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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의 고찰<2> 여경옥 셰프 편

14:32, January 18, 2013

중국통의 고찰<2> 여경옥 셰프 편

1995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이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신라호텔에 머문 장 전 주석은 호텔에서 특별히 준비한 중식을 먹고 ‘맛있다’라는 찬사를 연발했다.

신라호텔이 준비한 메뉴는 불도장과 상어지느러미 등 중국 최고급 요리. 그 요리를 만든 사람이 바로 여경옥 셰프다. 그는 중국 최고의 지도자에게 중국 요리로 인정을 받은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중국요리의 대가 여경옥 셰프와 함께 중국요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았다.

여경옥 셰프는 중국요리의 대가(大家)라는 말에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쳐다보지도 못했던 선배들이 아직 다 살아계시는데 나한테 대가라는 말은 부담스럽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나 지나친 겸손이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음식 배달로 돈을 벌었다. 그러다 주변의 권유로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면서부터 그의 요리 인생이 시작됐다. 1984년에 신라호텔에 입사했다. 이후 서울 시티클럽 중식 담당 주방장, 중국 소주호텔 총주방장을 거쳤다. 2000년 대만 국제미식전 입상, 2001년 중국 동방미식전 개인전 금상, 2002년 말레이시아 세계요리대회 개인전 은상 등을 수상하며 요리사로 승승장구, 2008년에는 중식당 ‘루이’를 차려 직접 경영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리기능사 기능장 출제위원 및 감독위원, 조리산업기사 출제위원, 세계 중식조리연합회 국제심사위원, 혜전대학 조리외식학과 겸임교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직함이 너무 많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다.

▶ 한국에서 요리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식당들이 ‘어머니의 손맛’, ‘어머니의 정성’을 모토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요리는 이런 개념이 아닌 것 같다. 중국에서 ‘요리’란 무엇인가?

▷ 한국에서 아이들의 입맛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엄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어머니의 정성’, ‘어머니의 손맛’을 강조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맞벌이 하는 부부가 많아) 집에서 밥 해먹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국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먹는 것’ 자체를 즐긴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비즈니스를 하면 술을 마시지만, 중국 사람들은 좋은 식당에 가서 밥부터 먹고 시작한다. 중국에서 요리는 ‘행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푸짐한 식사를 즐기면서 느껴지는 행복. 실제로 중국인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카이신(開心,기쁘다)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안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 한국인들은 ‘중국요리’하면 대부분 짜장면, 탕수육을 떠올리지만 막상 중국에 가보면 짜장면, 탕수육이 중국의 대표 요리로 통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진짜’ 대표요리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한국에 중국 요리가 들어온 것은 100년이 넘었다. 당시는 청(淸)요리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70,80년대 들어서 외식문화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무슨 날’이면 중식당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그 때부터 짜장면과 탕수육이 중국의 대표음식이라는 인식이 굳어진 것 같다. 지금도 중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요리는 탕수육이다, 식사는 짜장면이고.(웃음) 중국의 대표요리는 사실 정하기가 힘들다. 중국 요리가 워낙 다양해서 각 지역의 대표요리를 꼽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외국에서 생각하는 중국의 대표 요리는 ‘딤섬’인 것 같다. 딤섬은 요리라고 하기보다는 ‘스낵’으로 볼 수 있는데,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다 있다. 또 부담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다.

▶ 중국의 식문화를 이야기 할 때 흔히 ‘네 발 달린 것은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고 한다. 그만큼 식재료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중국 음식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음식의 재료가 유독 더 다양한 이유는 무엇인가?

▷ 광둥(廣東)에 요리 대회 심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심사위원을 위한 오찬, 만찬 자리가 마련됐었는데 그 때 정말 다양한 음식을 맛봤다. 발이 열 개 달린 지네 비슷한 것부터 발 없는 곤충까지 나와서 처음에는 시식해 보다가 나중에는 못 먹었다. 중국의 식재료는 그만큼 다양하다. 이유는 넓은 영토때문이다. 워낙 땅이 크다 보니 한 국가에 다양한 계절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하얼빈(哈爾濱)이 영하 30도일 때, 반대 편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중국에는 해안가부터 고산지대까지 다 있다. 이렇다 보니, 식재료가 풍부할 수밖에 없다. 지역마다 특산물도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중국 요리의 종류가 많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중국 사람이 이런 음식들을 다 먹는 것은 아니다. 전갈 꼬치, 해마 꼬치 이런 것을 파는 곳에 막상 가 보면 전부 외국인들뿐이다. 중국에 돼지고기를 안 먹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중국인들이 모든 음식을 다 잘 먹는다는 것은 오해다.

▶ 중국은 역사가 길어서인지, 요리의 유래에 대해서도 많은 설이 있다. 중국 요리에 얽힌 유래, 어떤 것들이 있나?

▷ 중국 요리에 얽힌 재미있는 유래들은 정말 많다. 과거 황제가 즐겼다는 ‘제비집 요리’에도 특별한 유래가 있다. 중국 명나라의 환관 정화(鄭和)라는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면서 무인도에 떨어졌다. 먹을 것이 없어 고생을 하던 중에 절벽 위에 새가 날아다니는 것을 발견, 부하들을 시켜 그 주변에 먹을 것이 있나 찾아보라고 시켰다. 부하들은 새를 잡지 못한 대신에 ‘하얀 것’을 가져왔다. 그 하얀 것이 바로 제비집이다. 급한 대로 제비집을 끓여서 먹었는데 다치고 지친 병사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고 한다. 그 때부터 이 제비집을 황실에 진상했다.

짜장면에 들어가는 춘장에 대한 유래도 있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 곡식 같은 것을 저장해뒀다. 어떤 사람이 밀을 저장해 뒀는데 그 해에 비도 안 내리고 유독 더웠다. 여름이 가고 단지 안에 저장해놓은 밀을 봤는데 썩어 버렸다. 썩은 밀이 아까워 반죽도 해 봤지만 실패했다. 버리기가 아까워 소금을 뿌려 놓았다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다시 확인했더니 아예 시커멓게 썩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향이 좋기에 먹어 봤더니 나름대로 맛이 있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춘장이 ‘소스’가 됐다고 한다.

짜장면이 생긴 것도 이 춘장 때문이다. 진시황이 순례를 하다가 산동지역에 갔다. 산동지역은 밀가루 음식을 잘한다고 소문이 난 곳이었다. 진시황을 위해 음식을 하라고 하자, 산동지역의 사람들은 진시황의 입맛에 맞추지 못할까 봐 다들 피했다. 어쩔 수 없이 한 명이 ‘차출’됐다. 요리를 하게 된 사람이 긴장한 나머지 실수로 춘장을 넣어버렸다. 그런데 음식을 먹은 진시황이 그 맛에 반하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짜장면이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유래일 뿐이다. 믿거나, 말거나.(웃음)

▶ 한국의 ‘매운 맛’과 중국의 ‘매운 맛’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중국의 매운 맛이 한 수 위다”라고 한다. 중국 음식이 이렇게 매운 이유가 있나?

▷ 중국 음식이 다 매운 것은 아니지만 쓰촨(四川)이나 후난(湖南)의 요리는 정말 맵다. 맵고 짜다. 그 지방에서는 산초나 고추가 많이 재배된다. 또한, 절인 음식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절인 음식을 만들려면 향신료를 많이 쓸 수밖에 없다 보니 음식이 자연스럽게 매워진 것 같다.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不怕辣, 怕不辣’, 쓰촨 사람들은 매운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후난 사람들은 맵지 않을까 봐 두려워 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광둥 지역 사람들은 매운 것을 못 먹는다. 광둥 사람에게 한식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영양밥을 만들면서 색깔을 내기 위해 고춧가루를 조금 넣었는데 빨갛다고 쳐다보지도 않더라. 중국의 매운 맛이 한 수 위긴 하지만, 중국 음식이 전부 맵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경옥 셰프에게 중국 요리란 무엇이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더니, 그는 요리 자체가 ‘나 자신’이라고 대답했다. “요리는 ‘나’이기도 하고, 나의 행복이기도 하고”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을 보니 꾸며낸 말 같지가 않았다. 35년 요리 경력 중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처음 국수를 삶은 날’이라고 한다. 매일 설거지만 하다가 처음으로 국수를 삶게 되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수를 삶은 후, 형에게 달려가 공중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우연히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성공한 것을 보니 그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니 그는 ‘후천적 노력형’이 확실했다. 그는 낮에 요리를 하면, 밤을 새워 레시피 공부를 했다고 한다.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도 진학했다. 스스로 이론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곧 박사학위도 받는다고 한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요리사로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후배들이 ‘중국 요리’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불우이웃도 돕고 싶다고 한다. 요리를 하면서 ‘주는 기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의 요리가 맛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런 따뜻함이 첨가되었기 때문인가 보다.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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