 여성들은 치파오를 통해 자신의 몸매를 뽐내고 싶어했다. 이에 따라 치파오는 끊임없이 개량됐고 새로운 스타일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치파오는 당시 중국의 전통 사상과 서방의 신사상이 힘겨루기를 하던 장이었기 때문이다.

◆ 밋밋했던 초기의 치파오

20세기 초, 중국에서는 치파오 조끼가 유행했다. 나팔같이 생긴 넓은 소매의 저고리를 안에 입고 앞뒤로 땅에 끌리는 긴 민소매 조끼를 입는 것이다. 1926년 저고리와 긴 조끼가 하나로 합쳐져 현대식 치파오의 기본 스타일을 형성했다. 이후 2년 동안 치파오는 소매, 깃 등에서 다양한 개량이 진행됐다. 그러나 풍부한 변화를 주었음에도 치파오는 여전히 구식 특유의 밋밋한 스타일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치파오로는 여성 신체의 곡선미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년대 후기부터 30년대, 중국에 다양한 사상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치파오의 길이, 폭, 옷깃 등 부분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 옆 트임, 과감해졌다가 조신해졌다가

1929년 서방에서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원래 적당한 길이였던 치파오도 짧아지기 시작했다. 이때 교복 스타일의 치파오도 생겨났는데 치마가 무릎 위 3센티까지 올라오고 서양식 소매였다.

그러나 이런 과감한 시도는 곧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리하여 1931년 이후, 치파오는 다시 길어지기 시작했다. 30년대 중반, 치파오의 길이는 최정점을 찍었는데 치마 끝이 양발을 덮을 정도로까지 길어져 ‘치파오 빗자루’라 불렸다. 대신 원래 손목을 덮었던 치파오의 소매는 팔꿈치까지 짧아졌다. 이후 소매는 점점 더 짧아져 어깨까지 올라왔다. 1936년 이후의 치파오는 거의 민소매다.

구식 치파오는 옆이 트이지 않았다. 그런데 개량이 진행되면서 치파오의 소매가 짧아질수록, 치파오의 옆트임은 점차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릎까지만 트였던 치마가 허벅지까지 트인 것이다. 이는 섹시함을 드러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좁고 타이트한 치마가 불편해 활동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구식 치파오는 또 위아래가 직선처럼 곧고, 높은 옷깃이 특징이었다. 그러다가 30년대 초부터 허리 부분이 점차 들어가기 시작하며 1934년 이후 여성의 곡선미를 완전히 강조한 형태로 변했다. 원래 귓불까지 빳빳하게 세웠던 깃도 점차 짧아졌다. 일부에서는 아예 치파오의 옷깃을 없앴다.

◆ 치파오의 운명을 바꾼 문화대혁명

1950년대부터 개혁개방 직전까지 치파오는 4구(四舊, 낡은 사상 • 문화 • 풍속 • 습관)로 분류되며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修正主義)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류샤오치(劉少奇) 전 주석의 부인 왕꽝메이(王光美) 여사는 외국 방문시 치파오를 입었다는 이유로 문화대혁명 때 범죄자가 되었다.

그러나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치파오는 다시금 화려한 부활을 맞이한다. 이로 인해 원래 흑색, 회색 등으로 단조롭기 짝이 없던 치파오의 색깔도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해파 치파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 치파오 미녀는 누구?

치파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화양연화의 여주인공 ‘리춘’을 연기한 장만옥이다. 치파오를 입은 장만옥은 섹시할뿐만 아니라 우아했고 아름다웠다. 혹자는 치파오가 장만옥을 위해 태어난 것 같다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색,계’의 탕웨이도 대표적인 치파오 미녀다. 탕웨이는 영화 속에서 27벌의 치파오를 선보였는데 이 치파오들은 모두 아시아 각지에서 옷감을 공수해와 정통한 재단사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영화 ‘도둑들’에서 배우 전지현이 치파오를 입고 자태를 뽐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치파오를 파는 SHANGHAI TANG

중국에는 치파오를 파는 명품 매장이 있다. 바로 상하이 탕(SHANGHAI TANG)이다. 상하이 탕은 중국 전통 디자인과 현대적인 모티브를 결합시킨 브랜드로 중국의 대표 명품 브랜드다.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매장을 꾸며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 브랜드는 옷의 원단으로 주로 실크를 사용하고, 치파오를 토대로 디자인한다. 그에 모던함과 실용성을 가미해 일상 생활에서 입고 다녀도 무방할 현대식 치파오를 탄생시켰다. 치파오는 단순히 전통 의상에 머물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이다.

이소림, 박수정 기자

Print(Web editor: 刘融, 趙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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