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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4월17일 

[역사의 베일 벗기기] 조조 무덤 지상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사료 기록이 잘못됐을까?

인민망 한국어판 kr@people.cn
11:16, April 02, 2018

[인민망 한국어판 4월 2일] 조조(曹操) 무덤에 관해서는 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얼마 전 조조의 무덤에서 발굴된 새로운 사실이 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10년 전 안양(安陽)에서 발견된 조조 고릉(高陵)이 역사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조조(曹操) 무덤 묘도(墓道)/ TV 작품 속의 조조(曹操) 모습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자료 사진)

이번 발굴에서 조조 고릉 능원 및 관련 건축물 유적의 존재를 확인한 것에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발굴 브리핑에서는 이번 고고 발굴에서 “고릉 능원 내외부의 분토 기반, 천도통로, 동부 건축물과 남부 건축물 등 다섯 부분을 포함한 주요 구조를 밝혀냈다”고 전했다.

이번 발굴을 주관한 허난(河南, 하남)성 문화재고고연구원 저우리강(周立剛) 연구원은 고릉 능원 외곽의 (분토) 기반 동쪽에 있는 기둥들로 판단하면 능원 내 천도통로 한쪽의 건축물만 해도 부지면적이 700여 평방미터에 달하고, 양쪽의 부지면적은 1000평방미터가 넘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조조(曹操) 무덤의 일부 건축물 잔해. 허난(河南, 하남)성 문화재고고연구원 (사진 출처: SNS)

주변의 다른 주춧돌이 있는 많은 건축물까지 합치면 고릉 능원은 역사적으로 규모가 방대했던 지상 건축군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런 발굴 결과가 조조 무덤이 나무를 심지 말고 봉분도 하지 말고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라고 명령했다는 전설과 일치하는 지의 여부다.

검소한 장례는 민간의 전설과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삼국지에는 조조가 생전에 자신이 죽은 후에 척박한 곳을 자신의 장지로 골라 서문표(西門豹) 사당 이서의 언덕에 묻고 봉분을 하지 말고 나무도 심지 말며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기를 주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릉 능원 평면도. 허난(河南, 하남)성 문화재고고연구원 (사진 출처: SNS)

삼국지의 기록이 틀린 것일까? 저우리강 연구원은 많은 사람들이 봉분을 하지 말고 나무도 심지 말라고 한 것이 조조가 주장한 것이었음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우리강 연구원은 계승자인 조비(曹丕)가 조조의 유지를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은 역사적으로도 나타난 적이 있다면서 “서한(西漢)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다. 황제가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라고 요구했지만 초기 발굴에서 보면 결코 검소한 장례가 아니었다”고 소개했다.

조조(曹操) 무덤 능원에서 출토된 와당. 허난(河南, 하남)성 문화재고고연구원 (사진 출처: SNS)

판웨이빈(潘偉斌) 발굴팀장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봉분을 하지 말고 나무를 심지 말라는 진짜 의미는 땅 위에 봉토, 즉 무덤을 만들지 말고 돌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것으로 지상 건축물과는 무관하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2010년의 한 문장에서는 이전에 조조 고릉의 발굴 ‘묘실 상부에 봉토가 보이지 않아 조조가 명령한 봉분을 하지 말고 나무를 심지 말라고 영을 내렸다는 것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어떤 주장으로 보더라도 현재 조조 고릉의 발굴 결과와 사료 기록은 충돌되는 부분이 없다.

조조(曹操) 무덤 네 모서리의 피라미드형 묘정(墓頂) (사진 출처: 중국신문방)

이번 발굴 브리핑에서는 또 조조 고릉 능원이 의도적으로 철거됐다면서 “전체 능원에서 드러난 담과 관련 건축물은 모두 분토 기반과 주춧돌 부분만 남아 있다. 지상 이상 부분은 전부 남아 있지 않고, 분토 기반과 주춧돌 표면이 평평하다”라고 밝혔다.

저우리강 연구원은 이런 현상은 능원이 자연적으로 폐기되었거나 보복에 의해 파기된 것이 아니라 조비의 ‘능원 철거’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임을 반영한다고 추측했다.

조비는 왜 능원을 철거했을까?

조조(曹操) 무덤 천도통로 항공촬영(북쪽에서 남쪽). 허난(河南, 하남)성 물물고고연구원 (사진 출처: SNS)

<중국고대능침제도사 연구>에서는 주된 원인은 장래에 정권이 교체된 후 능묘가 발굴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아버지 조조와 마찬가지로 조비도 죽기 전에 검소한 장례를 치르라는 영을 내렸다. 물론 그는 조조보다 더 명확하게 봉분을 하지 말고 나무도 심지 말 것이며 침전, 능원을 보호하기 위해 세우는 마을(園邑), 천도통로도 세우지 말라고 요구했다.

저우리강 연구원은 조조 무덤이 발굴되기 전까지 동한(東漢) 제후와 왕들의 능원 유적이 발견된 적이 없으므로 “이번 조조 고릉 능원의 발견은 중요하며,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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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민망 한국어판  |  (Web editor: 李正,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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