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인민망 한국어판 10:21, May 17, 2016
[인민망 한국어판 5월 17일] 푸잉(傅瑩)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 주임과 우스춘(吳士存) 중국 남중국해연구원 원장이 얼마 전 ‘중국신문주간(中國新聞週刊)’과 미국 잡지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The National Interest)’에 남중국해 문제 관련 칼럼을 발표했다.
칼럼은 남중국해 문제 진전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이들 사건 속 연관성을 파헤쳐 문제 확대의 핵심을 짚어봄으로 남중국해 문제를 주시하는 이들에게 그 본질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동시에 오해가 깊어지고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각성 역할도 하고자 한다. 다음은 칼럼 요약 내용이다.
최근 몇 년간 남중국해 문제는 점점 중국과 미국 관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며 양측은 외교와 여론을 통해 서로 큰 소리를 내며 군사적으로도 긴장 국면에 접어들어 심지어 마찰을 빗기도 했다. 중미 양국 간 분쟁과 대항이 남중국해 문제를 통해 표출되는 듯하자 양측은 전략적 측면에서 상대의 의도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지난 역사를 돌아 보면 20세기 30년대 이전까지 국제적으로 중국의 난사(南沙)군도에 대한 주권에 아무런 분쟁도 없었기 때문에 꽤 많은 지도나 백과사전에서 난사군도를 중국땅으로 분명 표기한 것을 알 수 있다. 난사 분쟁은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전후 질서 구축에서 비롯되어 냉전 시기에 불거졌다. 필리핀, 베트남 등 국가의 난사군도 침범은 20세기 5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20세기 70, 80년대까지 이르는데 남중국해 석유가스자원이 발견된 이후 그리고 배타적 경제수역 제도가 생겨난 이후로 이러한 침범 행위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
2차대전 후 미국은 장기간 중국의 난사군도 주권을 인정했다. 미국은 외교자문, 측량신청, 항행일정통보 등 방식으로 중국의 난사군도 주권을 인정했고, 중국 타이완 당국도 난사 해당 암초에서 미국 군인을 맞은 적이 있다. 필리핀, 베트남 등 국가의 난사 해당 암초의 잦은 침범 행위를 놓고 미국은 장기간 아무런 입장도 표하지 않았지만 중국 타이완 당국에 여러 차례 이들 암초의 귀속 문제를 자문한 적은 있었다. 또 같은 시기 미국에서 출간된 지도와 서적, 예를 들면 세계 지명 사전과 국가별 백과사전을 보면 중국의 남중국해 제도 주권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냉전 시기 미국의 남중국해 정책의 딜레마는 도의와 국제법에 근거해 중국의 이들 암초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반공(反共) 및 아시아태평양 전략 추진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 대륙의 이들 암초 소유를 인정하기 싫고 또 이로 인해 우방인 필리핀과의 관계에도 타격을 받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세기 90년대 초부터 21세기 초까지 냉전 종료, 아시아태평양국가 관계 완화, 경제발전이 주요 기조로 등장한 가운데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와 아세안의 관계는 빠른 발전 단계에 올랐다. 이 기간 중국과 아세안 관계가 빠르게 발전하자 남중국해 문제는 거의 잠잠했다. 긴장 국면 완화를 위해 중국은 ‘분쟁보류, 공동개발’을 주장하며, 아세안 국가와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DOC)에 서명했다.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 체결 후 10년간 실제 중국만 관련 규정과 원칙을 고수하며 분쟁 확대 행위를 한번도 취하지 않고 해상의 평화와 협력을 위한 공동개발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베트남, 말레이이사, 필리핀 등 국가는 처음부터 ‘선언’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암초에 시설을 확충하며 행정관리를 정비하고 석유가스 자원 채굴을 확대하며 수시로 중국 어민들을 나포하는 등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바로 불법 점거 소유를 고착화해 ‘분쟁 보류’가 아닌 분쟁 존재를 부인하려는 것이다. 결국 이들 수법은 중국 민중과 여론에 반(反) 감정을 자극해 난사문제에 대한 관심을 더욱 불러 일으켰다.
남중국해는 2009년, 특히 2012년 후부터 긴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2009년 이전에도 여러 가지 마찰이 이어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제어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다 2009년에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는데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의 200해리 외변 대륙붕 한계 정보 제출 기한(2009년 5월 13일)도 분명 원인을 제공했고, 무엇보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조정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중미 양국 간 남중국해 군사 마찰이 부쩍 잦아져 2009년에만 미국 군함과 중국 함대 간에 적어도 5번이나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이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미국 해양관측선 ‘USNS Impeccable(임페커블)’ 사건이다. 2010년 이후로 미국의 남중국해 정책은 빠르게 전환되어 ‘양자택일’ 경향을 드러냈다.
아세안 일부 국가와 미국의 이 같은 행동에 중국 언론은 촉각을 곤두세웠고 언론의 보도는 사회적 반향을 크게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중국의 자제성 정책도 연속성과 민심이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했다. 2012년 4월에 일어난 황옌다오(黃岩島) 사건은 ‘낙타의 마지막 짚단을 무너뜨렸다’는 말로 비유할 수 있는데 중국의 정책과 인내심이 한계를 넘어서 어쩔 수 없이 제재 조지를 취하게 된 것이다.
2013년 1월 22일, 필리핀은 유엔 해양법재판소에 중국을 겨냥한 중재안을 제청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여러 차례 성명을 통해 “필리핀과 중재법정은 중재안의 본질이 영토 주권과 해양 경계 및 관련 문제에 있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또 중국이 2006년 ‘유엔 해양법 협약’ 제298조에 근거해 배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악의적으로 피하며” 중국의 “불인정, 불참여”만 강조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필리핀이 제기한 중재에 분명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리핀은 중재 제기의 이유를 중국과의 협상이 고착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 필리핀은 황옌다오 사건 이후로 중국과의 어떠한 진중한 대화도 거절하며 협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화도 없었고, 기타 DOC 회원국과도 협상을 가진 적이 없다. 그리고 중국은 2006년에 ‘협약’ 제298조에 근거해 배제 성명을 내놓았는데 중재법정은 주권, 역사적 권리 및 소유권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다. 따라서 중재 결과가 어떻든 간에 ‘협약’ 중 그 어떤 규정도 중국에게 불리한 중재 결과를 이행하게 할 수 없다.
전반적인 난사 국면 변화와 중국의 난사 암초 민생 및 기초 군사 방어 및 주권 수호 권익을 확실하게 개선하기 위한 필요에서 중국은 2013년 말에 자국 암초 위에 건설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암초는 모두 국제 항로와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항행의 자유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과 필리핀 등 국가는 이에 크게 반응하며 시끄럽게 떠들고 중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많은 중국인들 눈에 미국은 현재 남중국해 긴장 국면의 최대 주범이다. 첫째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을 빠르게 추진하며 갈수록 중국을 아시아태평양에서 주요 목표물로 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미군은 모든 기회를 이용해 중국의 ‘제3세력 개입을 막고 반격하는 능력’으로 인한 위협만 과장되게 떠들며 중국을 완벽 겨냥한 ‘공해일체전(空海一體戰)’ 등 작전개념을 적극 보완했다. 이러한 행동은 남중국해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복잡하고 긴장 국면으로 몰아세울 수밖에 없다. 중국의 많은 학자들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전략 조정을 위해 위협 심지어 위기라고 설정해 놓은 다음 ‘예언된 자아실현’을 할지 여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2년간 미국은 점점 무대로 나와 양자택일을 하더니 중국에 직접적인 압박과 위협을 가했다. ‘원가 상승’ 전략은 미국의 정책 선택 항목으로 즉 정치, 외교, 여론, 군사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중국의 남중국해 활동 원가를 높여 중국을 물러나도록 압박함으로 무력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의 이른바 '남중국해 확장'을 막아내려는 의도다.
미국이 남중국해를 놓고 대폭적인 정책 조정을 하므로 인해 바른 말 미국의 지위도 깎였고, 중국도 자국 이익에 타격이 가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져 중국의 자국이익 수호에 대한 결심은 더욱 자극 받았다.
남중국해 문제가 지금의 사태에 이른 것은 각종 행위와 말들이 서로 얽히고 설킨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국제적 환경과 지역 안보 상황의 변화 때문이다. 사태가 점점 악화되고 계속해서 서로를 자극하게 만드는 요소 중에는 주권, 자원, 전략 안보수요에 대한 현실적 이익 뿐만 아니라 각국의 기억 속 역사 맥락 결핍과 정보의 단절 그리고 서로의 전략적 의도와 정책 목표에 대한 짐작과 추측도 있다. 미국은 남중국해 역외 국가로 개입을 확대하고 입장을 바꾼 것은 2009년 이후 남중국해 사태 복잡화의 주요 원인이다. 모두가 주목하는 것은 앞으로의 사태 추이다. 미국은 앞으로 중국의 새로운 행동에 주목할 것이고 중국 또한 미국의 의도를 놓고 매번 의혹의 눈길을 던질 것이다. 남중국해 사태와 난사군도 분쟁은 모순 격화 심지어는 전략적 오판의 리스크까지 존재한다.
중국은 남중국해 이익 요구에서 한결같다. 국가 영토 주권을 보전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중국을 자세히 살펴보면 역사적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역사가 남긴 흔적은 선명하다. 중국은 제국주의 압제 속에 20세기를 맞았다. 중국인들은 외세 침입으로 인한 치욕의 경험을 잊을 수 없으며 이것은 국가와 민족의 지울 수 없는 기억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로 인해 중국과 중국인은 시종일관 영토 주권 보전 문제에서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국부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절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중국을 대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반드시 이해하고 감안해야 할 점이다. 물론 현재 중국의 생존과 발전을 뒤흔들 만큼 엄청난 외부 위협이 없긴 하지만 중국은 흔들림 없이 평화발전의 길을 걸으며 세계의 평화와 발전 및 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에 대한 신념과 약속은 변한 적도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016년 4월 28일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 외교장관회의 당시에 중국은 남중국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일관되게 수호하고, 남중국해 주권과 해당 권리를 굳건하게 지키며, 직접 당사국 간의 우호 협상으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아세안 국가들과 접촉하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은 ‘두 가지 궤도’ 사고를 고안해 직접 당사국 간의 평화적 협상으로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고, 중국과 아세안이 함께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자고 주장해 다수국가의 인정과 지지를 얻었다. 아세안 역시도 사태 진정과 대화 재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앞으로의 사태 추이는 각국의 인식과 선택에 달렸다. 만약 협력을 선택하면 다수가 이기고, 만약 대항을 선택하면 강경 및 충돌로 치닫게 되어 그 어느 쪽도 완벽하게 이득을 볼 수 없게 된다. (번역: 조미경)
원문 출처: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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