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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담 소장은 스무 살 무렵 시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을 처음 만났다.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는 ‘모순론’, ‘실천론’을 읽었으며,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을 본 후에는 마오쩌둥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 보게 됐다. 백 소장은 그 때부터 마오쩌둥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마오쩌둥을 따라 사상을 연구하고 시를 읽으며, 그를 사숙(私淑)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을 마주했을 때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많은 문헌자료를 접하면 접할수록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몇 날 며칠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 소장은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통달했고 중국의 새로운 근대기획을 가시화했던 마오쩌둥의 거대한 유산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원담 소장은 중어중국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백 교수’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인문학적 소양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백 교수’는 여전히 배우고 고민한다. 마오쩌둥, 루쉰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길을 묻기도 한다. 백 소장을 만나 중국에 대해 인문학적 관점으로 접근해 봤다.
▶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모옌(莫言)이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중국이 하드파워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를 가진 국가로 발돋움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모옌의 수상이 중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나?
▷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국이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잘못된 평가다. 중국은 원래 소프트파워 강국이었다.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전에도 중국문학의 정체성은 뚜렷했다. ‘마오둔문학상’ 등 중국 내의 문학상들도 충분히 권위가 있는데, 수천년의 역사전통을 가지고 오늘에 이르른 중국 문학이 ‘노벨문학상’이라고 하는 서구의 기준에 끼워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옌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실제로 모옌은 중국작가들이 존경하고 인정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모옌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중국문학이 세계 무대에 귀환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 루쉰(魯迅)과 한국의 참지식인 신영복을 두고 “두 형상이 영상처럼 자연스레 포개진다”고 했다. 루쉰과 신영복을 함께 다루는 이유가 무엇인가?
▷ 루쉰 선생은 1881년 생이고, 신영복 선생은 1941년 생이다. 한 갑자(甲子) 차이가 나는 것이다.
루쉰은 ‘문화노동자’ 같다. 그는 항상 책을 만들고, 도안하고, 글을 썼으며, 판화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신영복도 늘 글을 쓰고, 붓글씨를 쓰고, 후학들에게 붓글씨를 가르친다. 이런 점에서 루쉰과 신영복은 닮아 있다. 또한, 루쉰을 생각하면 붓과 칼이 떠오른다. 그 붓은 힘이 있고 칼날처럼 날카롭다. 신영복 선생도 마찬가지다. 부드러운 붓이지만, 그의 붓끝은 예리하고 강하다. 두 사람은 자신의 글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자리매김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정위(定位)를 아는 것이다. 자신들의 글이나 실천행위에 대하여 소유의식이 없다는 점도 닮았다. 루쉰과 신영복은 사회적 효용이 있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만든 것들(글이 됐든 뭐가 됐든)을 정말 있어야 할 곳에 놓아둘 줄 알았다. 그리고 잘 버리는 법을 알았다. 그들은 이러한 의식적인 ‘버리기’,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방식을 통해 후배문인과 후학을 양성하며 문화운동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루쉰과 신영복이 각각 장성에 대한 글을 썼다는 점도 두 사람을 함께 다루는 이유 중 하나다. 루쉰은 ‘위대하고도 저주스러운 장성이여’라고 했다. 이 촌철살인의 문장은 <사기, 몽염열전> 말미에 사마천이 이미 예리하게 갈파한 바이다. 루쉰의 그 짧은 한 마디는 오랜 전쟁을 거쳐 통일을 이루었으면 민생부터 돌보아야 할 터인데 또다시 힘겨운 부역 등으로 민중들의 삶을 억압하여 파탄에 빠뜨린 진시황을 비롯한 역대 중국왕조의 통치문제를 함축하고 있으며 흉노족 등 오랑캐라는 경계 너머의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또한 담고 있다. 신영복은 이를 모두 이해하면서 “人賢長城, 사람이 장성보다 낫다”고 썼다. 중국의 장구한 역사를 돌아보면 장성을 두고 이민족과 전쟁을 지속하기 보다 ‘문명교화’ ‘문명’의 말 혹은 문화로써 화친을 맺어 동아시아 세계관계를 이루어 왔기 때문에 장성이라고 하는 방대한 축조물보다 사람이 낫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성 또한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고 그것을 존재양식으로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이것이 바로 신영복의 눈이다.
루쉰과 신영복은 역사를 거울 삼아 현실문제에 대해 성찰해나간 것은 물론 일상의 삶을 끊임없이 돌이켜보며, 그를 통해 사회에 새롭게 문제제기를 해나가는 지식인들이다. 루쉰은 생전에 삶의 긴장을 놓치지 않았으며 신영복도 그러하다. 그 긴장 속에서 나오는 글과 행동이 그들을 겹쳐 보이게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중첩적이고 중층적 상태,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생동하며 새로운 힘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 또한, 그 힘은 현실의 문제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대응하게 만든다.
그리고 개인적인 행운으로는 루쉰 선생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신영복 선생은 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바로 옆에 계신 ‘살아있는 선생님’이라는 거다.
▶ 마오쩌둥(毛澤東)은 인문학적 소양이 뛰어났던 중국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마오쩌둥은 중국 고전, 중국 철학 등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나?
▷ 나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도자를 따라 시를 읽고 산문을 읽고, 그를 따라 역사 기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부럽다. 마오쩌둥의 시는 어디를 가나 스테디셀러이며, 그가 읽은 시편을 골라 엮은 시선집(詩選集, 毛澤東古典詩詞曲賦全編 등)은 중국의 시를 구래부터 광범위하게 담고 있다. 중국문학 강의를 할 때, 그의 시선집을 교재로 사용해도 될 정도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읽어낼 때, 시적 긴장을 잃지 않았다. 사범학교 재학 시절부터, ‘위안따후즈’(袁大胡子/원털보) 선생에게 시를 통해 중국을 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문(산문)’에 대한 통찰력도 뛰어났다. 수호지, 삼국지 등 기사(記事)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산문부터 사서삼경 등 입언(立言)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서까지 두루 꿰고 있었다. 특히 낭만주의 문학의 효시인 초사(楚辭)를 좋아해 닉슨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는 초사를 선물하기도 했고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에서 산시성 옌안(延安)까지 행군하면서도 초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일본의 다나까 가꾸에이 수상이 마오쩌둥의 방에 갔다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중국 고전들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마오쩌둥은 중국 역사 속 수 많은 삶의 곡절과 지혜를 전부 포괄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전통사상은 중국 지혜의 총집합이다. 그러한 전통사상을 맑시즘이라고 하는 외래의 것과 결합을 시킨 것이 마오쩌둥 사상이다. 마오쩌둥은 근본을 중요시했다. 중국의 전통사상 안에 맑시즘 요소를 넣은 것이다. 마오쩌둥은 인간의 주체적 힘을 믿었고, 그래서 인간의 진보지향에 대한 전망을 가진 지도자이자 중국 전통의 힘을 가장 잘 알았던 지도자다.
▶ 한국에서 중국 고전을 재해석한 책이 잇따라 출판되고 있으며, 반응 또한 나쁘지 않다. 21세기 한국에서 중국 고전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나는 내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사기(史記)>를 제대로 읽어오면 A+를 준다. <사기>는 풍자와 해학도 담겨 있지만 그것이 ‘발분지작(發憤之作)’인만큼 적나라한 리얼리즘, 그 자체만으로도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중국고전의 가치는 문사철을 아우른다는 것에 있다. 또한, 이 고전의 힘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비판적 성찰’이다. 자신과 세계를 비판할 수 있는 인문학적 힘을 키워준다. 또 다른 하나는 ‘상상력’을 준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상상하게 만들어 인간의 삶이 자연과 더불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지향점’을 제시해준다.
그런데 오늘날 ‘공자읽기’, ‘맹자읽기’는 형식화(形式化), 사인화(私人化), 도식화(圖式化)가 되어있다. 경쟁사회에서 성공신화를 이루려는 처세의식이나 자기 안위를 위한 치유의식에서 발생된 ‘고전 찾기’이지 진정한 의미의 ‘고전 찾기’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대증요법으로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논어심득의 유행에서 보듯이 상업주의가 부추기는 측면까지 더해져 이런 분위기가 조성됐다. 중국의 문사철은 새로운 왕조와 시대를 거치며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 진전을 고민하는 가운데 고답적인 보수주의철리나 지배이데올로기에 대응하여 새로운 사회적 관계 원리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형성이 된 것이다. 오늘날 제자백가와 역사서를 박물관에서 끌어내 ‘교양’과 ‘처세’와 ‘치유’의 컨텐츠로 가공해서 문화상품으로 팔고 사는 작태들은 결코 진정한 의미의 ‘고전 찾기’가 아니라는 점이 안타깝다.
▶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중국의 철학사상에서 찾을 수 있을까?
▷ 중국의 철학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형태가 아니며, 백가쟁명(百家爭鳴)시절의 수 많은 논의들을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박제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보다는 혼란기마다 새로운 정치와 사회를 꿈꾸며, 가장 좋은 정치사상원리를 찾고자 했던 노력들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사의 곤경에 봉착했을 때 서양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로 중국사람들은 ‘춘추전국시대’로 돌아가는 식이 아니라 인류의 축적된 지혜를 재해석하고, 그 안에서 혜안을 키우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한 인류의 지혜, 광활한 사상자원을 하나로 규정 지어서는 안 된다. 철학사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과 실천적 사고의 힘을 준다. 그 힘의 원천은 해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길 찾기’에서 온다. 철학사상은 우리를 문제의 심처(深處)로 이끌어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기 역사를 성찰하고 갱신해오며, 그 속에서 살아나온 것이 중국철학이다. 그러므로 중국철학은 해답을 주기 보다는 ‘인간이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며 살 것인가’, ‘진정으로 다원 평등한 문명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등의 문제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백원담 소장에게 중국 문학을 통틀어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추천하고 싶은 문학작품이 너무 많다며 깊은 고민을 했다. 고심 끝에 루쉰 문학이 갖고 있는 현실주의의 치열한 긴장감과 마오쩌둥의 시가 갖고 있는 혁명적 낭만주의를 말했다. 결국 ‘루쉰’과 ‘마오쩌둥’이었다. 혁명가이자 문학가인 이 두 사람을 자국민들조차 이토록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박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