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제4차 전국대표대회
13:11, September 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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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1925년 1월 11일 - 22일
장소
상하이
회의에 참석한 중국대표
천두슈(陳獨秀), 차이허썬(蔡和森), 취추바이(瞿秋白), 탄핑산(譚平山), 저우언라이(周恩來), 펑수즈(彭述之), 장타이레이(張太雷), 천탄추(陳潭秋), 리웨이한(李維漢), 리리싼(李立三), 왕허보(王荷波), 샹잉(項英), 샹징위(向警予) 등 20명
회의에 참석하한 국제공산당대표
위신스키
당시 당원 수
994명
회의내용
천두슈(陳獨秀)는 제3차 중앙집행위원회를 대표해 업무보고를 실시했다.
회의에서 당시의 핵심사안을 위주로 한 <민족혁명운동에 대한 의결안> 등 11개 의결안을 통과시켰다. <민족혁명운동에 대한 의결안>에서 “노동자 계급 정당은 자본가 계급이 아닌 노동자 계급으로서 마땅히 민족운동에 참가해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독집적인 지위와 목적 하에 참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은 가장 혁명적은 계급으로 민족혁명은 가장 혁명적인 노동자 계급이 역량을 발휘해 지도자의 자리를 획득하는 것이 바로 승리다.”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노농연맹(工農聯盟)에 관한 <농민운동에 대한 결의안>에서 농민은 노동자 계급 동맹군의 근간이 되고 농민이 중국 민족혁명의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강조했으며 만약 농민투쟁이 없었다면 노동자계급의 지도자적 위치와 중국혁명의 성공은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회의에서 새로운 중앙정부 집행위원회를 선출했다. 새롭게 선출된 중앙집행위원은 총 9명으로 천두슈(陳獨秀), 리다자오(李大釗), 차이허썬(蔡和森), 장궈타오(張國燾), 샹잉(項英), 취추바이(瞿秋白), 펑수즈(彭述之), 탄핑산(譚平山), 리웨이한(李維漢)이 있고, 덩페이(鄧培), 왕허보(王荷波), 뤄장룽(羅章龍), 장타이레이(張太雷), 주진탕(朱錦堂) 5명은 후보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연이어 개최된 중앙집행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천두슈(陳獨秀)는 중앙 총서기 겸 중앙 조직부 주임으로 당선되었고 펑수즈(彭述之)는 중앙 홍보부 주임으로, 장궈타오(張國燾)는 중앙 노농부 주임으로, 차이허썬(蔡和森), 취추바이(瞿秋白)는 중앙 홍보부 위원으로 선출되어 이상 5명이 중앙국 위원이 되었다.
(Web editor: 轩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