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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억 한국외국어대학교 공자아카데미 원장 인터뷰

18:19, March 15, 2013

맹주억 한국외국어대학교 공자아카데미 원장 인터뷰



[인민망(人民網)] 한국외국어대학교 공자아카데미는 2009년에 설립되었으며, 그 설립 목적은 중국어 교육과 중국 문화를 보급하는 데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공자아카데미의 원장인 맹주억 교수는 본 공자아카데미의 초대 원장으로, 지난 3년 반 동안 줄곧 공자아카데미의 발전을 위해 애써왔다. 그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의 우호적 교류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민간 외교를 위한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민망은 최근 맹주억 원장을 찾아 그의 인생 철학과 한국 내 중국어 보급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기자: 먼저, 한국과 중국의 인민망 네티즌들에게 인사를 부탁 드립니다.

원장: 인민망 네티즌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너무도 기쁩니다.

기자: 원장님께서 왜 중국어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국어를 배우시면서 있었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원장: 그 당시 한국과 중국은 수교가 이루어지기 한참 전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는 중국이라는 곳은 전혀 왕래가 없는 “아주 멀고 먼” 국가였지요. 게다가 이들 두 나라 사이에 비극적인 역사도 있었고요. 제가 중학교 때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제가 아시아 지역의 국면을 새롭게 살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저는 외교에 매우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개선된 것이 매우 커다란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후 한국도 중국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대비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국어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어를 접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중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을 알고 제 주변 친구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당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여건은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어 교재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그 때 한국에서 중국어를 접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저는 중국어를 연습하기 위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일부 화교들이 중국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중국 식당에서 중국어를 연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모든 화교가 다 중국어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자주 명동에 가서 중국어 하는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제가 참 용감했던 것 같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찾아서 말을 걸었으니까요. 하지만 중국사람들은 어디에 살던 지 간에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당돌했던 저도 그들로부터 따뜻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기자: 지금의 중국을 보시면 원장님이 처음 중국에 가셨을 때와 비교해 어떠한 차이점을 느끼십니까?

원장: 제가 처음 중국에 갔을 때, 많은 중국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 사람들은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장 커다란 변화를 말하자면, 제가 중국에 가서 자기 소개를 할 때 ‘남조선에서 왔다’라고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저를 매우 이상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때는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한 1988년 8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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