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 청두(成都) 피현(郫縣)에 사는 제대한 특수경찰인 언보(恩波) 씨는 중국 무술종목의 하나인 산다(散打)팀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7세에서 16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며, 장족(藏族), 강족(羌族), 한족 등 출신 지역도 제각각 다르다. 그들 중에는 고아도 있고 극빈가정의 자녀도 있으며, 언보 씨는 이들에게 무료로 산다를 가르치고 있다.
스팡(什邡)의 총각 양저우(楊洲, 24세)는 2008년 원촨(汶川) 지진 때 건물의 잔해에 묻혀 하반신 절단 수술을 받았다. 윈난(雲南)의 아가씨 쉬옌(徐豔, 26세)은 병으로 인해 하반신 절단이 된 후 남편과 이혼하고 5살난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모 인터넷 카페에서 우연히 친분을 맺게 되었고, 몇 달에 걸친 채팅 끝에 2014년 크리스마스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올해 50살 된 후펑롄(胡鳳連) 씨는 태어나서 6개월이 되었을 때 화상을 입어 무릎으로만 걸어다닐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신체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의지만은 굳건하다. 남편이 집을 나간 후 무릎으로 채소 재배에 양돈, 천을 짜고 자수도 놓으며 심지어 황무지 산을 개간하기까지, 딸이 2004년 시집갈 때까지 혼자서 딸아이를 길렀다.
거동이 불편해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는 많은 독거노인들의 사정을 접한 자원봉사자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공연하기로 결정했고 그들의 공연이 이들 노인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감동을 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저장(浙江) 우이(武義)에 사는 싱글맘 안리샤(安麗霞, 38)는 일년째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수차례 화학요법으로 치료받은 후 그녀의 곱고 긴 검은 머리카락은 거의 빠져버렸자 안리샤는 오히려 머리를 빡빡 밀고 사진 촬영을 했다. 안리샤는 평소 집안일에 중학생 아들 돌보는 일까지 게다가 자신의 항암치료까지 이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한다.
안후이(安徽) 류안(劉安)에서 태어난 후후이위안(胡卉媛) 씨는 올해 22세이다. 7개월이 안 된 미숙아로 태어난 그녀는 10개월째가 되던 달에 뇌성마비 확진을 받았고 두뇌와 다리를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는 전혀 움직일 수 없다. 그녀의 부모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고 현재까지 그녀를 돌보고 있다.
후베이(湖北)성 중샹(鐘祥)시 스파이(石牌)진의 농민 위슈화(余秀華) 씨는 1976년 출생으로 16년 동안 시를 써오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소박하지만 강렬한 감정이 묻어나 최근 누리꾼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고 작품 속의 타고난 문장력과 그녀의 신체적 장애는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시안(西安)시 창안(長安)구의 리샹팅(李香亭) 할머니는 올해 93세다. 그러나 리 할머니는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귀와 눈이 여전히 밝으며, 건강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리 할머니는 아이들의 꽃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100켤레의 신발을 완성해 주변의 친지와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장융펑(蔣永峰) 씨의 조혈모세포(골수)를 채취해 런던으로 수송하여 영국 남아의 생명을 극적으로 구해냈다.장융펑 씨는 상하이시 진산(金山)구 재정국에 근무하는 직원으로 2013년 중국 조혈모세포 기증자D/B에 자원 가입했다. 2014년 영국의 환아와 조직적합성 검사에 성공한 후 가족들의 이해와 성원 하에 조혈모세포를 기증해 생명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시의 쑹푸유(宋富有) 할아버지는 올해 69세이다. 그의 아내는 2003년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할머니가 햇볕을 쬐는 것을 좋아하는데 할아버지는 큰 목판을 연결해 길이 약 10m , 폭 1m 정도의 경사로를 집안의 1m 높이의 계단에 설치했다.할아버지네 마을의 이웃들은 모두 이 경사로를 보고 ‘사랑의 경사로’라고 부른다.
리칭중(李淸中) 씨와 돤수화(段淑花) 씨는 허베이(北省)성 청더(承德)시에 거주하는 토박이 농민이다. 2009년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아들 리카이(李凱)가 요독증 판정을 받았고 2014년 4월 결혼한 지 2개월 된 딸 리민(李敏)도 신부전증을 앓아 요독증 말기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리 씨와 돤 씨 가정에 모아둔 돈은 바닥이 나고 엄청난 빚까지 떠안게 되었다.
산둥성(山東省) 지난(濟南)군구 종합병원에는 리위링(李雨鈴, 2세 10개월)이라고 불리는 꼬마 ‘베테랑 간병사’가 있다. 그녀의 오빠 리첸(李騫, 13세)이 8살 때부터 백혈병을 앓았는데 가난한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치료를 계속 하기로 결정했다. 부모는 리첸과 골수가 일치하는 아이의 출산을 희망했고, 이런 기대 속에서 리위링이 탄생해 줄곧 오빠가 있는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2014년 1월 27일, ‘헤이허하오8연대(黑河好八連)’ 연대장 장수후이(張書揮)와 부인 우웨이웨이(吳薇薇)는 영하 30도의 엄동설한에 보초를 서는 군인들을 위해 훈훈한 마음을 담은 자오쯔(餃子, 만두)를 나눠주었다.
2월 15일, 67세의 양수이란(楊水蘭) 할머니는 쿤밍(昆明)의 담수호 뎬츠(滇池) 주변에서 7년간 장애 갈매기들을 기르고 있다. 두 척의 철선에 기거하는 할머니는 빈 병을 주워 팔아 번 돈과 마을에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생계를 연명하고 있다.
28세의 판위(潘雨)는 선천성 농아이고 그녀와 동갑내기인 남편은 후천성 농아이다. 이들 부부는 현재 하얼빈(哈爾濱)의 쓰촨(四川)식 훠궈(火鍋, 샤브샤브)점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펑(峰∙남)이는 2010년 11월 18일 후베이(湖北)성 바둥(巴東)현 마사핑(麻沙坪) 마을에서 태어났다. 2013년 1월 25일 펑이는 농업용 차량에 치여 요로를 다치고 두 다리를 절단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펑이는 ‘작은 사과’라는 유행가가 나오면 음악에 맞춰 팔을 흔들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을 추었다.
9살의 안후이(安徽) 푸양(阜陽) 소녀 왕리잉(王利穎)은 작년 6월 급성 임파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최근 그녀는 삶의 희망에 가슴 부풀어 있다. 그녀에게 골수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조직적합성항원(HLA) 검사에서 그녀와 HLA가 일치해 그녀에게 조혈간세포를 기증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동생 왕쥔제(王俊傑)이다.
2월 2일 새벽 5시, 베이징(北京) 유이(友誼)병원의 의료진은 수술 전에 장기를 기증할 7세의 여자아이 징징(靚靚)에게 단체 묵념을 하고 있다. 징징은 악성 기형암으로 투병하다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이 아이의 심장은 당일 우한(武漢)의 4세 남아에게 기증되었고, 각막은 베이징대학 제3병원에 잠시 보관 중이다.
그녀의 이름은 위샤오난(郁曉楠)으로 피아노 신동이라고 불린다. 9살의 어린 소녀는 까맣고 아름다운 눈망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오색찬란한 세계를 볼 수 없다. 그녀는 다만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 흑백의 색깔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녀의 민첩한 두 손으로 누르는 피아노 건반은 감동적인 멜로디를 선사한다.
신신(馨馨)은 칭다오(靑島) 서해안신구에 사는 장애인 소녀다. 어렸을 때 소뇌위축증을 앓고 난 후 현재는 거의 걸을 수 없는 상태다. 11살 등교할 때부터 매주 주말과 방학 때마다 칭다오 버스 기사들은 돌아가며 신신을 데리고 나가 놀아주었다. 또한 자주 신신의 집에 가 직접 마사지를 해주며 신신의 건강이 회복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윈난(雲南)에서 온 샤오이(小義, 가명)는 2살 때 유전성 피지선 종양 판정을 받았고, 4살 때 엄마가 가출한 아픈 사연이 있는 아이다. 그런데 샤오이가 그린 가족사진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은 엄마가 집으로 돌아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다시 모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구이저우(貴州)성 한 마을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우랑씨는 동족 출신으로 올해 39세이다. 1996년부터 상구이리초등학교에서 대리 수업을 맡은 이래 오늘날까지 16년이나 되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전근한 후에도 그는 이 초등학교에 남기로 결정했다. 혼자서 1~2학년의 수업과 취학 전 아동반의 수업을 맡고 있으며, 산간 마을에 사는 수십 명의 아이들을 지키고 있다.
대학입시를 82일 남겨 두고 쓰촨(四川)의 뇌성마비 여고생 왕징단(王景丹)은 시험 준비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왕징단의 어머니 황후이리(黃惠鸝) 씨는 일을 그만 두고 5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딸의 학업을 돕고 있다.
지린(吉林)대학 소속 병원 소아병동에는 8살 된 백혈병 어린이 류쯔시(劉梓曦)의 경찰꿈을 이뤄주기 위해 사랑의 천사 8명이 모였다. 류쯔시는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8살 난 어린이로 경찰이 되어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꿈이다. 류쯔시의 꿈이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진 뒤 지린시 경찰 측의 지원으로 류쯔시에게 딱 맞는 경찰복을 제작해 병원으로 보냈다.
허난(河南) 정저우(鄭州) 사범대학교의 무용 연습실에서 평균 나이 19세의 청각장애 대학생 23명이 무용 리허설 연습이 한창이다. 그들은 무용을 접한 지 1~2년 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 무용수들로 ‘청각장애 무용팀’을 결성해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무용을 통해 모든 관중의 인정을 받고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은 그들의 희망이다.
셰페이(謝佩)는 장시(江西) 재정경제대학교의 졸업생으로 2013년 결장암 만기 판정을 받았다. 암 판정 이후, 반년 동안 셰페이는 2번에 걸친 수술과 9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암세포가 다시 확산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셰페이는 가족들 몰래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1월 27일, 칭하이 위수(玉樹)지역 선천성 척추측만증 환우 11명이 베이징에 도착했다. 서부아동구제재단 관계자들의 인솔 하에 베이징 차오양병원(朝陽醫院)에 도착한 이들은 관련 검사 및 치료를 받았다.
이 아이는 ‘기적의 아기’라 불리는 자오핑안(趙平安)이다. 작년 3월 18일 샤먼(廈門) 하이창(海滄)의 자오쑹루(角嵩路)와 마칭루(馬青路)의 교차로 입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그의 부모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엄마의 몸에서 튕겨져 나오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장허산(張鶴珊, 61세) 씨는 허베이(河北)성 푸닝(撫寧)현의 한 산골짜기에 사는 평범한 농민이다. 1978년부터 장허산 씨는 37년째 인근 만리장성을 지켜왔다. 37년 동안 장허산 씨가 만리장성을 오고 간 거리만해도 지구 2바퀴는 넘었으며 헤져서 버린 신발만해도 200쌍 이상이었다.
왕구이전(王桂珍, 62세)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농촌의 아주머니지만 남편과 함께 20여 마리의 뱀을 키우고 있다. 2008년 ‘농촌 아주머니와 뱀’이라는 제목으로 신문화보(新文化報)에 소개가 되면서 뱀을 기르는 여성으로 스타가 되었고 많은 방송사가 그녀의 집을 방문해 취재하기도 했다. 취재당시, 이부부는 이뱀들은 ‘뱀아이’라고 불렀다.
톈진(天津)시 제1중심병원에 티정(体政, 5세)의 2차 가족간 간이식 수술이 진행되었다. 이 어린이 환자는 2009년 진행한 모체 간이식 수술 후 담도합병증으로 고열이 계속 이어졌다. 결국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나서 티정에게 본인 간의 40%를 이식하게 된 것이다.
올해 58세의 왕쭝슈(王宗秀) 씨는 후베이 이창(宜昌点) 뎬쥐(點軍)구 스옌옌(石堰) 마을의 유일한 의사다. 총 590가구, 1932명의 건강을 혼자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매일 진료를 받는 사람은 50~60명 이상이며 바쁜 날은 밥도 먹지 못한다. 왕쭝슈 씨는 이렇게 30여 년을 하루 같이 마을을 지켜왔다.
외국인 요리사들이 현장에서 직접 만든 이탈리아 요리로 생일을 보냈다. 구이저우(貴州)성 퉁런(銅仁)시 장커우(江口)현 윈서(雲舍)마을에 사는 농민 정진차이(曾金釵) 씨는 92세 시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인터넷 구매로 5000위안을 들여 이탈리아 만찬을 선물했다. 이에 판매회사에서는 요리사들을 파견해 현장에서 직접 요리하도록 해주었다.
중졸 정도의 지식수준을 가진 포양(鄱陽)현의 농민 주칭화(朱清華) 씨는 부인이 앓고 있는 신장 결석을 치료하기 위해 직접 발명을 했다. 그가 발명한 ‘결석 배출 침대’는 부인의 통증을 해소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실용 신형 특허까지 받았다.
한 고등학교 교사 자오(趙) 씨의 핸드폰으로 전송된 남편의 문자다. 문자 내용대로 자오 씨는 쇼파 뒤의 건포도를 찾았다. 이처럼 며칠 간격으로 남편은 그녀에게 집안 곳곳에 숨겨둔 간식이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 자오 씨의 남편 인윈펑(尹雲峰) 씨는 시짱(西藏) 주둔부대 군인이다.
간쑤(甘肅) 핑량(平涼)의 원(文)선생님이 조수 2명과 ‘유기견의 집’에서 유기견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원선생님은 올해 50세로 유기견들을 보살핀지도 어느덧 3년이 흘렀다. 매년 약8만 위안(한화 약 1400만 원)을 지출해가며 유기견을 돌보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본인의 살림살이까지 아껴 ‘유기견의 집’을 유지하고 있다.
‘이완몐(一碗面:면 요리 한 그릇)’이라는 이름의 위찬(豫殘)연맹(허난성 장애인연맹) 나눔 식당이 허난 정저우시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사회에 보답하기 위해 위찬연맹의 위안하이쥔(袁海军)과 몇몇 같은 뜻을 가진 공익 인사들이 함께 이 나눔 식당을 열었다. 칼국수를 무료로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반찬 가격도 시장가보다 10%~20% 저렴하다.
올해 59세인 짱얼쥔(臧爾軍) 씨는 구이저우(貴州) 차오하이(草海)국가급자연보호구 후예린(胡葉林)관리센터의 관리보호원이다. 1997년부터 이 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 이 곳을 거의 떠나본 적이 없다. 그는 매일 6시경에 일어나 바다로 나가 당일의 조류 활동 현황을 기록하고, 먹이를 준 뒤 보호구 내에 설치된 불법 어망을 제거한다.
산둥(山東)성 88세의 천자오란(陳兆蘭) 할머니는 20년을 하루 같이 반신불수로 침대에만 누워 있는 며느리를 돌봐왔다. 28년 전 할머니의 큰 아들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설상가상으로 그 후 8년 뒤에 며느리 쑹화(宋花) 씨도 뇌혈전으로 마비 증세가 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천 할머니는 매일 며느리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쉬야팅(徐雅婷)이 걷거나 말을 하지 않는다면 4살짜리 동갑 아이들과 다름 없는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희귀 유전 질환인 이염성 백질 영양장애(MLD: Metachromatic leukodystrophy)를 앓고 있는 이 아이는 이미 혼자 걷지 못하는 상태이며 검사 결과, 지능도 1살 수준으로 이미 퇴화되고 있어 행동 능력이나 지능 지수도 지속적으로 퇴화 중이다.
바오베이후이자’는 2007년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에서 개설했는데 초창기에는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13만 명의 자원봉사자로 확대되었고 또한 전국 각지에 퍼져 있다. 현재 ‘아이를 찾는 가족’과 ‘가족을 찾는 아이’의 신고 건수가 이미 3만여 건이 등록되어 있고 또한 매일마다 많은 접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유치원 교사인 리샤(李霞)는 암 투병 중이지만, 1년에 300여 일을 교실에서 링거로 생명을 유지하며 교단에서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92년 광저우(廣州)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리샤는 고향으로 돌아와 전 현(縣)에서 처음으로 ‘베이춘(北村) 유치원’을 개원했다. 마을 옆의 작은 하천이 큰 비가 내리면 불어 넘쳐 늘 아이들의 등원을 막곤 했다.
70년 전 오늘 이 노부부는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옌정밍(閻正明) 할아버지에게는 부인 저우쑤칭(周素清)에게 결혼식을 올려주지 못한 마음의 빚이 있었다. 70년 후 오늘, 옌정밍 할아버지는 드디어 부인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 주고 결혼 반지를 교환하며 마음의 빚을 갚게 되었다. 94세의 옌정밍 할아버지와 90세의 저우쑤칭 할머니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13살난 위안페이쿤(袁飛坤)은 5살 때 ‘진행성 근이영양증’이라는 병을 진단 받았다. 이 병은 치료하기가 어렵고 치료비도 비싸기 때문에 오로지 아버지가 외지에 나가 버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 가족에게 치료는 꿈도 꿀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어머니 랴오젠슈(廖儉秀) 혼자서 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빼빼 마른 몸, 부어 오른 다리, 심지어 호흡곤란 증세까지 보이는 류줘위(劉卓禹) 군이 군복을 입고 소방대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항저우(杭州)시 샤오이푸(邵逸夫) 병원의 20살 류줘위 군은 올해 백혈병이 갑자기 악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딱 한 번만이라도 군복을 입고 군인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소원을 이뤘다.
바중(巴中)시 핑창(平昌)현 쓰탄(澌灘)향의 27세 청년 허위(何煜)는 요독증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모성애는 물과 같고, 부성애는 산과 같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버지 허지더(何吉德)와 어머니 리궈충(李國瓊)은 병든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앞다투어 본인의 신장을 기증하고자 했다. 마침내 어머니가 아들과 조직형이 일치해 본인의 신장을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뤄톈썬(駱田森)은 10년 전 소아마비를 앓았다. 당시 부모는 뤄톈썬을 데리고 각지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20여 만 위안을 치료비로 썼지만 별 차도가 없없다. 2013년에는 또 뤄톈썬에게 폐 천공이 찾아와 큰 빚까지 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빚 상환을 위해 부모는 외지로 나가 일을 하게 되었고 뤄톈썬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올해 고 3 학생인 마쓰위(19세)는 선천적 발육이상으로 오로지 휠체어에 의지한 채 움직일 수 있다.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그는 인터넷 라디오를 이용해 사연을 듣고, 문제를 분석한 후 해결까지 해줌으로써 다른 사람을 돕게 되자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긍정에너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10살, 같은 또래 친구들과 학교에서 한창 뛰어놀고 공부해야 할 나이다. 하지만 저장(浙江)에 사는 샤오하오(小豪, 가명)는 할머니와 삼촌이 번갈아 가며 돌봐야 하며, 외출할 때는 아버지가 특별히 제작한 ‘철장차’를 반드시 타야한다.
13살의 우멍친은 장시에 사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다. 3년 전 우멍친의 어머니는 백혈병을 앓아 원래도 어려웠던 가정형편이 더욱 힘들어졌고 큰 빚까지 지게 되었다. 결국 병도 고치지 못하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이후 아버지는 빚 상환과 세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소도시로 나와 매일 돈을 버는 일에 전념했다. 따라서 어린 두 여동생을 돌보는 일은 맏이 우멍친의 몫이었다.
세계 간호사의 날을 맞아 무장경찰 쓰촨(四川) 병원 중환자실(ICU)을 취재했다. 이 곳의 간호사들은 하루 종일 세심하고 꼼꼼하게 환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 곳에서 생명의 기적을 경험했고 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그런 그녀들이야 말로 무장경찰 쓰촨병원 중환자실의 수호천사들이 아닐까?
후베이(湖北)성 언스(恩施)주 기차역에 총 4개의 열차칸으로 이루어진 2층짜리 ‘무지개 열차’ 한 대가 서있다. 이 열차에는 상주하는 7명의 의사와 열차 직원들이 중국의 빈곤 산간지역을 돌아다니며 현지 백내장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힘쓰고 있다. 5월 10일까지 이 곳에서 진료를 받은 백내장 환자는 300명에 달한다.
류루이링(49세)은 타이위안시 난하이얼 주민센터 센터장으로 주민센터에서 일한지도 벌써 12년이나 흘렀다. 매일 아침 그녀는 남들보다 일찍 출근한다. 출근 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동네의 위생 상태를 순찰하고 안전 상의 취약점을 일일이 조사한다. 또한 이웃간의 불화를 중재하는 것도 일상 업무 중 하나이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뜨고 아버지마저 정신이상자가 된 데다 언니는 외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광시(廣西) 두안(都安) 요족(瑤族)자치현 라례(拉烈)현 충예(崇業)촌 룽허우(弄後)마을의 12세 여자아이 란샤오핑(藍曉萍)은 가난과 질병이 한꺼번에 닥친 집안을 책임지는 소녀가장이다.
올해 78세로 교단에서 퇴직한 왕바오구이 씨는 지난 37년간 이 일을 꾸준히 해왔다. 둥위좡 마을은 1700여 명이 살고 있는데, 높고 깊은 산세에 교통이 불편해 주민들이 분산되어 살아 신문이나 우편물 등을 받아보기가 어렵다. 1978년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초등학교 교사였던 왕 씨는 마을 위원회를 찾아 자신이 이 일을 하겠다고 자원했다.
산둥 한 학교의 고3 교실 칠판 앞에 ‘가오카오 D-33’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지금, 교실 뒤쪽 두 번째 빈자리가 눈길을 끈다. 이 자리는 쉬펑(徐朋)의 자리이다. 3월 16일 19살인 쉬펑은 산둥성 병원에서 백혈병진단을 받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쉬펑이 학교를 떠나 병원에 들어간 그때부터 선생님과 학생들은 모두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최근 과일을 운반하던 화물차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고속도로 변에 부딪히면서 차체가 완전히 망가지고 두 명의 운전자가 운전석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중 한 사람의 반신이 차체에 끼면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현장 구조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구조가 힘들어지자 윈난(雲南) 교통 경찰 한 명은 부상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3시간 동안 자신의 몸으로 부상자를 지탱했다.
3월 20일 류더화(劉德華, 유덕화) 주연의 ‘유아 인신매매’를 소재로 한 영화 ‘실고(失孤, Lost and Love, 2015)’가 개봉했다. 류더화는 농민 궈강탕 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아들을 찾아나선 실화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사람들은 이 영화의 실제 이야기에 얼마나 더 슬픈 이야기가 담겼는지 모른다.
아침 6시경 겨우 3살 밖에 되지 않은 웨이캉후(韋康虎)가 광시 의과대학 제1부속 병원에 누워 의료진에게 혈액검사를 받고 있다. 일 년 동안 벌인 백혈병과의 사투는 그의 유년기 시절을 대다수 차지하고 있다. 같은 시각, 원래는 대입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17살의 형 웨이캉런은 동생 치료에 드는 거액의 병원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멀리 광둥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적정(寂靜) 법사는 올해 50세로 베이징 우승교사(佑勝教寺)의 스님이다. 그는 2013년 7월 11일 베이징을 출발해 불교 4대 명산들을 향해 3보 1배로 전진해왔다. 전코스는 4500km지만 그는 최소 만여km를 걸었다.
6월 9일 새벽 1시경, 구이저우(貴州) 쭌이(遵义) 7층 건물에 사는 지위안쿠이(姬遠奎) 부부가 갑자기 난 쿵 소리에 잠이 깼다. 두 사람은 집의 벽이 무너지면서 회색 먼지를 일으킨 것을 보고 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붕괴의 조짐을 느낀 부부는 밖으로 나가 집집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전했다.
산둥(山東)성 랴오청(聊城)시 허하이(賀海) 마을에 이산후이(衣善輝)라는 9살된 남자아이와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증을 앓는 아버지 이헝윈(衣恒雲) 씨가 살고 있다. 두 사람으로 구성된 이 가정은 서로를 보살피고 의지해가며 살아가고 있다.
창춘(長春) 출신인 싱량(邢亮, 33세)은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결코 운명에 굴복하지 않은 ‘진짜 사나이’다.
새벽 5시, 간쑤(甘肅) 핑량(平凉) 무장경찰 8670부대 병원, 장즈롄(姜致蓮) 씨가 드디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간만에 몰아친 비로 산조차 희미하게 보이는 지금, 부대 병원의 기상 알람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7월 6일, 허난성 화(滑)현 자오후(焦虎)진 인뎬춘(陰店村)의 주민 수백 명과 학생, 사회 각계각층의 평화인사들은 ‘인뎬춘 중국 침략 일본군 대학살 희생자 기념비 제막식’을 성대히 열어 일본군의 대학살로 무고하게 희생 당한 이들의 넋을 기렸다.
어머니에게 더 많은 곳을 보여주기 위해 40세에 공무원 직업을 그만 두고, 돈이 없으면 현지에서 폐지를 파는 일 등의 일용직으로 전국을 일주하는 올해 65세 청두(成都) 사람 천루쉐(陳錄雪) 씨의 이야기다.
68세인 진춘셰(金春燮) 씨는 지린(吉林)성 왕칭(汪清)현의 은퇴한 당원으로 지난 10년 동안 자금 1300여만 위안(23억 4천만 원)을 조달해 혁명선열기념비 77개를 세웠으며, 왕칭현 항일전쟁기념관과 샤오왕칭항일유격근거지 등 홍색교육기지도 여러 곳 세웠다.
반신불수 장애인인 ‘다터우(大頭)’는 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외지로 떠나버렸다. 원래 보모로 일했던 좡모리(庄茉莉) 씨는 그 이후부터 날품팔이로 고물을 주우면서 이 장애아를 길렀고, 어느덧 3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81세의 좡 할머니는 친자식과의 생활도 포기한 채 ‘다터우’를 돌보고 있다. 그녀에게 ‘다터우’는 이미 자식과 다름없는 존재다.
7월 1일 백혈병 자녀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안후이(安徽) 각지에서 온 11명의 아빠들이 머리를 밀고, 길거리에서 물을 팔며 치료비 마련에 나섰다. 최근 ‘민머리 아빠’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물을 팔아 자녀들의 치료비를 모으고 있는 이야기가 안후이 허페이(合肥) 전역에 방송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물을 구매해 선행을 베풀고 있다.
건강한 아가씨가 시각장애인을 사랑해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이런 이야기는 픽션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무멍제(穆孟傑) 씨와 차오칭샹(曹清香) 씨 부부의 픽션 같은 이야기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전 재산 백만 위안을 털어 중국 최초의 민간 맹인학교를 설립해 수백 명의 맹아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이끌어 주고 있다.
장시(江西) 지수이(吉水)현의 양주빈(楊足斌)은 2012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었다. 양주빈의 아내 쉬웨롄(許月蓮)이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고 3년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끝에 양주빈의 의식 일부가 돌아왔다. 부부는 고된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적이 계속되길 갈구하고 있다.
8월 19일, 광시(廣西) 룽안(隆安), 한 할머니가 손녀를 데리고 버스에서 내리다 두 사람 모두 넘어졌다. 그 순간 버스는 출발했고 아이의 왼쪽 다리가 버스 뒷바퀴에 끼이고 말았다. 긴박한 순간, 주변에 있던 100여 명의 행인이 달려들어 힘을 합쳐 버스를 들어 올렸다. 누군가는 공구를 구해와 버스 뒷바퀴에 밀어 넣었고 공간을 확보한 뒤 아이는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티베트 칭짱(靑藏)고원 내지에 위치한 나취(那曲)지구 니마(尼瑪)현은 평균 해발 4,500미터 이상으로 자연 조건이 열악해 ‘무인지경’이라고 불린다. 26세(여) 바무(巴姆)는 니마현의 우편 집배원으로 2006년부터 신문과 우편물로 가득 찬 가방을 매고 이곳 초원의 7개 마을 사이를 오가고 있다.
8월 5일 오전 10시경, 중국의과대학 부속 랴오닝(遼寧) 안산(鞍山)병원 신경외과 병실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여성 푸쥔(付君)이 소파에 앉아있고, 남자친구 천번(陳犇)이 그녀의 머리와 얼굴을 씻겨주고 있다.
8월 5일, 양수색전증으로 위급한 지난(濟南)의 한 임산부를 구조하기 위해 AB형 혈액이 급히 필요했지만 혈액창고에는 재고가 부족했다. 오후 7시경 지난 혈액보관센터는 헌혈하기 위해 온 시민들로 꽉 찼다.
8월 3일, 19년 전 충칭(重慶)에서 샴쌍둥이로 태어난 구차오(谷橋)는 당시 분리수술 후 최근 대학에 합격하자 병원을 찾아 고마움을 전했다. 1996년 10월 13일, 충칭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샴쌍둥이가 태어났다. 당일 이들 쌍둥이 형제는 신차오(新橋)병원에 입원했고 11월 11일 10시간이 넘는 분리수술에 성공했다.
충칭(重慶) 성리(勝利)로에 사는 완더순(萬德順, 79세) 할아버지는 타오화(桃花)산 공원에서 운동하다 산에서 공원으로 가는 길이 없어 성벽 가의 흙길을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올해 초 할아버지는 시민들이 산정상에 올라 운동하기 편하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8월 5일, 베이징 퉁런(同仁)병원 심혈관센터의 위안뱌오(袁彪) 주임(센터장)이 병실에서 수술 대기 중인 간쑤(甘肅)성 환(環)현 출신의 선천성 심장질환 환아를 살피고 있다.
홍콩 마리병원은 전세계 처음으로 간 두 개 동시 이식수술에 성공했다. 급성 간부전에 걸린 아버지는 급하게 간 이식을 받아야 했지만 두 딸은 간이 너무 작아 한 명의 간을 단독으로 기증할 수가 없었다.
9월 26일, 시안(西安) 의사 취톄쥔(屈鐵軍)이 무릎을 꿇고 수술 의자에 누운 9세 소녀를 수술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졌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가장 아름다운 자세'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9월 21일 오전, 다롄(大連) 스차오(石槽)의 한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던 한 남자가 심장발작으로 물에 빠지고 말았다. 구출됐을 때는 이미 호흡이 멈춰있었으며, 근처에서 웨딩 촬영을 하던 한 신부가 증상을 보고는 곧바로 무릎을 꿇어 이 낯선 남자에게 20여 분간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9월 23일,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시에 사는 후융성(胡勇勝) 씨는 불치병 환자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기꺼이 생체 임상실험에 사용하여 관련 의학연구를 돕는 것은 물론 다른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길 원했다.
9월 21일은 허쩌(菏澤)시에 사는 저우(周) 씨에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고대하던 아기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만 엄마 뱃 속의 아기가 너무 급한 나머지 병원으로 가던 중 세상에 나온 것이다.
9월 20일, 청두(成都)에 사는 왕샹(28세, 여) 씨가 두 발을 이용해 십자수를 놓는다.왕샹 씨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2008년부터 십자수를 배우기 시작해 현재는 두 발을 이용해 능숙하게 각종 십자수를 섭렵하고 있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최소 한 달, 길게는 반 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9월 15일 17시, 산시성(陝西省) 첫 모유창고가 SNS 웨이신(微信, 위챗)을 통해 모유 확보량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에 모유를 기증하겠다는 엄마들의 전화가 빗발쳤으며, 어떤 사람은 아이를 안은 채 기증하러 오기도 했다.
9월 12일은 팔 없는 펑차오(彭超)에게 의미가 남다른 날이다. 이날 부모님과 함께 등교한 펑차오는 쓰촨(四川)대학 법대의 2015년도 신입생이 되었다.펑차오는 이미 캠퍼스 스타였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그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했다. 쓰촨대학에서는 이미 기숙사 침대, 책상을 맞춤 개조해 펑차오가 발로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유리인간’은 혈우병 환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2015년, 중국 전역의 혈우병 환자는 약 10만 명에 이르렀고, 산시(陝西)에는 400명이 넘는 혈우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빈번한 출혈과 치료로 인해 정상인의 삶을 사는 것은 많은 혈우병 환자들의 꿈이 되었다.
올해 85세의 루윈정(陸雲政) 씨는 충칭시(重慶市) 첸장구(黔江區) 다핑촌(大坪村)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으로 양쪽 눈은 실명됐다. 1984년,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장펑밍(張鳳明) 씨와 남편 셰수창(謝樹昌) 씨가 노인을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루윈정 씨를 집으로 모셔와 부양했다. 이렇게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노인을 집으로 모셔오면서 특별한 가정이 탄생했다.
2015년 10월 25일 낮, 난징(南京)의 30세 가량 여성이 난징 창장(長江)대교에서 뛰어 내리려고 했다. 다리 하나는 이미 난간 밖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위기일발의 순간, 버스 한 대가 지나갔고, 예리한 기사가 이 장면을 보고는 급정거를 한 뒤 달려나가 목숨을 끊으려 한 이 여성을 죽음에서 끌어올렸다.
저장(浙江)의 마차오(馬橋)촌에 사는 성빙즈(盛秉植, 72세) 할아버지는 다리 한 쪽이 없다. 하지만 병든 아내를 정성껏 돌보아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10월 13일 기자는 최근 많은 누리꾼의 관심을 받고 있는 룽룽(龍龍)을 방문했다. 룽룽은 베이징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허리둘레가 이전보다 8cm나 줄어들어 치료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룽룽의 아버지 뉴징징(牛晶晶) 씨에 의하면 룽룽의 몸과 심리상태가 예전보다 많이 호전됐다고 한다.
10월 25일 G672 고속철 15번 칸, 승객 리샹(李翔) 씨에게 급성 심근경색증이 발병했다. 이에 소식을 들은 한 노인이 구하러 왔고, 병원과 연락해 정저우(鄭州) 동역에 도착한 뒤 직접 환자를 의료진에게 넘겨주었다. 승객의 목숨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노인은 홀연히 병원을 떠났다. 한 네티즌은 그가 저명한 심혈관 전문가인 후다이(胡大一) 씨임을 알아봤다.
10월 29일,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궁쉰후이(龔勳惠, 62세) 씨는 여윈 몸으로 소파 한쪽을 작업실 삼아 등 뒤에는 딱딱한 돗자리를 받쳐놓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진행되는 루게릭병으로 그녀의 몸은 점차 굳어가고 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안경을 껴야 볼 수 있는 두 눈뿐이다.
올해 8월 15일, 쓰촨(四川) 네이장(內江) 둥싱(東興)구 톈자(田家)진에 사는 왕시융(汪夕勇, 30세) 씨는 고압선으로 인한 화재로 전신의 91%가 화상을 입는 중상을 입었다. 의사는 직계가족의 두피를 이용한 피부이식을 권했다. 9월 24일, 남매는 아빠를 살리기 위해 본인의 두피를 이식해 주었다.
위안쥐란(袁菊蘭, 47세)은 장시(江西)성 광창(廣昌)현 헝산춘(橫山村)에 사는 평범한 여성이다. 1990년, 위안쥐란의 남편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면서 그녀와 병약한 노모 뤄진슈(駱金秀) 및 쌍둥이 아들, 딸만이 세상에 남겨졌다. 위안쥐란은 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시어머니와 자식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신혼 5개월째에 부인이 그만 중풍에 걸려 몸져누었다. 산둥(山東)에 사는 올해 84세 두위안파(杜元法) 할아버지는 병상에 있는 올해 76세 부인 저우위아이(周玉愛) 할머니를 56년째 변함없이 돌보고 있다. 주변 마을사람들은 그들의 남다른 부부애를 침이 닳도록 칭찬한다.
11월 4일, 시안(西安) 제3군의대학 신차오(新橋)병원 신경외과 뇌파검사실의 병상에서 양펑샤(楊馮霞•33세)는 아버지가 귓가에서 ‘샤브샤브’, ‘커피’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때 매우 흥분되었다. 10년 가까이 혼수상태에 있던 양펑샤가 최근 깨어났다.
산둥성 린이(臨沂)시 베이쭤취안(北左泉)촌 66세의 만전란(滿振蘭) 할머니의 모친은 임종 전 할머니에게 “오빠를 잊지 말아라”고 당부했다. 할머니는 5살때부터 할머니보다 15살 많은 오빠 만전광(滿振光)을 보살폈다. 할머니의 오빠는 몸이 굳어 혼자서 몸을 뒤집을 수도 앉을 수도 없어 먹고 마시는 것뿐 아니라 대소변도 모두 침대에서 해결했다.
2015년 11월 17일, 하얼빈(哈爾濱) 제일병원 혈액종양 임상연구소 병실 110호에서 올해 13살의 쿵더천(孔德臣, 남)은 조혈모세모 채집술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26일, 쿵더천의 부친이 급성 비림프성 백혈병 판정을 받자 병원 측은 즉시 조혈모세모 이식수술을 권했다.
충칭시(重慶市)에 거주하는 87세 샤쑤칭(夏素清) 씨는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하지만, 고집스럽게 혼자서 지내고 있다. 의사는 샤쑤칭 씨에게 매일 2시간은 걸어다닐 것을 조언했다. 그래서 65세의 아들 장화신(蔣華鑫) 씨는 매일 아침 노모를 맞이하러 본가에 갔다가 저녁에는 또 노모를 본가로 모시고 간다.
11월 11일, 후베이(湖北) 우한(武漢)시 황베이(黃陂)구 왕자허(王家河) 부근의 5개 마을이 최근 9일 동안 ‘텅 빈 마을’이 되었다. 이는 11월 3일 아침에 실종된 펑황춘(鳳凰村) 마을 주민인 황야오빈(黃耀斌, 60세)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마을 주민들이 두 팔 걷고 나섰기 때문이다.
11월 10일 아침 7시, 베이징 옌칭구(延慶區) 출신의 소녀 야팅(雅婷)의 유체가 수술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야팅의 심장, 간, 콩팥 2개, 각막이 6명의 환자에게 각각 이식됐다. 인리화(尹利華) 중국 무장경찰 종합병원 인체기관 기증 부문 담당자는 야팅이 생전에 중증 근무력증 환자였다고 밝혔다. 지난 9일 저녁 6시까지 야팅의 심장, 콩팥 2개 이식수술이 끝났으며, 간 수술은 아직 진행 중이다.
2015년 3월 30일, 안후이(安徽)에 사는 올해 23살 처녀 자오난난(趙南南) 씨와 24세 총각 선젠(沈建) 씨는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일 새벽 자오난난 씨는 악몽과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선젠 씨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하반신 불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11.11쇼핑데이’를 맞아 장미꽃과 다이아몬드 반지로 서로의 마음을 전한 부부 및 커플들이 넘쳐났는데 광시(廣西) 난닝시(南寧市) 융진촌(邕津村)에 사는 장샤오샤오(張曉曉) 씨에게는 헌혈기록이 빼곡히 적혀있는 남편의 헌혈증이 최고의 선물이다.
11월 9일 오전, 허베이(河北) 스자좡(石家庄)에 사는 30대 양즈보(楊志博) 씨는 한국의 한 백혈병 청년을 구하기 위해 공군총의원(空軍總醫院)에서 조혈 모세포를 채취 중이다. 채취실에서 양 씨의 아내가 6개월 된 딸을 안고서 그 옆을 지키고 있다.
빛이 점점 사라지며 완전한 어둠에 이르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이 어둠은 그녀를 삼키지 못했다. 초인적인 의지로 여전히 교육자로서 불우한 아동들까지 돌보고 있다. 정상인보다 뛰어난 업무 능력과 열정을 가진 그녀는 오히려 무수한 주변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있다.
아홉 살 때 그는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어 평생 지팡이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됐다. 17년 전, 샤먼(廈門)으로 온 그는 휴대폰 수리공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대형 휴대폰 상점 두 곳의 사장이 됐다.
뤄스란(羅世蘭)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저우즈(周至)현 댜오위타이(釣魚台)촌에 살고 있다. 그녀는 1985년 봄에 막내 삼촌을 시댁으로 데려와 지금까지 30년째 돌보고 있다. 뤄스란은 집안 살림이 매우 궁핍해서 15세 때 아버지의 권유로 샹위(襄渝) 철도 건설 현장에 보내졌다.
산시(山西)의 평범한 농민부부는 40여 명의 장애를 가진 고아들을 입양해 키우며 26년의 남다른 인생을 살아 왔다. 1989년 어느날, 산시(山西)성 위안핑(原平)시의 화학비료공장에서 일하던 천톈원(陳天文)이 아내 궈가이란(郭改然)과 함께 퇴근하던 중 길가에 버려진 종이 상자 안에 있는 장애여아를 발견하고 구해주었다.
중풍으로 거동할 수 없는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산둥(山東)성 쩌우핑(鄒平)현 밍지(明集)진에 거주하는 68세 노인 차이치화이(柴啓淮) 씨는 6년 전부터 전자오르간과 얼후(二胡)를 배우기 시작했다. 2009년 10월, 차이치화이 씨의 아내는 급성 뇌출혈로 중풍이 왔고,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 하며 다른 사람과 말로 소통할 수도 없게 됐다.
1945년 11월 24일, 충칭시 베이베이(北碚)구 베이원취안(北溫泉)공원 수판러우(數帆樓) 앞에서 신혼부부 한 쌍이 웨딩사진을 찍었다. 70년이 지나 같은 날, 두 노인은 다시 이곳에 와서 결혼 70주년 금강혼식을 기념하고 같은 곳에서 결혼기념사진을 찍어 70년 간 변치 않은 장밋빛 사랑을 확인했다.