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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의 눈]<4>
그때 그 시절, 한국의 청년들은 왜 ‘루쉰’을 읽었을까

15:45, January 25, 2013

[외신의 눈]<4> 
그때 그 시절, 한국의 청년들은 왜 ‘루쉰’을 읽었을까

그때 그 시절, 군홧발에 짓밟힌 청년들의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사회의식을 갖고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학생들이 불순세력으로 매도 당하고 탄압받았다. 80년 5월, 특정 지역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길바닥엔 시체가 즐비했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공수부대는 워커발로 무고한 시민의 얼굴을 문지르고 대검의 날로 그들의 발가락을 찍었다.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나가는 여고생의 상의를 대검으로 찢고는, 유방을 칼로 그어 버렸다. 선혈이 가슴 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의 증언이다.

이런 암담함 속에서 대학생들과 젊은 지식인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은 정권의 나팔수가 되었고, 대학의 수업은 이미 망가졌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대학생들이 사회의식과 비판의식을 키울 수 있는 곳은 동아리(서클)나 하숙집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불온서적으로 지목된 책들을 필독하며 잘못된 권력에 맞서 싸웠다. 그 ‘불온서적’의 중심에는 ‘시대의 양심’ 리영희가 있었다. 리영희는 언론인으로서, 사상가로서 끊임없이 진실을 서술했고, 그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 등은 암암리에 팔려나가 당시 청년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상의 은사’ 리영희에게도 닮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이다. 한국에서 루쉰의 작품이 처음으로 발표가 되었던 때는 1920년으로 리영희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이후, 루쉰의 작품은 한국에서 금서로 지정이 됐기 때문에 리영희는 ‘루쉰’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리영희가 루쉰을 알게 된 것은 조선일보 기자 시절 일본 출장에 갔다가다. 서점에서 우연히 루쉰에 관한 책을 발견했고, ‘루쉰’을 만난 리영희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루쉰의 작품을 읽었다. 리영희는 기차를 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루쉰의 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신의 저서에서도 끊임없이 루쉰을 언급하며 그의 정신을 강조했다. 리영희는 “나의 글 쓰는 정신이랄까, 마음가짐이랄까 하는 것은 바로 루쉰의 그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루쉰을 사랑하고 존경했다.

리영희가 말하는 루쉰의 글에는 ‘미화’가 없다. 저서 <우상과 이성>에서 리영희는 “그(루쉰)의 글에는 현학적인 요소가 없다. 고매한 학설이나 이론으로 탁상공론하는 것은 동포에 대한 지식인의 배신행위로 생각했다.”고 서술했다. 실로 루쉰은 당시 중국 인민대중의 우매함과 자사(自私)주의를 냉정하게 묘사해내며 중국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그의 작품에는 혁명가의 피가 묻은 ‘인혈만두’를 폐병에 걸린 아들에게 먹이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루쉰은 몰락한 구지식인, 노예근성으로 가득찬 인물 심지어 ‘광인(狂人)’까지 소설에 등장시키며 분세질속(憤世嫉俗•세상에 울분을 느끼고 속된 것을 싫어함)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 울분의 원천은 애국심, 바로 그것이었다.

한국의 청년들은 리영희를 통해 루쉰을 알게 되고, 루쉰의 작품을 읽었다. 루쉰의 작품에는 ‘한국’이 없었지만, 한국의 청년들은 그의 작품에서 ‘한국’을 봤다. 루쉰이 묘사한 참혹한 중국은 한국이기도 했다. 루쉰의 외로운 외침은 수많은 청년들의 절규를 대변했다. 청년들은 참혹한 비극 속에 서리어 있는 강렬한 희망을 본 것이다. 납함(吶喊)의 서론이나 산문도 많이 읽혔다. 루쉰의 날카로운 글들이 한국 사회 도처에 만연한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 시절, 한국의 청년들은 ‘루쉰’을 읽었다. 그러나 루쉰의 정신과 리영희의 정신은 어느 순간부터 차츰 잊혀져 가기 시작했다. 그 치열함이 구시대의 산물로 전락해 버렸다. 루쉰의 정신은 정말 과거의 산물일 뿐인가? 이제 오늘날의 청년들이 대답할 차례다.

박수정 기자

Print(Web editor: 轩颂, 周玉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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