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5월 0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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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乾陵)

14:41, May 03, 2012

산시성(陕西省, 섬서성) 셴양시(咸阳市, 함양시) 첸현(乾县, 건현) 성 북쪽 6㎞ 지점의 양산(梁山)에 있는 당 고종(高宗) 이치(李治)와 여황제(女皇帝) 무측천(武则天)의 합장릉으로 장안(长安) 서북방향 즉, 팔괘(八卦)의 건(乾) 자리에 있어 건릉(乾陵)으로 불리게 되었다. 683년 무측천은 이부상서(吏部尚书) 위대개(韦待价)로 하여금 건릉의 공정을 맡겨 684년 8월 이치가 매장되고 이후 건릉의 건축공사는 계속되어 706년 5월 당 중종 이현(李显)은 무측천을 건릉에 장사지내도록 명령하였다. 그동안 건릉에는 영태공주(永泰公主) 이선혜(李仙惠), 의덕태자(懿德太子) 이 중윤(李重润), 장회태자(章怀太子) 이현(李贤), 허왕(许王) 이소절(李素节), 택왕(泽王) 이상금(李上金), 의양공주(义阳公主) 등의 묘가 건립되었다.

당 말기 황소(黃巢)는 40만 대군을 동원하여 40여 m의 깊은 고랑을 파냈으나 묘도구(墓道口)에 이르지 못하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오대십국(五代十國) 기간에도 요주자사(耀州刺史) 온도(溫韜)가 군대를 조직하여 당의 황릉(皇陵)을 발굴하려 하였으나 건릉의 건축이 견고하고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60년 현지에서 농민에 의해 우연히 무측천의 묘도(墓道) 입구가 발견되었고 1960년 2월 건릉발굴위원회(乾陵发掘委员会)가 성립되며 초보적인 발굴을 통해 건릉 무측천의 묘도(墓道)임을 확인하고 계속 발굴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周恩来)가 건릉발굴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이 발굴 계획은 중지되었으며 현재까지 건릉은 당대 18릉 중 유일하게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은 능묘로 여겨지고 있다.

건릉(乾陵)이 소재하고 있는 양산(梁山)에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합장묘는 가장 높은 북쪽 봉우리에 있다. 남쪽의 양쪽 봉우리는 비교적 낮으며 동서로 대칭을 이루고 중간은 사마도(司马道)이다. 양쪽은 화표(华表) 한상, 익마(翼马), 타조(鸵鸟) 각 한쌍, 석마(石马) 다섯 쌍, 옹중(翁仲) 10쌍, 석비(石碑) 2도(道)가 있다. 동쪽은 무자비(无字碑)이며 서쪽에는 술성기비(述圣记碑)가 있다. 또한 61 번신상(番臣像) 61존(尊), 석사(石狮) 한 쌍이 있다. 능원은 이 중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사방이 문이 하나씩 있다. 이치와 무측천은 모두 성당시기(盛唐时期) 인물로 건릉 내 수장품이 매우 풍부하며 이치가 생전에 서예를 매우 좋아하여 임종을 맞아 그가 소장하던 많은 서예작품들이 무덤 내에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왕희지(王羲之)의 절세 작품 란정집서(兰亭集序)가 건릉 내에 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건릉에는 산봉우리의 능묘 이외에도 고종의 아들 장회태자묘(章怀太子墓), 중종의 아들 의덕태자묘(懿德太子墓), 고종의 아들 택왕(泽王) 이상금묘(李上金墓), 고종의 아들 허왕(许王) 이소절묘(李素节墓), 이현(李贤)의 아들 빈왕(邠王) 이수례묘(李守礼墓), 고종의 딸 의양공주묘(义阳公主墓), 예종의 딸 안흥공주묘(安兴公主墓), 중종의 딸 신도공주묘(新都公主墓), 중종의 딸 영태공주묘(永泰公主墓), 왕극선묘(王及善墓), 설원초묘(薛元超墓), 양재사묘(杨再思墓), 유심례묘(刘审礼墓), 두로흠망묘(豆卢钦望墓), 유인궤묘(刘仁轨墓), 이근행묘(李谨行墓), 고간묘(高侃墓) 등 17개의 태자(太子), 공주와 대신의 묘가 있다.

이 중 영태공주(永泰公主)와 의덕태자(懿德太子)의 2개 묘는 중국역사상 유일한 호묘위릉(号墓为陵) 제도에 따라 건립된 무덤이다. 건릉은 성당시대 문물이 집중되어 있어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발굴 및 방부기술 등이 완전하지 않아 문물의 훼손이 우려되어 많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대규모의 발굴을 지지하고 있지 않고 있다.

Print(Editor:赵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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