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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동포들이 대륙 방송 ‘몰래 청취’했던 시절

  11:09, August 22, 2014

타이완 동포들이 대륙 방송 ‘몰래 청취’했던 시절

[인민망 한국어판 8월 22일] “친애하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친구 쉬만(徐曼)입니다. 매일 저의 작은 힘을 다해 여러분에게 봉사할 것입니다.” 75세인 쉬만 씨는 30년 전과 같이 프로그램 <공중의 친구(空中之友)>의 오프닝 멘트를 했다. 그녀의 정감 있고 따뜻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를 통해 그녀가 당시 어떻게 많은 타이완 동포를 감동시켰는지를 알 수 있었다.

60년이란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 흘렀다. 1954년 7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개입한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방송인 20여 명이 베이징으로 모여 들었고, 중앙인민라디오방송국에 타이완 전문 방송부를 조직했다. 그 해 8월 15일부터 타이완 방송이 시작됐다.

“타이완으로 방송하는 전파는 한 줄기 번개처럼 타이완 해협의 상공으로 날아가 타이완의 많은 가정으로 퍼졌다. 양안(兩岸)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던 시기에 유일하게 타이완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던 방송이었다” 중앙인민라디오방송국의 왕추(王求) 국장은 이처럼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타이완에서는 대륙의 타이완 방송을 ‘적의 방송’이라고 여겼다. “중앙방송국 프로그램을 듣는 타이완 동포들은 청취 사실을 부모나 아내에게 비밀로 했다”고 쉬만은 설명했다.

타이완 동포인 왕유딩(王友定) 씨는 저장(浙江) 황옌(黃岩) 출신이다. 20세에 고향을 떠나 군에 입대한 후 국민당을 따라 타이완으로 이주한 것이 벌써 30여 년이나 흘렀다. “매일같이 고향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우울함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대륙의 타이완 방송 사실을 알려왔고, 이후 나는 매일 저녁 방송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라디오를 켜곤 했다” 88세의 왕유딩 씨는 감정이 북받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대륙의 타이완 방송을 듣는 일은 내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1979년 1월 1일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가 <타이완 동포에게 전하는 편지>를 발표했다. 이 내용이 타이완으로 방송되자 왕유딩 씨는 여러 차례 연속해서 들었다. 그 내용 중에는 타이완 동포가 대륙으로 여행하며 가족을 만나는 것을 대륙에서 허가한다는 소식도 있었던 것이다. “고향을 찾고 가족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그는 당시 심경을 밝혔다.

1979년 타이완 정부는 홍콩 등지까지 관광 범위를 확대했다. 왕유딩은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홍콩을 여행한다는 명목으로 겹겹이 싸인 장애물을 뚫고 황옌으로 귀향해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타이완에 남아 있었다면 건강이 이렇게 좋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항상 고향을 그리며 우울한 나날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왕유딩 씨가 말했다.

1981년 1월 1일에 쉬만이 진행하는 <공중의 친구> 프로그램은 대륙의 첫 번째 진행자라는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공중의 친구>는 과거 타이완을 상대로 딱딱한 정치적 선도를 했던 것에서 부드럽고 정감 넘치는 ‘교류’의 분위기로 변모했다. 쉬만 씨는 “그들이 고향을 그리워할 심정을 떠올리면서 동포의 정, 동포의 사랑을 내 가슴 가득 품은 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전파를 통해 대륙에 있는 동포의 안부를 묻고, 관심과 그리움을 전해왔다”고 언급했다.

<공중의 친구>, <친우의 편지함(親友信箱)>, <신주 여행(神州旅遊)> 등 타이완으로 방송되는 여러 프로그램은 타이완의 청중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80년대 말 고향을 찾고 친지를 만나던 동포들이 베이징을 먼저 찾고 쉬만 씨를 만난 후에야 고향으로 가곤 했다. 1990년대 초는 타이완 여행객을 가득 실은 여행사 버스가 아예 방송국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방송국이 일종의 관광지처럼 된 것 같았다”라고 <공중의 친구>의 또 다른 진행자 둥옌(冬艷) 씨가 설명했다.

둥옌 씨는 또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1984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한 타이완 동포가 광둥(廣東)에서 그녀에게 했던 이야기였다. 1년 전 어느 날 새벽, 타이완에 홀로 살던 노인이 홀연 꿈에서 고향집을 봤고 90세에 가까운 노모가 간절하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꿈에서 깬 그는 다시 잠들 수 없어 라디오를 켠 후 평소처럼 대륙의 방송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라디오를 듣던 그는 깜짝 놀랐다. 방송을 통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고향의 사투리와 너무도 익숙한 억양으로 그의 가족들만이 알고 있을 그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믿기 어려웠기에 라디오를 귓가에 대고 자세히 들었지만 역시 그의 어머니가 확실했다. 그 순간 그는 양 무릎을 꿇고 마치 어머니라도 안은 것처럼 라디오를 안은 채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불가사의한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용감하게 고향으로 돌아갔고,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볼 수 있었다.

과거 괴로웠던 단편들을 통해 평화로운 행복이 무엇인지를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양안이 대치 상태에서 평화로운 관계로 발전했을 때 대륙의 타이완 방송은 특별한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신문, TV, 인터넷 매체 등은 양안의 동포를 소통시켜 주는 교량을 하나씩 하나씩 쌓았다. 대륙의 타이완 방송 시간이 당초 매일 4시간이었던 것에서 오늘날에는 38시간 20분으로 늘어났다. ‘양안은 한 가족으로서 중국 꿈을 함께 이룬다’는 이념하에 대륙의 타이완 방송은 타이완 동포들이 애청할 만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 외에도 타이완 매체와 다양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타이완 동포들이 ‘적의 방송’을 몰래 청취하던 시절은 이제 영원히 막을 내린 것이다. (번역: 김선민 감수: 조미경)

원문 출처: <인민일보> 08월 21일 19면

(Web editor: 轩颂, 樊海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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