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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우즈 |
[인민망 한국어판 7월 7일] 1937년 7월 7일 밤, 루거우차오(盧溝橋, 노구교)에서 울려 퍼진 포성이 베이핑(北平·현 베이징)의 적막을 깨뜨렸다. 당시 열 살이던 허러야[何樂雅·훗날 저우즈(周直)로 개명]의 평화롭던 어린 시절도 그날 밤 산산이 부서졌다. 일본의 전면적인 중국 침략 전쟁이 본격화된 순간이었다. 중국 인민이 전면 항전에 나서며 민족 항일 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포화에 산산조각난 유년기
전쟁이 터지기 전, 허러야의 어린 시절은 책 냄새가 배어 있는 평온한 나날이었다. 광둥(廣東)성 샹산(香山)이 고향이지만 베이핑에서 성장한 그녀의 아버지는 고궁(故宮, 자금성)에서 고서와 서화를 정리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쉬안우먼(宣武門) 밖에서 여섯 식구가 살던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허러야는 아버지를 따라 붉은 담장의 고궁을 드나들며 책과 먹 냄새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7·7 사건 발발 전, 허러야가 아버지와 베이핑 자택에서 찍은 사진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 파시스트 세력이 둥베이(東北)를 점령한 뒤 화베이(華北) 지역을 끊임없이 탐내고 잠식해 가면서 베이핑에는 전운(戰雲)이 짙게 드리웠다.
1937년 7월 7일 밤, 불법 군사훈련을 벌이던 일본군은 병사 1명이 실종됐다는 구실로 완핑청(宛平城) 진입 수색을 강요했다. 중국 수비대가 이를 거부하자 일본군은 총격을 가하고 완핑청을 포격, 중국과 전 세계를 경악시킨 이른바 ‘루거우차오 사건’을 일으켰다.

일본군의 포격을 맞은 완핑청 성루
그날 밤, 허러야는 루거우차오 쪽에서 들려오는 포성을 똑똑히 들었다. 부모님은 일본군이 언제 집으로 들이닥칠지 몰라 두려움에 떨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인 1937년 7월 8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전국에 긴급 통전(通電)을 발송했다. “베이핑과 톈진이 위급하다! 화베이가 위급하다! 중화민족이 위급하다! 전 민족이 항전에 나서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다!”

1937년 7월 8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일본군의 루거우차오 공격에 관한 중국 공산당 통전’
당시 열 살에 불과했던 허러야는 복잡한 정세와 군사·외교적 공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전쟁이 가져온 공포와 절망은 온몸으로 느꼈다. 그녀는 지금도 그 광경을 생생히 기억한다. 루거우차오 인근에 살던 주민들이 이불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가족을 이끈 채, 전쟁이 없는 곳을 찾아 베이핑 성내로 필사적으로 몰려들던 그 모습을.

일본군의 완핑현 포격
점령 아래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나날들
그러나 베이핑 역시 안전하지는 않았다. 루거우차오 사건 이후에도 국민당 당국은 요행을 바라며 일관되게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고, 이는 일본군의 전면 침공을 더욱 부추겼다. 일본군은 계속해서 화베이에 병력을 증강하며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일본 침략군에 점령된 루거우차오
7월 28일, 일본군은 베이핑 난위안(南苑)을 맹공격했고, 5천여 명의 중국 수비군이 장렬히 전사했다.
7월 29일, 베이핑이 함락됐다.
7월 30일, 톈진마저 함락됐다. 불과 며칠 사이에 수만 명의 민간인이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베이핑 함락 후 정양먼(正陽門)을 통해 진입하는 일본군
일본군은 베이핑에 괴뢰 정부를 세운 뒤 잔혹한 본색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거리를 마구 휘젓고 다니며 청장년을 강제로 끌고 가 혹사시켰고, 여성들은 갖은 능욕을 당했다. 집 안에 있어도 평온한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날이었다.
일본군은 허러야의 집에도 들이닥쳤다. “물건이란 물건은 닥치는 대로 가져갔고, 우리는 무서워서 얼른 몸을 숨기기에 바빴습니다.”

1937년 7월 30일, 매국 괴뢰 단체 ‘베이징 지방 유지회’ 출범
육체적 고통보다 더 치욕스러웠던 것은 정신적 유린이었다. 베이핑 함락 직후, 일본 괴뢰 당국은 각급 학교에 학감(學監)을 파견했다.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강제로 가르치고 일본 노래를 부르게 하며, 중국인으로서의 민족적 절개와 기개를 조금씩 말살하려 했다.
어린 허러야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일본 놈들이 쳐들어오니까 중국인들은 하루아침에 망국의 백성이 돼 버렸어요. 누가 망국의 백성이 되고 싶겠어요? 아무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베이핑 점령 후 일본군이 시민들을 동원해 벌인 노예화 선전 행진
“희망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
베이핑이 암흑에 잠긴 그때, 허씨 가문의 작은 뜰 안에서는 한 줄기 불씨가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허러야의 오빠 허스퉁(何士通)은 베이핑 사범대학에서 수학하던 중 일찍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접하고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허씨 가문의 자택은 당시 중국 공산당 베이핑 지하당의 비밀 거점 가운데 하나가 됐다.
어른들이 마작을 하는 척하며 회의를 하는 동안 어린 허러야는 대문 앞에서 망을 보며 주변을 살폈다.

1936년 2월 1일, 베이핑 스푸마 대가(石駙馬大街)의 국립 베이핑 사범대학에서 민족해방선봉대가 정식 창립됐다. 사진은 베이핑 사범대학 도서관.
나이가 들면서 허러야도 진보적 서적을 접하게 됐고, 학우들과 ‘지구전론(論持久戰)’ 등을 돌려 보며 어둠 속에서 구국의 진리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항전의 신념은 점차 단단해져 갔다.
1945년 7월 2일, 허러야는 뜨거운 결의를 담은 편지 한 통을 남겼다. “저는 희망이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녀는 가족에게 담담하게 작별을 고하고 진차지[晉察冀: 산시(山西)성∙차하얼(察哈爾)성∙허베이(河北)성] 변경구로 향했으며 이름을 저우즈(周直)로 바꾸고 팔로군(八路軍) 에 입대했다.
행군 틈틈이 그녀와 전우들은 전선(戰線)극단에 배속돼 무대에 올라 혁명가를 부르고 가르쳤다. 그러나 전투가 발발하면 곧바로 야전 응급처치소로 달려가 병사들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부상 장병들을 간호했다.
그녀는 심한 출혈로 온몸이 차가워진 중상을 입은 한 병사를 마주한 적이 있다. “숙소로 제 이불을 가지러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그의 이름조차 등록하지 못했어요. 그분은 이름 없는 열사가 됐습니다…”

1940년대, 저우즈(오른쪽)와 전우들
항일 전쟁 기간 중국에서는 3500만 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380만 명의 장병이 전장에서 피를 흘렸다. 그들은 피와 목숨을 바쳐, 결코 굴복하지 않는 투쟁으로 전쟁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항복 소식은 삽시간에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마을마다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저우즈도 환호하는 인파 속에 있었다. “그렇게 기뻐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저우즈는 군에서 전역해 칭다오(靑島)로 향했고 칭다오 유아사범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부임했다.
루거우차오의 포성 속에서“망국의 백성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소녀는, 남은 생애를 조국의 교육 사업에 바쳤다.

1950년대, 저우즈의 가족사진
“군에 입대했을 때 마오 주석께서 ‘번영하고 부강한 나라’를 말씀하셨어요. 그때부터 늘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모습이 주석께서 말씀하신 ‘번영부강’일까 하고요.”
“올해로 99세입니다. 4대가 함께 살고, 먹고 입는 것도 넉넉합니다. 시안(西安)도 가 봤고, 우한(武漢)도 가 봤어요. 홍콩과 마카오에도 다녀왔습니다. 모두 참 좋은 곳이에요. 희생된 전우들도 이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의 이 삶이 얼마나 힘겹게 얻어진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저우즈는 말한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수많은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89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그날을 잊지 않았다. 루거우차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고, 완핑청 성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해 준다.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를 소중히 하라.

1937. 7. 7 — 2026. 7. 7
선열을 추모하며, 우리 스스로 강해지리라.
감수: 하정미
원문 출처: 인민망/자료 및 사진 출처: 인민일보 위챗 공식계정
출처: 인민망 한국어판 | (Web editor: 申玉环, 李正)독자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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