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작년 6월, 중국을 순방하시다가 애초 일정에 없던 중국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하여 헌화하셨습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도지사: 아시아가 하나의 평화로운 지역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아가 청나라 말기 대륙 항해를 금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외 개방과 교역을 청나라가 막으면서 중국 대륙이 산업화와 근대화에 뒤처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한국은 이것을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서양 사람들이 동양을 점령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서양 사람에게 먹히는 것보다 일본이 먹는 것이 낫다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것으로 1900년대에 아시아가 조각조각 나눴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시아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지대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의 평화로운 질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난 20세기의 서로 간의 상처를 사과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입구의 문구가 감동이었습니다. ‘Don't forget, but forgive. ‘잊지 말자, 하지만 용서하자!’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문장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난징대학살에 대한 일본 만행의 자료도 놀랐습니다. 한국도 그만큼 일본으로부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사람에게 “과거 가지고 시비 걸지 않을 테니 아시아의 일원으로 들어와라. 대신 과거를 가지고 주장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계속 그렇게 안 하고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정치인들이 일본의 지도자로 커가는 것은 아시아가 분열되는 것입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한 것은 그런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것을 생각하자는 취지로 갔습니다. 특히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정치인의 발언이 세졌습니다. 저도 일본 현과 도지사들과 교류가 있지 않습니까? 교류하고 있는 일본 도지사들과 역사 교과서 문제로 오랫동안 우정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왜 이것으로 싸우려고 하는지 화가 났습니다. 그때 잘못했던 것을 말하면 그만인 것이지요. 한국의 위안부는 강제로 당한 것이 아니라 몸을 파는 여자였다고 말하면 앞으로 어떻게 서로 간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지 하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사람들이 과거의 아픈 상처에 대해서는 똑같이 가슴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용서하고 평화를 만들자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기자: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들이 많습니다. 정치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도지사: 네티즌 여러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분단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반으로 갈라지고 전쟁까지 치렀습니다. 전쟁까지 치르다 보니 한국과 조선은 서로 많이 원망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 문제가 잘 풀려야 더욱더 많은 번영이 만들어집니다. 갈등의 구조를 풀어줘야 합니다. 오늘날 중동의 질서를 보십시오. 이스라엘과 중동의 문제를 어떻게 풉니까? 결과적으로 선진국들의 자원과 중동의 오일 파워가 국가와 민족 간의 갈등을 60년 이상 싸움 붙여놓았습니다. 그것을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손해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과 저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분단을 평화의 틀로 잘 정리하는 것입니다. 중국과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한반도가 자기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한국과 조선이 분단의 체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길 바랍니다.
기자: 정치인으로서 쉼 없이 달려오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불혹을 넘어 지천명(知天命)을 앞두고 계시는데,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도지사: 제가 이제 64년생, 용띠입니다. 한국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1살이고 외국에서는 태어난 지 1년이 지나야 1살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있었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1살인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 나이로 50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는 광주 항쟁이 일어나고 전두환 장군이 총칼로 대통령이 됐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그에 저항하느라 고등학교도 제적당하고 그때부터 계속해 이 길로 왔습니다. 이런 저로서 보면 사람들 앞에서 좋다 나쁘다 지지하는 박수도 좋지만 지지하는 박수가 뜨거울수록 공격하는 창끝도 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직업 속에 산다는 것이 저로서도 피곤한 일입니다. 그래서 간혹 첨예한 대립이 꼭짓점에 서서 살아가는 인생, 이 직업에서 은퇴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나이 50에 은퇴하기엔 젊다고들 합니다. 제 직업 세계의 포부는 민주주의를 잘하는 일입니다. 민주주의가 달리 민주주의겠습니까? 중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인민(人民)이 주인입니다. 인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인민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 설계를 잘 해주고 국가 운영의 결과가 인민을 위해서 작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 운영 자체의 전반적인 인민의 주권이 보장돼야 합니다. 그럴 때야만 다툼이 가장 효과적으로 정리됩니다. 중국은 삼농(三農)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서 농촌의 많은 인민이 문화적 물질적인 제한들을 복구하기 위해서 많은 성장님들이 농업 정책과 농촌 정책, 농민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갈등들이 이 체제 내에서 평화롭게 잘 이끌어지려면 그들의 권리가 잘 보장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다툼을 줄이고 평화롭게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그런 사회제도를 잘 정비해 주는 일은 농부가 물꼬를 잘 정리해주는 일과 똑같습니다. 저는 정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적 제도의 틀을 잘 만들어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번영의 질서를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제가 가지고 있는 직업적인 포부이자 제 계획입니다.
기자: 지사님의 모든 포부가 순조롭게 잘 이뤄지시기를 바랍니다. 바쁘심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인민망 인터뷰에 응해 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도시자: 제가 오히려 고맙죠.
기자: 앞으로 도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받는 도지사님 그리고 존경 받는 정치 지도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도지사: 인민망 네티즌 여러분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