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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의 고찰<12> 한비야 유엔 자문위원 편 (2)

13:59, April 07, 2013

▶ 중국의 칭화대(淸華大)에서 어학연수를 받았는데, 중국 대학의 분위기는 어떤가? 한국 대학과는 또 다른 낭만이 있나?

▷ 한국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면 예쁘게 꾸미는데 당시 중국 학생들은 화장을 한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수수했다. 중국대학에는 한국의 대학가 주변에 널려 있는 당구장, 호프집 등이 없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도서관은 항상 공부하는 학생들로 가득 찼고, 학생들의 학구열은 고시 준비생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또한, 아침마다 학생들이 나무 근처에 홀로 서서 큰 소리로 수학 공식이나 영어 문장을 외우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칭화대 안에는 공원은 물론 호수도 있다. 호숫가에 혼자 앉아 있다가 옆에 있는 중국 학생들에게 말을 걸곤 했다. 당시는 한국 유학생이 별로 없을 때라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학생들이 깜짝 놀랐다. 그렇게 알게 된 중국 학생들과 친구가 되어 처음에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내 중국어 실력이 차츰 늘면서 중국어로 대화하기도 했다.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학교 안에서는 나도, 중국 학생들도 모두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런 것들 모두가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에서 ‘한국 사람들 중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몇 부류로 나뉜다.’며 일부 재중(在中)한국인들에 대한 적잖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거슬렸나? 재외국민이 지켜야 할 도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 10년 전 이야기라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경제력 차이가 꽤 있었다. 그때는 중국으로 사업을 하러 간 한국인들이 몇 천만 원 들고 가면 중국에서 ‘돈 자랑’을 할 수 있던 시기였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한국에서 돈 조금 들고 갔다고 으스대지는 못할 것 같은데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꼴도 보기 싫었다.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내가 살던 한국인 밀집지역 우다코(五道口)에서는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 학생이었다. 얼마나 거슬렸는지 모른다. 여학생들의 진한 화장도 보기 좋지 않았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화장을 무조건 진하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금처럼 ‘한 듯 안 한 듯’하면 예뻤을 것 같은데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으니 괴리감이 들었다. 도서관 자리를 맡아주는 일로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 사이에 싸움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문화차이로 인한 갈등이라 한국 학생들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도서관에서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타국에 가면 그 나라의 법을 잘 지키고,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다 똑같다. 밝고, 예의 바르고, 상냥한 사람을 좋아한다. 어느 나라를 가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고 그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 중국 생활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 같다. 중국을 떠나고 가장 그리웠던 것은 무엇인가?

▷ 중국은 항상 그립다. 나는 일년 중 6개월은 한국에 있고 나머지 6개월은 현장에 있는데, 현장에 있는 6개월 중 2주 정도는 시간을 내서 꼭 중국에 간다. 올해도 6월에 갈 예정이다. 중국에 가 있는 2주 동안은 중국어 공부를 하고, 등산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주중에는 과외를 받고, 주말에는 산에 가는 것이다. 중국을 떠나면 일단 ‘마사지’가 그립다. 발마사지와 전신마사지가 정말 받고 싶다. 중국어를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남수단에 있을 때는 중국어가 하고 싶어서 중국인이 하는 식당에 간 적도 있다. 중국의 춘절(春節) 때,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요란한 폭죽소리도 그립고 중국 친구들도 보고 싶다. 그리운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멘토’로 통하는 한비야 위원에게 녹록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을 위하여 한 마디 해달라고 부탁하자 <중국견문록> 중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라는 에피소드를 추천했다. 그녀는 기성세대가 이시대 청춘들에게 ‘그까짓 거 뭐가 힘들어’라고 무조건 질타를 하는 것도, ‘그래, 얼마나 힘드니’하며 무조건 옹호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개나리, 장미, 국화가 각각 다른 시기에 피듯이, 사람도 피어나는 시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한 위원은 본인을 가을에 피는 국화에 비유하며, 30대 전에는 자신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하기 전에는 제대로 직장을 다닌 적이 없으니 42세에 직업을 찾은 셈이다. 그녀는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춰서 보면 자신은 ‘낙오자’이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실컷 하고 살기에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춘들에게 “인생 공장에서 삶을 찍어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 모두의 인생이 같을 수가 있겠나.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잠재력을 믿고 나를 사랑하면서 때를 기다리기를 바란다. 매일 조금씩 나아간다면 ‘여러분’이라는 꽃은 언젠가 활짝 필 것이다. 한 송이, 한 송이 활짝 피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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