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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5월14일 

[추억의 인물] 중국 1세대 여신 스타 ‘왕단봉’…빛나는 인생길

인민망 한국어판 kr@people.cn
14:59, May 11, 2018
[추억의 인물] 중국 1세대 여신 스타 ‘왕단봉’…빛나는 인생길

[인민망 한국어판 5월 11일] 1924년 8월 23일 출생, 16세 당시 영화계 입문, 영화계 종사 40년, 스크린에서 60여 개의 예술형태 소화, 유명 OST ‘소연자(小燕子: 제비)’, 60여 년의 세월 동안 중국인들에게 불려오는 고전 동요. 2018년 5월 2일 새벽 4시 전설과도 같은 일생을 살아온 중국 유명 여배우 왕단펑(왕단봉)이 화둥병원에서 향년 9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만약 중국 영화를 하나의 전기(傳奇)로 본다면 왕단펑은 전기 중의 전기라 할 수 있다. 그녀는 1962년 신중국이 처음으로 선발한 ‘22대 영화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리틀 저우쉬안(周璇, 주선)’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가(家)’, ‘해혼(海魂)’, ‘여이발사(女理發師)’, ‘도화선(桃花扇)’, ‘호사일기(護士日記)’ 등이 있다. 그녀는 2013년 제14회 중국영화연기예술학회 봉황장(鳳凰獎)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했고 2017년 제20회 상하이(上海, 상해) 국제영화제에서 중국어 영화 부문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왕단펑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미국에 정착해 살던 장아이링(張愛玲, 장애령)은 왕단펑의 아름다움에 대해 “왕단펑을 보면 닝보(寧波, 영파) 사람들이 확실히 예쁘긴 하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친구에게 보내기도 했다. 많은 시간, 지구 반대편까지 오며 많은 미녀들을 만나봤지만 장아링은 상하이 레드카펫 위에서 본 왕단펑의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다.

왕단펑은 현재 사회 미녀 조건에도 부합하는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연예계 가정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지방극 좋아해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지방극을 보러 다니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다. 나이가 들고 상하이 영화계에 스타가 많이 출세한 시대에 그녀는 자신의 집에 저우쉬안, 후뎨(胡蝶, 호접), 롼링위(阮玲玉, 완령옥) 등 스타들의 포스터 및 사진들을 붙여 놓고 그녀들처럼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왕단펑의 꿈은 현실이 됐다. 이웃집에 사는 영화배우 수리쥐안(舒麗娟, 서려연)은 그녀가 영화 감상을 즐기는 것을 알고 영화 촬영장을 구경시켜줬고 현장에서 감독의 눈에 들어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그녀는 스크린 앞에서 빛이 났고 빠르게 ‘신어광곡(新漁光曲)’ 주인공 역을 따냈다. 극 중 그녀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순순하며, 노동력 착취를 당하지만 외모는 또 아름다운 한 어민의 딸 역을 맡았다. 비록 리메이크된 고전 작품이었지만 왕단펑의 연기력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후 그녀는 많은 작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다른 상하이 여성 스타들과는 다르게 열심히 일했고 흔한 스캔들 기사 한 번 없었다. 그런 그녀의 노력은 많은 매체로부터 그녀를 존중하는 글을 쓰게 했으며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많은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48년 왕단펑은 홍콩에서 ‘경루한(瓊樓恨)’ 등 영화 6편의 주인공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주로 동남아 영화팬들이 많았고 그녀의 영향력은 미주 차이나타운까지 미쳤다. 홍콩에서 계속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지만 그녀는 신중국 건립 후 돌연 중국 상하이로 돌아왔고 약혼자 류허칭(柳和淸)과 혼인했다. 왕단펑은 홍콩에서 이룩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하이로 돌아왔다. 왕단펑과의 작별은 많은 홍콩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당시 홍콩 언론에서는 그녀의 상하이 결혼식을 대서특필했다.

왕단펑은 연기 스타일을 바꿔왔다. 1957년 영화 ‘호사일기’, 1962년 ‘여이발사’ 등 왕단펑은 영화 속에서 중국인들의 새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1961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주은래) 총리가 제기하여 선발한 ‘중국 영화계 스타’에 21명의 다른 배우들과 함께 선정됐다. 그녀는 ‘신중국 인민배우’, ‘22대 영화배우’로 선정됐다.

세월은 흘렀지만 왕단펑은 활발히 활동했다. 그녀는 80년대 초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고 16세부터 60세까지 도전을 이어간 셈이다.

왕단펑은 은퇴 후에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그녀는 캐나다로 건너가 민국 시기 대표 배우 후뎨를 만났고 이후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채식 요리 전문점을 열었다. 홍콩에는 그녀의 사업체와 옛 스타 친구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있다.

홍콩에서 왕단펑은 홍콩과 본토의 영화 및 문화계 교류와 발전에 다년간 힘썼다. 만년의 왕단펑은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살았다.

작년 상하이 영화제 측은 다년간 활동을 멈췄던 그녀를 초대했고 많은 팬들은 뜻밖의 스타와의 만남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그녀가 영화계를 위해 애쓰고 땀 흘렸던 공로를 인정받아 명실상부의 중국어 영화 부문 공로상을 수상했다.

왕단펑은 사람들에게 한 명의 유명 스타의 빛나는 스토리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한 위대한 여성, 성실하게 노력하여 발자취를 남긴 여성, 자신을 사랑하고 지킬 줄 아는 인물 등으로 기억되고 있다. (번역: 은진호)

원문 출처: 인민일보/신민만보 위챗 공식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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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민망 한국어판  |  (Web editor: 吴三叶,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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